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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서 준비해 놓고 있을게요”
만호가 매장을 나서며 유영빈 점장에게 인사했다. 평소보다 이른 퇴근이었다.
“그래요. 7시까지 우리 모두 도착할 것 같네. 기대할게요”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웃는 영빈에게 만호가 수줍은 듯 “그냥 평범한 고깃집인데요”라고 대답했다.
“셰프! 특제 제육볶음 많이 만들어 놓아요”라며 민주가 한쪽 눈을 찡긋했다.
카페 토라세 방배점의 오늘 회식은 근처 식당이 아닌 만호 부모님이 하는 고깃집에서 하기로 했다. 고기도 고기지만, 만호가 만드는 제육볶음을 모두가 꼭 한번 먹어 봐야 한다는 민주의 아이디어였다.
거리 두기 해제의 영향인지 지난달 운영한 벚꽃 팝업 매장은 성황을 이뤘다. 목표 대비 2배 이상 매출로 포상금이 내려온 게 1주일 전이었다. 매장 직원들은 좋아하면서도 미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열흘간의 현장 근무에서 돌아온 한준과 민주의 까맣게 탄 얼굴과 초췌한 모습 때문이었다. 강한나 매니저와 한유리 과장도 평소의 빈틈없는 모습을 잃고 며칠 동안 멍한 눈빛으로 다녔다. 직원들은 힘든 일을 알아서 챙겨주는 것으로 미안한 마음을 대신했다.
“근데, 점장님하고 한유리 과장하고 사귄다던데?”
“저녁마다 점장님 호수 공원으로 갈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 했어. 원래 둘이 분위기 좀 묘하긴 했잖아?”
“이번에 회식 가면 진실게임 한 번 하자고 해야겠네. 흐흐”
그날 벚꽃 아래에서 영빈의 고백 아닌 고백을 본 한나와 민주, 만호는 비밀로 부치기로 암묵적으로 약속했지만 둘 사이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회식 장소인 만호의 가게에서 그와 동창인 여자가 일한다는 사실까지, 무언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기대감이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만호는 가게 출입문에 ‘금일 휴업’이라고 인쇄된 종이를 붙였다. 일하고 있는 카페 사람들이 단체 회식으로 포상금 1백만 원을 모두 쓴다는 말에 부모님은 일터 식구들인데 남겨 먹을 수는 없다고 갈빗살이며 등심을 넉넉하게 주문했다. 가게 일을 돕고 있는 초중고 동창 김예지는 ‘오늘 나도 같이 어울려도 되는 거냐’며 신나하는 눈치였다. 만호는 주방으로 들어가 전날 저녁에 미리 재워놓은 제육볶음의 간은 잘 맞는지 손가락으로 양념을 찍어 먹어봤다. 평소보다 배와 양파를 많이 갈아놓은 덕에 감칠맛이 남달랐다. 그가 만족한 미소를 짓자 오른뺨에 보조개가 패였다.
“만호 씨, 여기 제육볶음 조금 더 가능해요? 아주 술을 부르는 맛인데 이거?”
남자 직원이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면서 주방에 있는 만호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테이블마다 등심이며 갈빗살이 남아 있는 것에 비해 제육볶음이 놓인 접시는 빠르게 비워졌다. 서한준은 “이걸로 창업해도 되겠다”라고 감탄하면서 크게 만든 상추쌈을 입에 가져갔다.
만호가 여유 있게 만들어놓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팬에 재워놓은 고기를 볶고 있을 때였다. 김예지가 눈을 흘기며 “야 너도 같은 직원인데 계속 일만 하고 있냐”라고 말하고는 다 되면 이제 우리도 합석하자고 했다.
“자. 주문하신 요리 나왔습니다”
예지와 만호가 각자 양손에 수북하게 담긴 제육볶음 접시를 가지고 자리로 오자 일행의 환호성이 터졌다.
“이제 일 그만하시고 여기 같이 앉으세요. 만호 씨, 우리 제수 씨 소개도 좀 해주고”
예지와 만호가 앉을 자리를 마련해 주는 직원의 넉살 좋은 너스레에 만호가 손사래치려 할 때 예지가 먼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어머, 저희가 그렇게 보이나요? 제수 씨라뇨. 호호”
예지는 소주 병을 들어 주변 사람들의 빈 잔을 채워주면서 “안녕하세요. 전 정만호와 초등학교 때부터 불알, 아니지. 소울 메이트로 지내온 김예지라고 합니다. 오늘 찾아와 주셔서 감사해요”라고 말했다.
벌써 주변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있는 예지를 기가 막힌 듯 바라보고 있는 만호에게 맞은편의 유영빈 점장이 잔을 따라주며 빙긋 웃었다.
“쾌활한 친구네. 그때 민주 씨가 얘기해 준 동네 친구?”
“죄송해요. 오늘 자기도 끼고 싶다고 해서. 원래 선머슴 같기는 해도 저렇게까지 나대는 애는 아닌데”
영빈 옆자리의 유리가 민망해하는 만호에게 아니라는 듯한 미소를 띠었다.
“일부러 짧은 머리에 보이시하게 하나 보네요? 어울리기 쉽지 않은데 예쁘다. 잘 해보지 그래요. 만호 씨를 그냥 친구라고 생각하는 눈치는 아닌데”
만호는 얼굴을 붉히며 소주 잔을 들이켰다. 한눈으로 힐끗 민주를 바라보니 오랜만에 다시 만난 친구 사이처럼 예지와 웃으며 한창 이야기 중이었다.
“와! 정말이었구나. 우리 방배점 첫 공식 커플 탄생을 축하하며!”
몇 직원의 짓궂은 질문에 영빈이 유리와의 관계를 인정했을 때 회식 자리의 모두가 일어나 건배를 외쳤다. ‘러브샷, 러브샷’ 외침이 나오자 주저하는 영빈을 대신해 유리가 먼저 그와 포옹하는 자세를 취했다. 이후 왁자지껄해지는 분위기 속에 “그럼 두 번째는 누가 될까?”라고 말하자 순간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사람들의 눈동자가 민주와 강한나 매니저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에이.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닐까요? 저하고 강한…”
서한준이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떼려다 갑자기 뒤통수에 가해진 충격으로 고개가 앞으로 꺾였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한나가 그의 뒤에서 손바닥으로 머리를 내리치고는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누님은 너 같은 아가한테는 관심 없단다. 몇 번을 말해줘야 아니”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돌아가는 한나에게 애정 어린 눈빛을 보내는 한준의 모습에 모두의 폭소가 다시 한번 터졌다.
“그럼 민주는?”
민주에게 시선이 향할 때 누군가가 말했다.
“민주는 만호 아니야? 둘이 맨날 조리실에서 같이 있잖아. 썸 탔어도 벌써 타고도 남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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