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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토라세 방배점 아침 조회 시간. 사무실 중앙에서 유영빈이 나란히 옆에 선 강한나를 보며 말했다.

“점장님, 조회 시작할까요”

영빈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섰고 한나가 목을 가다듬고는 맞은편의 매장 직원들을 한 번 둘러봤다.

“오늘부터 방배점 점장으로 일하게 된 강한나입니다. 잘 부탁, . 부끄럽네요”

한나가 말을 마치지 못하고 쑥스러운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직원 중 누군가 ‘강한나 점장님, 축하합니다’라며 시작한 박수에 모두가 함께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어제 늦은 오후에 조직개편 발령이 사내 게시판에 올라왔다. 유영빈 점장의 본사 복귀는 이미 알고 있던 만큼 더 이상 새로울 게 없었다. 매장 직원들을 술렁이게 만든 것은 두 건의 발령이었다.

 

강한나 과장 – 명) 방배점 점장

서한준 사원 – 진급) 대리, ) 방배점 부점장

 

누구도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이번 조직 개편의 최대 관심사는 유영빈의 뒤를 이어 누가 점장으로 오는가였다. 강한나 매니저도 본사로 복귀한다는 소문도 꽤 돌았던 만큼 그녀가 영빈의 뒤를 이을 거라는 예상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 때문에 발령 내용에 처음에는 모두 놀랐지만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였다.

“그래도 새로운 사람보다는 나은 거 같은데”

“하긴 엄한 사람 와서 고생하느니, 강한나 매니저야 어떤 스타일인지 아니까”

“그리고 요즘 많이 변한 거, 다들 느끼지? 엄청 부드러워졌잖아. 예전에는 거의 얼음 마녀였는데. 연애의 효과인가?

한준이한테 고마워해야겠다. 아니지, 이제 부점장님이지. 잘 모셔야겠어. 하하

 

축하 박수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한나가 이제 그만하라는 뜻으로 두 손을 들어 양옆으로 저었다. 평소대로 검은 뿔테안경을 쓰고 있지만 그 안의 눈매는 예전보다 훨씬 따듯해진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명, 여러분과 더 가깝게 지낼 새로운 부점장을 소개합니다”

한나의 말에 서한준이 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하는 축구 선수처럼 두 팔을 위로 치켜 올리고는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외쳤다. 그의 장난기 가득한 행동에 사무실에 폭소가 터졌고 휘이, 하는 휘파람으로 응원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점장님, 부점장님 커플, 잘 부탁해요’라고 누군가 외친 소리에 한나는 다시 한번 얼굴이 빨개졌고 한준은 씩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들고 ‘걱정 마세요’라며 큰 소리로 답했다.

 

조회가 끝나고 영업이 시작됐다. 사무실에는 영빈과 한나, 한준만 남았다. 영빈이 떠날 채비를 마치고 한나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이제 갈게요

“발령일이 아직 남았는데, 오늘부터 본사로 가시네요”

“다 알면서 뭘 새삼스럽게, 하하. 오늘 회의 참석하라고 어제 발령 뜨기도 전에 전화 왔어요”

영빈이 백팩을 뒤로 메면서 웃었다. 노트북을 포함해서 별로 챙길 것도 없이 짐은 단출했다.

“맡으시는 팀 이름이 뭐였죠? 영어 약자여서 무슨 뜻인지 모르겠던데요”

FS 팀이었잖아요. ‘프레시 샌드위치의 줄임말. 뜻을 보면 딱히 멋있는 팀 이름은 아니죠”

한나의 질문에 영빈이 대답하려 할 때 서한준이 먼저 끼어들었다. 영빈이 다시 한번 피식 웃었다.

“그래, 점장님 필요할 때 지금처럼 잘 도와드려요. 부점장님”

 

보름 정도 전이었다. 서한준이 본사 복귀를 포기하고 현장에 남겠다고 했을 때 영빈은 바로 며칠 전 한나에게 했던 말을 똑같이 되풀이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 거죠? 강한나 매니저도 그러더니, 둘이 짠 건가. 이유가 뭐예요?

대리 진급이 결정된 한준이 제안받은 것은 본사 전략기획팀 자리였다. 데이터에 능통한 그의 능력을 펼치기에 더할 나위 없는 기회임과 동시에 LJ 그룹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핵심 부서로의 이동 건을 한준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거절한 것이다. 영빈은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 간단한 건데요. 여기 남을 이유는”

한준은 어깨를 으쓱하며 뭘 그런 걸 묻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한준 씨도 매장에서 일하는 게 더 즐거울 것 같다는 건가?

영빈의 말에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서요. 사랑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을까요”

 

배웅은 쑥스럽다며, 조용히 가겠다는 영빈의 만류에 한나는 사무실 출입문에서 악수를 청했다. 영빈도 환한 미소로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볼드모트의 모습에서 간달프가 된 유영빈 팀장님의 본사 복귀를 축하해요”

“나도 강철 여전사가 어떻게 변할지 기대할게요. 또 봐요”

둘은 맞잡은 손을 뗀 후에도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한준에게는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두 사람이 눈빛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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