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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 방배동의 한 중학교 교실, 쉬는 시간이었다. A와 B가 씩씩거리며 호진에게 다가왔다.
“야, 소방서하고 우범 지대, 둘 중에 뭐가 더 촌스럽냐?”
이해를 못했다. 둘 중에 아무런 연관성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호진의 질문에 답하는 듯, 둘의 신경전이 이어졌다.
“Fire House(소방서)는 안전을 지키는 곳이잖아. Skid Row(우범 지대)가 뭐냐? 구질구질하게”
“록 스피릿을 모르는 너 같은 애한테 무슨 말을 더 하냐. 빈민층의 울분을 담은거잖아”
“하, 그러면서 죄다 사랑 노래잖아. 솔직히 세바스찬 바흐 얼굴 말고 뭐가 있냐, 스키드 로우가”
“사랑 노래, 웃기고 있네. 파이어 하우스야 말로 록이 아니라 팝이지. 이름도 촌스러워서”
서로 좋아하는 밴드 중 누가 더 낫냐의 말싸움이었다. 한창 록 음악에 마음이 팔릴 나이였다. 사춘기 소년의 마음 속 울분을 털어내기에는 날카로운 기타 리프에 베이스와 드럼이 만들어내는 리듬만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호진이 록 음악에 빠지기까지는 아직 몇 년이 남았다. 지금은 빌보드 차트에 올라온 곡이면 무엇이든 골라듣는 수준이었다.
“미안한데, 난 요즘 엠씨 해머 들어서, 니들이 말하는 밴드는 잘 몰라. 미안”
매주 토요일 8시면, 호진은 공테이프를 꽂아넣고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귀를 기울였다. 아메리칸 탑 40 코너가 나오는 날이었다. 디제이가 곡 이름을 말하면 곧 이어 나올 시작 타이밍에 맞춰 무조건 녹음 버튼을 눌렀다. 마음에 쏙 드는 노래가 있는가 하면 시끄럽기만 한, 너무 센 노래도 있었다. 건즈앤로지즈가 그랬다. 지하철 역 근처 음반 가게에는 8절지 크기의 전단지가 입구에 놓여 있었다. 앨범 순위를 보고 괜찮아 보이는 밴드의 이름이나 앨범 제목의 CD를 찾아달라고 했다. 자켓이 좀 이상해 보이면 가게 아저씨에게 물었다. 어떤 스타일의 음악이예요. 브라이언 아담스나 베이비 페이스는 마음에 꼭 들었다. 아저씨가 추천해 준 것 중에는 꽝도 있었다. 셰릴 크로는 왠지 촌스러웠다. 미국에서 난리라는 펄 잼은 너무 어두웠다. 그렇게 한 장씩 모으던 음반은 이제 40대가 된 호진의 벽장 깊숙히 천 장 정도 숨어있다. 대학생이 된 뒤에는 압구정의 상아레코드에서 제프 버클리의 수입반을 찾고서는 기뻐했고, 영국에서 공부할 때는 점심값을 아껴 HMV나 버진 레코드에서 스미스의 컬렉션을 완성했다.
CD 욕심은 많았지만, 오디오 기계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 때 장만한 오디오를 20년 가까이 썼다. 호진은 그 이상의 오디오를 원하지 않았다. VICTOR의 4단 분리 미니 컴포넌트였다. 용산에 2달 간을 매주 드나든 후 골랐다. 일요일이면 오디오 매장이 모여있는 상가를 이곳저곳 누볐다. 가게 주인들과 얼굴을 익힐 정도였다. 아빠와 함께 갔다.
오늘 사지 않아도 괜찮았다. 아빠가 꼭 사준다고 했으니까. 정말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를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오자고 했다. 얼마든 상관없다고 했다, 네 마음에 쏙 들기만 한다면. 용산에 들리는 것이 어느새 호진의 익숙한 일상이 됐다. 처음에는 디지털 화면이 큰, 은색의 오디오가 마음에 들었다. 두 세번 방문해 얼굴이 익은 가게 주인은 일체형 오디오는 보기엔 그럴 듯 하나 음질은 별로라고 했다. 오디오는 분리형이 더 좋다는 것을, 아빠와 호진은 배웠다. 갈 때마다 선택지는 바뀌었다. 한 바퀴 둘러본 뒤에 다음주에 다시 오자고 한 뒤에는 아빠와 근처 옛날 짜장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산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즐거웠다.
