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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얼굴의 예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헐. 둘이 썸 타는 사이였어?”
남자 직원들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민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이 빨개진 민주는 양손을 크게 흔들며 고개를 저었다.
“엣. 썸이라뇨. 셰프 일하는 모습이 멋지다고는 생각하지만”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민주를 보며 만호는 아무 말 없이 쓴웃음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만호를 빤히 쳐다보던 예지가 “어라, 분위기가 좀 이상한데? 넌 어때?”라고 물었다. 만호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입을 열려고 할 때 누군가가 먼저 민주에게 말했다.
“지난번에 민주 씨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하지 않았나?”
“맞다. 더 친해지면 말해준다고, 비밀이라고 했잖아”
민주는 여전히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민주와 만호의 어색한 침묵이 길어지며 달아올랐던 분위기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민주가 평소처럼 쾌활하게 장난을 받아줄 거라 생각한 남자 직원들은 자기들이 뭔가 실수한 게 있어서인가 싶어 겸연쩍은 모양새였다. 그때 한준이 한쪽 팔을 위로 들어 올리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에이, 그렇게 몰아세우지 말고. 우리 돌아가면서 하나씩 질문하는 걸로 하죠. 스무 고개처럼요”
그제야 “그러자. 재밌게 하자. 이게 뭐 심각한 거라고. 미안해요. 민주 씨”라는 반응들이 나왔다. 민주도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민주 씨가 대답 못할 질문은 그냥 넘어가도 되는 걸로. 괜찮죠?” 한준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고, 한준이 바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제가 먼저 시작할게요. 그 사람을 지금도 좋아합니까?”
“음. 그런 것 같아요” 민주가 조그만 목소리로 답하자 ‘흐아아’ 하는 작은 신음이 몇 군데서 흘러나왔다. 만호는 고개를 숙인 채 바닥을 보며 두 손을 꼭 쥐어 마주 잡고 있었다. 그런 만호를 가만히 바라보는 예지의 표정이 굳어가고 있었다.
“그 사람과 지금 사귀고 있어요?” 한준의 첫 질문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민주는 슬픈 듯한 표정을 지으며 “안타깝게도, 아니요”라고 답했다. 하지만 아까보다는 생기를 찾은 듯 평소와 같은 쾌활한 장난기가 돌아와 있었다.
“그 사람도 민주 씨가 좋아하는 걸 알고 있어요?” 이번에는 한유리가 물었다. 어린 동생을 응원하는 자상한 언니 같은 말투였다. 민주는 유리 곁에 앉아 있는 영빈을 잠깐 바라보고는 답했다.
“모를 거라고 생각해요. 고백할 용기를 아직까지 못 냈거든요”
민주 씨 짝사랑이었구나, 누굴까 그 눈치 없는 남자는? 누군지 부럽다, 남자 직원들이 작은 소리로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사람이 여기 있나요?” 강한나가 남자들이 쉽게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질문을 던지자 대화가 끊기고 모두가 민주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민주는 말없이 웃는 표정을 지으려 했지만 울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에이, 이제 그만하죠. 이제 입가심으로 수제비 만들어 올게요. 예지야, 나 좀 도와줘”
만호가 벌떡 일어서 주방으로 걸어갔다. 남자들이 아쉬운 기색을 보일 때 유영빈 점장이 “그래. 그래. 이제 다른 이야기하자. 그 얘기 들었어?”라고 화제를 돌리려 했다.
“얼추 정리는 끝났네. 오늘 정말 잘 먹었어요”
직원들이 가게를 떠나며 만호와 예지에게 인사했다. 유영빈 점장과 한유리 과장, 강한나 매니저는 편하게 이야기 나누라면서 계산을 마치고 먼저 자리를 비웠고 남은 사람들끼리 한참을 웃고 떠들고 난 후였다. 괜찮다는 만호의 만류에도 일행들은 ‘맨날 매장에서 하는 일인데 하나도 안 힘들다’며 주방으로 남은 식기를 옮기고 테이블 정리를 함께 도운 후 돌아갔다. 휘유, 잠시 한숨을 쉰 후 만호가 설거지를 하러 주방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내일 내가 할 테니까 여기 잠깐 앉아봐. 할 얘기 있어” 예지가 만호를 불렀다.
조명이 꺼진 음식점은 주방에서 나오는 불빛이 닿는 곳을 제외하고는 어두웠다. 예지는 어둑한 곳에 위치한 테이블 위에 양손을 올리고 맞은편에 앉은 만호를 똑바로 바라봤다.
“너, 걔 좋아하니?”
만호는 답이 없었다. 예지의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아랫입술만 깨물고 있을 뿐이었다.
“지난번에 둘이 왔을 때도 조금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는데. 오늘에야 확실히 알았네. 좋아하는구나. 그것도 많이”
만호가 그제야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예지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십 년 넘게 여기서 너만 바라보고 있는, 내 마음은 알고 있었니?”
만호가 그제야 얼굴을 들어 예지를 바라봤다. 어스름한 불빛에 비친 그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이런 둔탱이. 그럴 줄 알았어” 예지의 볼에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너 그럼. 우리 가게 일을 돕는 것도” 만호가 입을 떼었을 때 예지가 벌떡 일어나 가슴을 치며 외치 듯 말했다.
“그래. 네 곁에서 널 보고 싶어서 그랬던 거야. 언젠가는 너와 함께 여기서 같이 일하고, 함께 있고 싶어서. 너 정말 몰랐어? 어떤 여자애가 아무리 소꿉친구라고 해도 이렇게 하겠니?”
예지가 그 자리에 선 채로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아이처럼 손등으로 눈가를 비비며 울고 있는 예지를 바라보던 만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들썩이는 어깨를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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