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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상의 자원이 곧 고갈되고 인류는 공멸하고 말 겁니다. 세계 인구가 140억 명을 넘어서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

140? 작년 예상보다 10억이 늘었다니. 양자 컴퓨터 계산에 착오가 있었던 건가?

“당시 추정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변한 것뿐이지요.

2217년 당시 세계 인구의 합계 출산율이 3명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4명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뭄바이에 위치한 UN 센터에 5명의 통합 블록 대통령이 모였다. 개별 국가 체계를 대신해 5개의 블록으로 국적이 통합된 게 2100년도였다. 브라질을 중심으로 두 개의 아메리카 대륙을 통합한 블록 1과 통일 한국이 수장이 되어 중국, 일본, 호주를 흡수한 블록 2가 경제력은 가장 앞섰으나, 사실상 의사결정권을 지닌 최강국은 인도가 이끄는 서아시아의 블록 3였다. 세계 경제권과 학계, 예술 분야까지 이곳 출신의 인재들이 모든 블록에 촘촘히 퍼진 핏줄처럼 중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프리카 대륙의 블록 4 5번째 러시아, 유럽 블록은 선진 블록의 결정에 군말 없이 따르는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도대체 아이들을 많이 낳는 이유가 뭡니까?

인도 대륙 출신 슌다이 대통령이 상승 추세의 꺾은선 그래프가 띄워진 3차원 홀로그램 영상을 보며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자원 황폐화 대책을 발표 중이었던 UN 사무국장 알렉세이는 마치 본인의 잘못인 양 힘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삶의 질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가족을 꾸리고 자식을 많이 갖는 것이 가장 행복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다시 21세기 수준으로 생활이 퇴보한 지 벌써 한 세기가 지났는데, 삶의 질이 높아지다니요?

슌다이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인공 지능과 로봇이 일상 노동을 대신하던 시대는 100년 전에 막을 내렸다. 인류 스스로의 선택이었는데, 조금만 판단이 늦었더라면 지구상에서 인간이라는 종이 사라질 수도 있었다.

인공 지능 네트워크가 ‘인류 보완 대책’이라는 명분으로 공격을 준비 중이라는 걸 인도 출신의 한 엔지니어가 미리 발견해 낸 덕이었다. 바로 중앙 집중형 인공 지능의 전원을 차단했지만 북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인간과 기계 사이의 국지전이 일어났고 단 사흘 만에 약 200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핵 무기가 동원되기 전에 전쟁을 끝낸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초토화된 미국의 회복을 위해 5대 블록으로 국경이 개편된 것은 그다음 해의 일이었다.

살림이라는 이름의 그 엔지니어는 인류의 영웅으로 추앙받았고, 인도가 중심이 되는 블록 3의 초대 대통령이 되는 것에 누구도 불만이 없었다. 그를 중심으로 자동화 문명의 종말과 대량살상 무기의 즉각적인 폐기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건강해진 거지요. 인간답게 몸을 쓰며 사는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몸과 영혼이 건강해진 겁니다.

미셸롱 블록 4 대통령이 아름답게 가꿔진 콧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프랑스어가 섞인 영어 때문인지 시를 읊는 듯한 말투가 고무공처럼 통통 튀었다.

인공 지능 폐기 후 영어는 다시 세계 공용어의 지위를 되찾았다. 실시간 통번역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메리카 대륙의 경제는 영어 교육 수요에 의해 지탱된다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고색창연한 생각이 역시 구대륙 출신답군. 이훈 블록 2 대통령은 속으로 웃었다. 자동화 문명 폐기 전까지는 통일 한국이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인공지능 원천 기술력을 보유했고, 양자 컴퓨팅 프로세서 제작에 필수적인 광물이 오직 한반도 북쪽에서만 채취 가능하다는 천혜의 조건 덕분이었다.

