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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만에 둘이서 소주 세 병이면 페이스가 너무 빨랐다. 한나는 꺾어 마시는 법이 없었다. 점장과 매니저가 앉은 자리 옆에 누가 오겠는가. 우리 주변은 휑하니 빈 채였다.
“알아요. 안다고. 나 재수 없는 거”
방금 비운 소주잔을 손가락으로 돌리면서 한나가 피식 웃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잔에 술을 따라줬다.
“저기.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이 계집애는 뭐가 잘났다고 맨날 이렇게 틱틱 거리나”
“대리 때 내 별명이 뭐였는지 알아요?”
술 병을 건네받은 한나가 이번에는 내 잔에 술을 따르고 있었다.
“볼드모트였어요. 악의 화신. 내 생각과 다르면 끝까지 싸움 걸고, 세상 자기가 제일 잘 났다고 생각하는”
“크하하. 지금은 무슨 간달프처럼 굴면서. 거짓말 같은데”
“다 그렇게 크는 거야. 강 대리도 아직 멀었어요. 나도 그렇고”
내 말이 웃겼던 건지, 술기운 때문인지 한나는 눈물이 날 정도로 크게 웃기 시작했다. 눈물을 닦으려 뿔테안경을 벗은 그녀를 보고 나도 모르게 말했다.
“안경 벗으니까 이렇게 여성스러운데. 가끔은 렌즈도 끼고 그래요”
만호가 있는 자리의 대화는 서로에 대한 호구 조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민주 씨는 남자친구 있어?”
모두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진 채 민주를 향하기 시작했다.
“없어요” 민주는 짧게 대답하고 고기 두 점을 집어 입에 넣었다. 주변에 안도하는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다른 직원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럼 좋아하는 사람은? 맘에 두는 사람 있어요?”
다시 공기의 밀도가 한창 높아진 분위기에서 민주는 방금 전과는 다르게, 잠깐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얼굴이 빨개졌다.
“음… 네. 있어요” 마치 만화 속 말풍선처럼 ‘흐아아’ 하는 효과음이 모두의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누구야? 이 주변에 있어요?”
“에이. 그건 비밀이죠. 나중에 더 친해지면 말해 줄게요!” 민주는 소주 잔을 들어 다 함께 짠, 하자며 웃었다.
“만호야, 고기 탄다!”
손에 집게를 든 채로 멍하게 있던 만호에게 일행 중 누군가 소리쳤다.
“자, 찍습니다!”
흥청망청, 화기애애, 시끌벅적했던 회식이 얼추 마무리되는 분위기였다. 화장실 가는 길에 슬쩍 카운터에 들러 확인했더니 아슬아슬하게 200백만 원에 맞출 수 있었다. 회사 돈 아니면 언제 한우를 이 정도로 먹어볼까. 내가 사는 것은 아니지만 뿌듯한 기분이었다.
“조금 더 가까이 붙어주세요. 인원이 많아서 다 안 들어오네요”
단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 고깃집 주인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내 옆에 있는 한나에게 조그맣게 속삭였다. “안경 벗고 찍어봐요” 살짝 날 째려보던 그녀는 안경을 벗고 브이 모양을 한 오른손을 한껏 앞으로 내밀었다.
자리를 마무리하기 전 끼리끼리 모여 셀카를 찍던 중 누군가 만호와 민주의 어깨를 붙여 놓았다. “판크 남매도 한 장 찍어야지!” 아까 자신의 옆자리를 비워 민주가 앉게 해 준 선배였다. 만호 눈에는 마치 그가 큐피드처럼 보였다.
만호는 스마트폰을 들어 셀카 모드 화면에 두 사람을 담았다. 민주가 예에, 하면서 그의 왼쪽에 팔짱을 꼈다. 만호의 오른팔이 심하게 흔들려서 제대로 된 사진을 남기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저를 포상 대상으로 올려줘서 고마워요”
술에 취한 탓인지 한나는 오늘 반말과 존칭을 섞어 쓰고 있다. 그녀가 탄 택시 문을 닫아주기 전에 그녀는 “나, 반드시, 어떻게든 본사로 다시 갈 거라고”라며 내 쪽을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 같이 일하는 점장한테 그게 할 소리야? 하하”
“그리고”
한나는 잠시 주저하더니 날 똑바로 보며 한쪽 눈을 찡긋, 윙크했다.
“지루했을 텐데, 내버려 두지 않고 나랑 내내 같이 있어줘서 고마워요. 간달프 씨!”
뭐라 답할지 몰라 입만 뻥긋 거리는 날 두고 한나는 택시 문을 닫았다. 내일이면 그녀는 아무것도 기억 못 하겠지. 나 역시 방금 그건 없던 일로 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꽤 귀여웠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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