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네. 왜 서로 따로 다녀요? 아까는 작은 아저씨 혼자 만나러 오더니” 얘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현준은 앨리스의 얼굴을 알아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아까 기타! 작은 아저씨? 재경이 형? 만났어요? 어디서? 형 지금 어디 있어요?” 단어를 더듬대다가 질문을 쏟아내는 현준에게 앨리스는 안경 너머 투명한 눈빛으로 답했다. “사지요. 사지로 간다고 해서 알려줬어요” 시디 가게로 내려오자마자 재경은 앨리스를 다시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멀리 가지는 않았을 거야. 이 사람은 거기를 알겠지. 재경에게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말하고는 서둘러 계단을 올랐다. 헤드폰을 걸치고 걸어가는 앨리스가 보였다. 저기요. 재경은 숨을 뱉어내며 앨리스를 세웠다. 마치 다시 올 것을 알았다는 듯 재경을 향한 그녀의 ..
“왠지 우리 고등학교 때 여자애들 같지 않아?” 볼수록 그 시절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고 현준이 말했다. “나도 그 생각 하고 있었다. 하얀색 게스 천 가방 있잖아. 그거 메고 있으면 완전 딱이겠는데” 순간 앨리스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고 현준과 눈을 마주쳤다.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똑바로 걸어온 그녀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기타를 앞으로 내밀었다. “저기요. 이거 사실래요? 십오만 원에 내놓은 건데, 십사에 드릴게요” ”텄어요. 약속 시간 십 분 지나 못 오겠다고 메시지 왔네요. 참 나” 거래는 어떻게 됐냐는 현준의 질문에 앨리스가 말했다. 일이 재밌게 되어간다는 생각에 현준이 말할 거리를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그럽시다. 안 깎아줘도 돼요. 십오만 원에 살게요” 재경이 지갑에서 돈을 꺼내고 있었다. “..
시청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려 걸어가면서 호진은 속이 또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1호선 역사 특유의 고린내같은 냄새가 지난 밤의 숙취를 끄집어 내고 있었다. 아무리 금요일 밤이었다고 해도 어제 너무 마셨어. 아우, 오늘 스터디에서 제대로 앉아 있을수나 있을까. 20대 후반이었던 호진은 열심히 놀았다. 매번 다음날 스터디에 영향이 있을거라고 걱정하면서도 금요일이면 늘 달리곤 했다. 오늘 아침 스터디로 가는 길은 유난히 힘들었다. 종각역에 있는 건물에서 토요일 아침 10시마다 모인지 벌써 이년 째가 넘어가고 있었다. 브랜드 원서를 매주 한 챕터씩 공부하는 모임이었다. 가끔은 주제에 맞는 케이스 스터디를 하며 토론하기도 했다. 대부분이 마케팅과 연관된 일을 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꾸준히 나오는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