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우리 고등학교 때 여자애들 같지 않아?” 볼수록 그 시절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고 현준이 말했다. “나도 그 생각 하고 있었다. 하얀색 게스 천 가방 있잖아. 그거 메고 있으면 완전 딱이겠는데” 순간 앨리스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고 현준과 눈을 마주쳤다.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똑바로 걸어온 그녀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기타를 앞으로 내밀었다. “저기요. 이거 사실래요? 십오만 원에 내놓은 건데, 십사에 드릴게요” ”텄어요. 약속 시간 십 분 지나 못 오겠다고 메시지 왔네요. 참 나” 거래는 어떻게 됐냐는 현준의 질문에 앨리스가 말했다. 일이 재밌게 되어간다는 생각에 현준이 말할 거리를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그럽시다. 안 깎아줘도 돼요. 십오만 원에 살게요” 재경이 지갑에서 돈을 꺼내고 있었다. “..
“디페시 모드 듣고 있었나봐요” 호진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소개팅 상대가 자리에 앉은지 몇 분 안되어 꺼낸 말이었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듣고 있던 MP3 플레이어에 곡 이름이 띄워진 채 테이블에 놓여있었다. 전성기를 한참 지난, 그렇게 대중적이지도 않은 신스팝 밴드 이름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가로수길에서 만난 소개팅 상대여서 그 사실이 더 신선했다. 얼굴이 다시 보였다. 지금은 아내가 된 그 여자의 그때 표정을 호진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호진은 그 날의 그녀가 보여준 모습과 표정을 거의 정확히 떠올릴 수 있었다. 겨울비가 보드랍게 내리던 초겨울이었다. 그리 춥지않던 날씨에 옷차림은 계절에 비해 가벼웠다. 검은 색 스키니한 바지에 검은색 점프수트를 입고 있었다. 어깨 아래까지 내려온 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