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빨리 떠나게 되어서 아쉽네요. 그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한유리 과장이 카페 토라세 방배점 직원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자 모두가 손뼉을 쳤다. 본사에서 잠시 스쳐지나 가는 낙하산일 거라 생각했던 그녀가, 예쁜 얼굴로 뺀질거릴 거라 여겼던 그녀가 어느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진심으로 방배점 식구들과 어울리려 했다는 걸 이제는 모두가 인정하고 있었다. “과장님, 보고 싶을 거예요, 자주 놀러 오세요” “하긴 점장님 보러 오시겠구나, 하하” 남자 직원들이 큰소리로 한유리의 인사에 화답했다. 넉살 좋은 농담에 매장 사무실에 모인 모두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유리 과장님하고 더 같이 있고 싶었는데” 강한나가 서운함 가득한 표정으로 한유리를 바라봤다. 처음에는 한나 역시 유리를 좋게 보지 않았지만 벚꽃..
“그 선생님이 나한테 처음으로 해줬던 말, 그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매니저님이 똑같이 했다니까요” 한준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응차, 하는 소리와 함께 팔에 힘을 실어 한나를 위로 들쳐 업었다. 몸이 출렁하는 기분에 한나는 다시 한번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렇지만 날 계속 믿어보려 애쓴다면,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그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어줬는지 몰라요. 지금까지 날 지탱하게 해줬다고도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는 다시는 그분을 못 봤어요. 학교 다시 갈 용기도 없었고요” “그 선생님이, 나하고 닮았다는 거예요?” 한나가 몇 번을 주저한 후에 말했다. 한준이 웃는 듯 몸이 조금 흔들렸다. “네. 하지만 매니저님만큼 사납지는 않..
곳곳에서 망치로 못 두드리는 소리와 철을 자르는 듯한 전기톱 소리가 들려왔다. 재즈 페스티벌 팝업 매장은 가장 큰 규모의 메인 스테이지와 중형 무대를 오가는 길 중간에 위치해 있었다. 흙으로 된 바닥 위에 나무판으로 된 지지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몇 군데 기둥이 올라가는 중이었다. 인부들이 쉬는 시간인지 공사 현장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있는 이 동선이 제일 붐빌 듯한데요. 매장 규모도 지난 벚꽃 때보다 두 배 정도 되고요” 한준이 주위를 유심히 살펴본 후 말했다. “잘 아네요? 한준 씨 여기 처음 와보는 게 아닌가 보네” “지난 몇 년 동안 페스티벌 취소되었을 때 빼고는 매번 왔어요. 재즈 좋아해서요” 한나는 그의 계속되는 의외의 모습에 속으로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머리 좋은 것만 믿고 까불..
대회의실에 조명이 다시 켜지고 임원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출입문 근처 자리에서 노트북을 정리하고 있는 한유리에게 몇 명이 회의실에서 나가기 전에 덕담을 건넸다. “오늘 발표 좋았어요. 까다로운 대표님이 한 번에 오케이 하시다니. 허허” “디자인 부문도 어려운 고개 넘었네. 매장 리뉴얼 프로젝트가 승인됐으니, 한유리 과장 한 건 올렸어” 옅은 미소로 감사를 표시한 한유리를 대신해 디자인 부문장이 얼굴에 잔주름이 잡힐 정도로 활짝 웃으며 답했다. “그럼, 이 프로젝트 때문에 한 과장이 일부러 현장 나가서 몇 달 동안 고생한 결과인데. 우리 디자인 에이스잖아요” 회의실을 나와 디자인팀으로 이동하는 중에 부문장이 유리에게 말했다. “다음 주부터는 다시 본사로 돌아오는 걸로 하자. 이제 본격적으로 속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