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은이 앞에 있다는 사실을 한나는 아직 머릿속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시절 공원의 풍경과, 함께 앉았던 벤치와, 귓가로 들리던 새소리가 먼저 떠올랐다. “어머, 얘 좀 봐. 벌써 나 잊어버린 거야?” 그 사이에 언니 목소리가 더 커진 것 같네. 이제서야 혜은을 실감한 한나는 그녀의 미소를 따라 빙긋 웃어버렸다. “잠깐 괜찮아? 근처에 일 있어서 왔다가 한나 보러 온 건데” “그럼요. 과장님 좋아하는 허니 레몬티로 드릴까요?” “아직 기억해 줘서 고맙네. 응, 그걸로 부탁할게” 혜은이 메고 있던 백팩에서 카드를 꺼내려 하자 한나가 만류했다. “저 보러 왔다면서 무슨 계산이에요. 2층 좌석에 올라가 계세요. 바로 가지고 갈게요” 카운터 옆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직원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
카페 토라세 방배점의 유영빈 점장은 요즘 강한나 매니저의 냉랭함에 오한이 들 정도다. 평소에도 나긋나긋한 편은 아니었지만, 회식 이후 쌀쌀맞음이 유독 심해졌다. 회식에서 조금은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무슨 실수라도 한 것일까. 영빈이 몇 번을 곱씹어 봐도 그럴만한 일을 기억할 수 없었다. ‘내가 미쳤지’ 유영빈 점장을 마주칠 때마다 한나는 그날의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아무리 취했다고 해도 무슨 생각으로 안경을 벗었을까. 단톡방에 올라온 회식 사진을 보고 가물가물했던 장면들이 또렷이 떠올랐다. 안경을 머리 위로 올리고 환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브이 모양을 했던 자신의 모습. 그리고 택시 타기 전 점장에게 윙크를 했던 것까지. 영빈은 기억하는지 못하는지, 평소와 다름없이 자신을 대하고 있지만 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