그날은 살 것을 고르고 용산에 갔다. 소박하게 생긴, 그렇게 크지 않은 녀석이었다. 빅터라는 브랜드는 일본에서는 알아주는 브랜드라고 했다. 생각해보고 다시 올게요,라고 말한 지난주부터 호진의 눈 앞에는 그 오디오가 어른거렸다. 주차장에서 상가로 걸어가는 동안 제발 팔리지 않고 거기에 있기를 바랬다. 가격은 알고 있었다. 화려하고 덩치 큰 오디오보다 갑절은 비쌌다.
이상했다. 아빠는 가격을 깎으려 하지 않았다. 몇 달간 이것 저것 알아볼 때면 얼마예요? 에이 비싸,하며 주인이 부른 가격에서 무조건 앞 자리 숫자 하나를 내리며 농담을 던지던 그였다. 너무 황당한 흥정에 주인은 오히려 웃었다. 정작 사러 왔는데, 아빠가 또 이상한 가격 흥정을 해서 못사면 어쩌지하던 걱정이 무색해졌다. 이미 집에 설치할 자리는 마련해뒀다. 일본어로 된 설명서를 보며 낑낑대며 컴포넌트를 연결하는 호진을 아빠는 도와주지 않았다. 한 번 틀어봐라. CD를 넣고 볼륨을 높히는 호진의 볼이 발개졌다. 아빠는 아마도, 흐뭇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용산을 졸업한 뒤, 호진은 옷에 관심이 생겼다. 아빠는 호진을 이태원으로 데리고 다녔다. 어느 골목의 반지하 상가에는 구제 리바이스 청바지가 많았다. 해밀턴 호텔 대각선의 2층 가게에서는 힙합 스타일의 빅 사이즈 옷을 골랐다. 몇 달을 드나들다 보니 여기서도 가게 주인들과 눈웃음으로 인사를 주고 받는 정도까지 됐다. 일요일 공영 주차장에는 자리가 나지 않았다. 소방서 사거리에서 우회전 하면 주택가 근처에 차 댈 곳이 몇 군데 있다는 것을 알고 난 뒤 아빠는 거기에 차를 대고 함께 걸어 나왔다. 꼭 그런 옷을 입어야겠냐, 몇 번인가 잔소리는 있었지만 호진이 고른 옷을 아빠가 사주지 않은 적은 없었다. 이태원의 옛날 짜장집은 용산보다 더 맛있었다.
호진은 이제 용산을 같이 가던 그때 아빠의 나이가 됐다. 옷을 잘 사지 않는다. 오디오는 망가져 아빠 집에 가져다 놨다. 아들을 데리고 주말마다 나간다. 유치원 다닐 때는 토이저러스나 가든 파이브 5층 완구 상가를 주로 갔다.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를 모두 모았다. 토미카를 사러 일본을 가기도 했다. 일본 토미카샵 앞에서 점원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을 때, 아들은 한 손으로 들어올릴 수 있을 정도의 어린 아이였다. 이제 귀멸의 칼날과 드래곤볼에 빠진 아들에게 그곳은 시시한 장소가 됐다. 남부터미널이나 용산의 피규어 샵을 간다. 초등학교 고학년인 아들은, 아무 것도 사지 않은 채 허탕을 치고 돌아와도 어린 아이처럼 보채지 않는다. 아빠가 꼭 사준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라면 좋겠다고, 호진은 생각한다.
주말이면 호진과 함께 용산과 이태원을 누볐던 아빠는 즐거웠을까. 그랬을 것이다. 지금의 호진이 그런 것처럼. 아빠도 일요일이면 마음에 구름이 끼기 시작했을 것이다. 회사 가기 싫다는 마음이 뭉게뭉게 가슴을 채워가기 시작했을 것이다. 다가올 한 주의 비루함을 잠시 잊을 수 있는 기쁨이 필요했을 것이다. 번 돈으로 아들에게 좋은 것을 사주는 것이 무엇보다 큰 행복이라는 것을 호진은 이제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일요일의 휴식이자 위로가 되어줬다.
아들이 사달라고 졸랐던 닥터마틴을 보고는, 왜 어린 녀석이 군화를 좋아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을 테지만 쇼핑백을 앞 뒤로 흔들며 신나서 걷는 모습에 그저 흐뭇했을 것이다. 호진이 방문을 닫고 큰 소리로 듣고 있는 파이어 하우스나 스키드 로우같은 록음악은 그저 시끄러운 소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사준 오디오구나,하는 즐거움이 더 컸을 것이다.
호진의 카톡에 아들의 메시지가 떴다. 피콜로 움직이는 피규어가 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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