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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 잘 들었습니다. 질문이 몇 가지 있는데요, 혹시 스타트업을 클라이언트로 일해본 경험이 있나요?”
화상회의 모니터의 얼굴들에 약간 당혹한 표정이 스쳤다.

“자기 돈 넣고 광고하는 스타트업 사람들은, 퍼포먼스 광고에서 어떤 지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새로 교체한 광고 대행사의 제안을 받고 호진이 처음으로 던진 질문이었다. 예상했던대로 답은 두리뭉실했다.

“어느 한 지표를 콕 집기는 어렵네요. UV를 보는 경우도 있고, ROAS에 민감한 경우도 있습니다. 아, 요즘은 회원 숫자는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게 트렌드이긴 하구요…”

호진이 말을 이어갔다.
“제가 디지털 마케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최근에 지인들의 스타트업을 도우며 그들이 광고 등 마케팅 하는 것을 보며 배운 것이 있습니다. 돈 무서운줄 알아야 된다는 거지요”

말이 조금씩 빨라졌다. 흥분하면 나오는 그의 습관이었다.
“한 달 광고비 오백만 원에 벌벌 떨었던 스타트업을 봤어요. 다행히 지금은 한 달에 일, 이억은 우습게 쓸 정도로 성장하긴 했습니다. 회사 안에 작은 규모지만 인하우스 체계를 만들어 놓기도 했구요. 지금도 허투루 돈을 쓰고 있지는 않더군요”

대행사의 본부장은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대충 감이 잡힌다는 듯, 입꼬리를 살짝 찌푸렸다.
“우리는 남의 돈으로 마케팅하고 있지요. 회사 돈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회사는 적자입니다. 광고에 돈을 쓰면 그만큼, 아니 몇 배로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런데 작년보다 UV가 떨어지면 안된다고, 그래서 매체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는 이유로 구매로 연결안되는 매체가 아직도 포함되어 있는게, 전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호진의 팀원들은, ‘저 꼰대 또 이 소리한다’라는 표정이 눈에 띌 정도로 얼굴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브랜딩 광고를 한다면 이런 이야기 드리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우린 ‘퍼포먼스 마케팅'을 하잖아요. 광고는 장사를 위한 도움이 되어야 한다, 앞으로 같이 일할 때 이게 가장 기본이 됐으면 합니다”

맞다. 화가 나서한 말이다. 호진은 이 한가함이 싫었다. 마치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듯이, 게임 오버가 되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느슨함에 화가 났다. 자본금이 말라가는 상황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매달 쓰는 돈의 반도 벌지 못하고 돈이 줄줄 새어나가는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렇게 한 달에 몇 억의 돈을 ‘심시티'하듯이 쓰지는 못할 것이다. 내 돈으로 장사를 하는 거라면.

디지털 광고 매체 중 ‘캐시 슬라이드 광고’가 사기라는 생각에 변함은 없었다. 그렇게 잡힌 UV가 과연 우리 프론트를 1초라도 보게 해줄까. 그 광고에 반응한 사람들이 정말 우리 서비스와 상품에 관심이 있어 ‘유입'되어준 것일까. 이 매체는 UV 숫자로 ‘조임을 당하는’ 마케터의 고민을 영악하게 집어냈다는 것은 인정해야 했다. 허나 그들의 주머니만 두둑하게 해주는 신기루라고 생각했다. 지난주 첫 미팅에서 호진은 허수의 지표는 최소화해달라고 요청했다. 콕 짚어서 ‘캐시 슬라이드’는 건강한 UV를 만들지 않는 매체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오늘 제안에서는 UV 관리를 위해 적절히 믹스해야 한다는 제안이 여전히 들어있었다. 한 푼이 궁한 스타트업이라면 ‘적절한 UV 믹스'에 혹할까.

호진은 대기업의 브랜드 광고를 담당한 AE 출신이었다. 고색 창연한 지표로 광고주를 설득한 경험은 무수히 많았다. 최초 상기도, 브랜드 선호도가 중요합니다. 우리 브랜드는 퍼플 카우가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광고비는 투자로 생각해야지, 비용으로 바라보면 브랜드가 ‘제대로 자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일 년에 이백억의 광고비를 따내기도 했다. 이제 호진은 ‘커머스’ 마케팅을 한다. 장사를 하는 것이다. 자신은 마케터이면서도 손님에게 물건을 팔아야 하는 ‘장사치'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망한 장사'를 해본 경험에서 배운 것은 있었다. 돈의 무서움을 알았고, 그 돈으로 하는 광고가 작동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배웠다. 하루에 몇 번이고 광고를 통한 유입 결과를 확인했다. AB 테스트를 통해 어떤 이미지가 더 많은 클릭을 만들어내고, 어떤 키워드로 들어온 사람들이 구매까지 이어지는지 점검했다. 그렇게 ‘디지털은 만질수록 좋아진다'는 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TV광고와 같은 전통 매체처럼 한 번 설정해 놓고 놔둬서는 그저 돈을 버리는 것과 같았다. ‘내 사업'이고 ‘내 돈’이라는 마음가짐 때문이었다.

그래, 꼰대라고 부를 것이다. MZ 세대라면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할 것이다. 내 일만 하면 되는데, 왜 내 ‘JD’에 포함되지 않은 것까지 걱정하고, 고민해야 할 것이냐고 되물을지도 모른다. 호진은 이렇게 답하고 싶었다. 너희들이 하고 있는 일이 ‘장사'이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모두 ‘장사치’라고. 무수히 많은 가게 중에 우리와 연결된 그 한 명의 손님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들에게 어떻게든 물건을 팔아야 우리가 먹고 살 수 있다. 너희들의 ‘플렉스’를 위한 월급을 만들 수 있다. 마케터의 KPI가 장사의 결과인 매출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건 그냥 재미삼아 하는 게임과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일단 들어오기만 한다면, 그 손님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동대문의 옷장사가 그렇게 하고, 정도는 지나쳤지만 전자상가의 ‘용팔이'가 그래왔다. 어플이라는 우리 ‘가게’는 손님들이 더 혹할 수 있을 정도로 개비될 것이다. 손님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는 좋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마케터들이 할 일은, 손님들을 가게로 한 명이라도 더 오도록 ‘삐끼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럴듯한 지표로 광고 효율이 좋아졌어요. 광고 효과가 좋아졌어요라고 자랑하는 것도 좋다. 그런데 장사는 잘 됐나요? 이 질문에 답하는 ‘장사치'의 마음이 필요하다고 호진은 생각했다.

스타트업을 키워가고 있는 친구는 호진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너도 이젠 질러야 돼. 시간이 얼마 없어. 네가 맞다고 생각하는게 있으면 관철시켜야 돼. 예전처럼 그럭저럭 흘러가는 조직 생활은 너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해. 네 생각대로 일해야 돼. 네 사업하듯이, 그래야 회사에서도 살아 남는다. 그는 다시 회사로 돌아갈 마음은 없지만, 그렇게 된다고 해도 회사원처럼 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호진도 알고 있다. 건강한 UV에 집중한다면 작년보다 지표는 눈에 띄게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장사치로서의 입장에서, 장사에 도움이 되는 UV를 높이겠다고, 이게 맞다고 질러볼 것이다. 나는 마케터이기 이전에 장사치라고. 장사를 위한 지표를 위해 일하고 싶다고. 난 우리 프로덕트를 ‘내 사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돈 버는게 우선이라고, 그렇게 질러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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