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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손님이 앉아있던 테이블을 정리하고 일어났다. 1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는 그들에게 매장을 정리하던 민주가 밝게 웃으며 감사합니다. 또 찾아 주세요라고 인사했다. 이제 2층 매장에는 민주를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텅 비어 있는 그 공간을 그녀는 한참 동안 천천히 둘러봤다. 잠시 후 휘유, 짧은 한숨과 함께 매장의 조명 스위치를 내렸다. 그렇게 카페 토라세 방배점에서 민주의 마지막 날이 끝났다.

 

영업을 마치고 퇴근하는 직원들 모두가 민주에게 한 마디씩 작별 인사를 건넸다. 막냇동생을 어디론가 멀리 보내는 오빠의 표정을 짓고는 ‘건강해요, 가끔 놀러 오고’라면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민주는 한 명씩 그들의 얼굴을 마주하며 애써 명랑하게 예압,이라고 장난기 어리게 웃으며 답했다.

 

서한준이 어떻게 그냥 보낼 수 있냐며, 아쉽다면서 ‘벚꽃 매장 멤버끼리 딱 맥주 한 캔씩만 해요’라고 강한나 점장에게 애처로운 눈빛을 보냈다. 원래였으면 매장 내에서 음주라니, 징계 감이라며 발끈했을 한나도 이날만큼은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승낙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준이 근처 편의점에서 캔맥주와 간단한 안줏거리를 사들고 매장 사무실로 서둘러 돌아왔다. 테이블에는 한나와 만호, 민주가 서로 마주하며 앉아 있었으나 모두 아무 말 없이 조용했다.

비닐봉지에서 사 온 것들을 하나씩 꺼내며 한준이 “오는 길에 벚꽃나무 아래에서 함께 마셨던 때가 생각나더라고요라며 웃었지만 아무도 반응이 없었다.

다들 왜 그렇게 기운이 없어요? 다시 영영 못 만날 사이도 아니고. 좀 웃어요”

한준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분위기 좀 내볼까요? 무슨 음악이 좋을까. 공일오비 이젠 안녕’, 다들 이 노래 모르죠? 워낙 옛날 곡이라. 하하”

피아노 전주가 흐르기 시작하자 한준이 눈을 감고 멜로디를 따라 작게 흥얼거렸다. 그 소리에 한나가 ‘진짜, 좀 가만히 좀 있어라’라고 등짝을 한 대 후려쳤다. 그제야 민주가 큭큭 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거봐요. 웃자고요. 우리 웃으면서 마지막을 보냈다고 나중에 또 모여서 이야기할 수 있게요”

한준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민주 씨는 이제 뭐 할 계획이에요?

한나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맥주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던 민주가 한 모금 마신 후 대답했다.

“음. 일단은 취업 준비죠. 그런데 좀 다르게 하고 싶어요”

“다른 방법? 자격증 시험이라도 준비하려고요? 아니면 공무원? 에이, 그건 민주 씨하고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한준의 말에 민주가 ‘당연히 아니죠’라며 고개를 젓고는 사무실 천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바로 내일부터 시작할 게 있는데요”

조용하게 대화를 듣고 있던 만호가 민주의 얼굴을 바라봤다.

“일단 놀 거예요”

민주는 스마트폰을 꺼내 항공편 예약 일자가 떠있는 화면을 모두에게 보여줬다.

“딱 두 달만 발길 닿는 대로 다녀 보려고요. 일단 내일 싱가포르로. 그리고 다음에 어디로 갈지 생각해 볼 거예요”

 

천진난만하게 여행 계획을 설명하는 민주의 모습을 한나는 팔짱을 낀 채 바라봤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대책 없이 순진하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참 밝은 모습만은 여전하구나.

처음 민주를 만난 곳도 이 사무실이었지. 면접 때는 저 작은 체구와 앳돼 보이는 외모가 정말이지 미덥지 못했는데. 절대 채용하면 안 된다고 반대했던 자신을 유영빈이 어떻게든 설득해 보려 애쓰던 것이 며칠 전 같았다. 연달은 실수를 보고는 매번 질책했었지. 날 선 말에 눈물이라도 떨굴 것처럼 주눅 들곤 하던 민주가 어느 틈에 이렇게 성장했구나. 한나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 짓고 있었다.

 

이 밝은 아이와 함께 한 시간 동안 나도 변할 수 있었구나. 한나는 민주 곁으로 다가가서 오른손을 내밀었다. 민주도 얼떨결에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민주 씨, 미안했어요”

한나가 악수하던 민주의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감싸고 말했다.

“처음에는 많이 모질게 대했어요. 그때는 내가 잘 몰랐어요. 민주 씨가 가진 장점을 발견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버렸어요. 하찮은 원칙보다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소중하다는걸, 그걸 나한테 보여줘서 고마워요. 민주 씨 덕분에 이제야 알게 됐어요”

민주의 얼굴이 홍당무 색으로 물들었다. 예상치 못한 한나의 사과에 민주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 아니에요. 저야말로 매니저, 아니 점장님한테 더 많이 배웠는걸요. 늘 덤벙대고 칠칠치 못했던 저는 점장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점장님처럼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제게는 점장님이 밤하늘에서 길잡이가 되어주는 북극성 같은 분이었어요”

 

말 끝을 흐리며 민주가 울먹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한나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이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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