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이 태어나던 해 두 번째 영화의 투자가 결정됐다. 본격적인 상업 영화를 쓰겠다고 달려들었던 작품이었다. 시대극이라 세트를 만들어야 했고 준비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자신은 있었다. 아내는 해외 수출할 때 번역은 맡겨달라고, 하지만 무료는 아니라고 웃으며 말했다. 선호가 어린이집에 들어갈 때 개봉한 영화는 경성 시대라는 유행이 끝물이었음에도 손익 분기점을 넘겼다. 아내는 번역과 함께 모교에 강의를 나가기 시작했다. 들쭉날쭉한 일정의 부부를 대신해 어머니가 아직 손을 타야 하는 선호를 돌봐 주셨다. 손자의 육아에 몰입하는 것이 아버지의 죽음을 잊는데 도움이 되었을까. “영화쟁이는 원래 그렇게 밖으로 돌아다닌다니” 어머니의 말대로 늘 귀가가 늦었고 대부분의 자리는 술과 함께였다. 유쾌한 술자리여도 과하면..

“덥지 않으세요? 여름이라 긴 머리가 불편하실 텐데”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숨을 돌리고 있을 때, 함께 랠리를 한 여자가 옆에 앉으며 음료수를 내게 건넸다. “고마워요, 수아 씨. 이제 두 달 정도 됐죠? 어때요, 할 만해요?” “아직 잘 안되는데, 그래도 재밌어요. 테니스 시작하길 잘한 것 같아요” 수요일 밤과 토요일 오전은 테니스 동호회에 온다. 테니스는 오십 년 전 홍콩에서 살 때 열심히 했던 후로 오랜만이다. 동호회 사람들과 맞춰주며 쉬엄쉬엄 적당히 쳤다. 수아라는 신입 회원은 나를 ‘프로님’이라고 부르며 틈날 때마다 자세를 봐달라고 했다. “저도 지석 프로님처럼 백핸드 잘하고 싶어요. 언제부터 치셨어요?” “에이 프로라뇨. 그냥 친지 오래 된 것 뿐이예요” “얼마나요? 초등학생 정도부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