세상이 바뀐 지금도 여전히 한반도에서는 인공 지능의 부활을 바라는 여론이 존재했고,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이훈 본인도 그걸 바라고 있었다.

“육체노동이 부활한 이런 퇴행적인 삶의 형태가,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겁니까?

그의 말에는 다분히 냉소가 섞여 있었다.

 

“이훈 대통령이 속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이런 말이 전해 온다고 하죠. 먼저 자신의 몸을 수양하고 집안을 가지런하게 한 다음,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하게 한다. 잘 아실만한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요.

미셸롱의 비아냥거리는 말투에 이훈이 발끈하며 반박하려 하자 바로 옆의 부통령 기무라가 그의 귓가에 대고 “말려들지 마십시오. 저 사람 말꼬리 잡는 화법으로 유명하잖아요”라며 말렸다.

“자. 소모적인 논쟁은 그만하고 다시 주제로 돌아갑시다.

슌다이 대통령이 알렉세이 사무국장을 바라보며 계속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알렉세이는 홀로그램 영상 화면을 한 장 넘겼다.

“삶이 옛날 방식으로 돌아간 건 맞습니다. 그중에 특히 주목할 점은.

바뀐 영상에는 펼쳐진 책 한 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독서 인구가 지난 반세기 동안 비약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입니다. 더군다나 몇 세기 전 고전들이 다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톨스토이라는 이름의 작가가 쓴 소설 같은. 작년에 가장 많이 읽힌 책도 이미 지구상에서 사라진 지 오래인 수중 생물, 고래를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모비딕.

기무라가 작은 소리로 제목을 말했다.

 

그전까지 가장 널리 소비되던 영상 산업은 세계 패권이 인도로 옮겨가면서 급속하게 축소되었다. 미국의 LA가 전쟁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 할리우드 영화 제작 시스템이 인도로 이동했으나 예전의 명성을 되찾진 못했다. 인도인 입맛에만 맞는 발리우드 영화 위주로 제작되면서 다른 문화의 사람들은 재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블록 1 문화권의 관객만으로도 수요는 충분했기에  영상 콘텐츠는 점차 내수용으로 축소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이야기를 원했다. 등장인물의 사연에 웃고 울며 감정 이입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던 대중이 선택한 것은 과거의 유물로 외면받던 책이었다. 더 먼 중세 시대, 화가의 손으로 그려진 그림 한 점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것처럼 사람들은 다시 독서라는 유희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다.

“독서는 가장 인기 있는 여가 활동으로 복귀했습니다. 그러면서 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죠. 자살률이 줄었고, 음주로 인한 사고 발생도 감소했습니다. 독서 모임 같은 사람들 사이의 교류가 활발해지며 결혼 인구가 늘었고, 가족을 구성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출산율의 증가로까지 이어진 겁니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그런 나비 효과가 만들어졌다니. 놀랍군요.

한 마디도 없던 아프리카 대륙의 블록 5 아콧 대통령이 짧은 감탄과 함께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출산율을 다시 낮추기 위해선 책을 없애면 되나요? 악명을 떨친 몇몇 독재자들이 먼 옛날 세상의 책들을 한데 모아 불태웠던 것처럼?

이훈 대통령의 말이 농담이라는 걸 알면서도 미셸롱 대통령이 가늘게 뜬 눈으로 그를 보며 답했다.

“글쎄요. 굳이 그런 과격한 방법이 아니더라도 블록 2 대통령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을 듯합니다만. 유일하게 출산율이 아직 1명 대에 머물고 있지 않습니까.

이훈은 반박할 수 없었다. 유독 한반도와 일본, 중국이었던 지역의 출산율은 지난 20여 년간 급속히 낮아졌다. 그 결과로 평균 연령도 50대로 접어들어 세계에서 늙은 지역이 되었다. 통일을 이룬 후 오랜 독재에 억눌려 있던 조선민주주의 공화국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자유를 마음껏 음미하던, 가장 역동적인 국가였던 한반도의 풍경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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