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버스에서 내리자 기분 때문인지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얼굴을 스치는 바람에 섞여있는 듯했다. 도착한 곳은 남쪽 끝 항구 도시. 바다를 보면서 뛸 기대로 이번 여행에서 가장 설레는 장소다. 오늘은 미리 숙소를 예약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휴가 성수기도 아닌데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그럴싸한 사진으로 포장된 모텔 대신 두 눈으로 확인해가며 괜찮은 곳이 나올 때까지 발품을 팔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바다가 보이는 창문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바다 근처로 가볼까. 지도 앱을 켜니 넓은 파란색 공간으로 표시된 곳이 멀지 않았다. 걷기에 충분한 거리였다. 해는 중천에 떠있고 시간은 충분했다. 왼쪽에는 완만히 펼쳐진 능선 위에 단층 가옥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었다. 빨갛고 파란 지붕이 늘어선 위..
“그러세요 선배. 마음 편히 다녀오세요.”“미안해요. 다들 바쁜데 나만 쉬는 것 같아서.”담백한 대화였다. 후배이자 팀장인 민석은 휴가를 쓰고 싶다는 말에 선뜻 승낙했지만 팀원인 나와 대화할 때 쉽사리 눈을 마주하지 못했다. 아직은 어색한 존대를 하면서 대하기 어려운 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4년 후배인 팀장. 내가 대리를 막 달았을 때 같은 팀 신입으로 들어온 그를 몇 달 동안 사수 역할을 하며 일을 가르친 적이 있었다. 그가 다른 부서로 발령받은 후에도 가끔 가벼운 인사와 세상 이야기를 나누며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어색해진 건 올해 초 민석이 내 자리를 대신하면서부터였다. 인사 발령에서 그는 차장 진급과 함께 팀장 보직을 받았고, 나는 팀장 자리에서 내려와 고참 팀원이 되었다. 흔한 ..
러닝 앱을 켰을 때 맞은편에서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노래방 간판 아래 출입문이 열리고 한 무리의 취객이 나왔다. 퉁퉁한 체구의 남자가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해장술 하러 가자”라고 큰 소리로 말하자 짙은 화장의 여자는 “아유. 얼른 집에 가셔들. 벌써 새벽 5시야”라며 손사래를 쳤다. 잠깐 실랑이를 하다가 사내들이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후 여자가 문을 열고 다시 들어갔다. 곧 알록달록한 ‘보물섬 노래방’ 간판이 꺼졌다. 긴팔 점퍼를 걸치고 나온 여자는 맞은편 모텔 입구에 서 있는 날 발견하고는 흠칫 놀랐다. 반팔 민소매티에 짧은 반바지와 헤드밴드를 한 모습에서 별 위협이 안된다고 계산했는지, 만사 귀찮다는 표정을 지은 채 취객과 반대편으로 잰걸음을 옮겼다. 비즈니스호텔 궁.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