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남은 매장 사무실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강한나는 지금의 적막이 어색했다. 부점장으로서 이곳에 들어왔을 때는 늘 말을 건넬 점장이 있었다. 이제는 그 책상에 자신이 앉아 있다. 노트북을 열어 최근 매출 현황을 점검하고 메일을 확인해 봐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더 이상 여기서 할 일은 없었다. 한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문을 열고 매장 쪽으로 걸어가며 생각했다. ‘유영빈이 이래서 계속 사무실 밖에 있었나 보네. 불편해서 못 있겠어’ 이른 평일 오전이라 손님은 드물었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일상이었다. 하지만 한나에게는 매장의 풍경과 직원들의 모습이 예전과는 어딘가 달리 보였다. 예전에는 매장 곳곳에 잘못된 곳이 없는가를 매서운 눈초리로 살펴보곤 했다. 오늘은 직원 중 누가 힘들어 보이는 사..
“그리고, 여러분께 알려야 할 내용이 있어요” 월요일 아침 조회가 끝나기 전, 유영빈 점장이 말끝을 흐렸다. 직원들은 예상하고 있던 이야기가 나올까 싶어 숨죽인 채 기다렸다. 사무실 천장 쪽을 바라보던 영빈은 무언가 결심한 듯 작게 한숨을 내뱉은 후 입을 열었다. “다들 이미 소문으로 알고 있겠지만, 이번 주까지만 여러분과 함께 있게 됐네요. 다음 주면 전 본사로 돌아갑니다” 역시 소문이 맞구나. 몇 직원들의 작은 탄식이 있었을 뿐 반응은 대체로 조용했다. 며칠 뒤면 정식으로 조직개편 발령이 있을 거라는 말과 함께 영빈이 마지막까지 잘 부탁한다며 작게 미소 지었다. 누군가 외친 ‘수고하셨습니다!’와 함께 박수가 시작되려 할 때 영빈이 잠깐,이라며 두 손을 저었다. “아직 한 가지 더 남았어요” “이제 민..
그새 많이 변했네. 영빈은 오랜만에 찾은 본사 마케팅부문 회의실이 영 어색했다. 테이블 중앙에 놓여있던 빔 프로젝터는 천장 부착형으로 바뀌었고, 회의 때면 보드마카 펜으로 무언가를 적곤 하던 화이트보드 대신 한쪽 벽면이 판서 가능한 반투명으로 인테리어 되어 있었다. 지난 회의의 흔적인 듯 고객 분석 데이터와 타깃 인사이트 등이 촘촘하게 적혀 있었다. 영빈은 빈 회의실에서 홀로 앉아 벽에 적힌 내용을 읽으며 옛 생각에 잠겨 있었다. 박윤수 팀장이 헐레벌떡 회의실로 들어온 것은 이십여 분 정도 지난 후였다. “영빈아, 내가 불러놓고 늦어서 미안하다. 앞 회의가 생각보다 늦어졌네” “아니에요. 무슨 회의였는데요?” “뭐겠냐. 이맘때면 늘 하는 내년 사업전략 회의지. 전략 애들은 어차피 마지막에 지들 맘대로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