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철 상무가 본부장실에서 나와 호진의 책상으로 걸어왔다. 다음 주 예정인 신규 광고주 경쟁PT 준비로 계속 새벽에 퇴근한 호진은 멍한 상태로 제안서가 띄워진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구 팀장님 열일 하시네” 희철이 보조 의자를 가져와 호진 옆에 앉으며 농담을 던졌다. “이제 며칠 안 남았는데. 뭔가 아직 부족해요. 어떻게 해야할지 감을 못 잡겠네” “설마 네가 다 하려고 생각하는거야? 이제 생각만큼 머리 안 굴러가는 나이야. 빠릿한 팀원들 믿고 좀 맡겨봐” 희철의 말이 맞았다. 미덥지 못해 보이던 팀원들이었으나 이번 PT 준비에서 호진이 생각하지 못한 시각에 감탄하는 일이 많았다. 만사 귀찮아 하던 건식이 무슨 바람인지 참신한 인사이트를 제안했고 기대하지 않았던 기획서의 플롯을 마련해 왔을 때 호진은 입..
‘당신은 팀장으로서 자격이 있는가’ 물어온다면, 호진은 자신이 없었다. 팀장 역할 한지 이제 4년 여가 되어 가지만, 신입 시절 생각했던 팀장의 역할과 지금 자신은 사뭇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 때는 아무 것도 모르는 갓난 아이같았기에 그의 눈에 비친 팀장은 모든 걸 알고 있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시각과 인사이트로 고민을 해결해주는 전지전능한 존재였다. 내가 저지른 잘못을 거침없이 해결해주는 구세주같은 어른이었다. 이제는 안다. 팀장도 임원의 눈치를 봐야하는 또 한 명의 직장인일 뿐이고, 가끔은 기발하다 못해 발칙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팀원에게 질투심을 느끼기도 한다. 후배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화를 내는 것인지, 정말 잘못한 점을 고쳐주기 위한 것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그리고 그럴 때면 아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