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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복사가 뭔지도 몰랐어. 엄마가 시켜서 어쩔 수 없이 복사단 들어간 거였지. 처음으로 제대 위에 섰을 때 엄마는 가문의 영광이라면서 미사 내내 울었어. 내심 복사에서 시작해 그대로 사제까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셨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대를 못 이어도 괜찮겠냐고 아빠가 걱정하면 “그건 정 씨 가문 문제지 내 알 바 아니다”라며 슬쩍 웃었을 정도니. 그것도 모자라 우리 엄마가 너한테까지 수녀님 되라고 했었잖아. 옆에 있던 너네 엄마가 그 말 들었을 때 표정이 아직도 기억나서 창피해진다.

수연이 너한테 몇 번이나 물어봤잖아. 저녁 미사 같은 거 하지 왜 힘들게 일요일 새벽 미사를 서냐고. 나야 엄마 때문에 붙박이였지만 말이야. 그래 놓고는 언제부터인가 엄마가 11시 교중 미사에 참석한다고 새벽에 오지 않았지만.

넌 새벽 미사 끝나고 성당 밖으로 나왔을 때 막 동트기 시작하는 하늘의 색하고 하루가 막 시작되는 듯한 공기 냄새가 좋다고 했었지. 그때는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어느 날 나도 알게 됐어. 어느 초여름 날이었을 거야. 전날 밤에 비가 왔는지 희미한 물 비린내가 코를 간지럽혔고 길가에 군데군데 빗물이 고인 물웅덩이가 아침 햇살을 머금고 반짝이고 있었어. 방금 귓가에 울리던 성가의 오르간 반주 소리가 살랑이는 바람에 묻어 텅 빈 거리에 울려 퍼지는 듯했지. 집으로 가는 길에 한 발자국씩 내딛는 발걸음이 폭신해지기 시작했어. 솜사탕 위를 걷는 것처럼 마음이 달콤해졌어. 그때 생각했어. 수연이가 말한 기분이 이런 거였구나, 하고.

 

성당이 이렇게 작았었나. 성당 출입문 앞에 서서 십자가가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붉은색 벽돌 건물을 한참 바라봤다.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절반 정도 크기로 줄어든 것처럼 보였다. 아직 어둑한 새벽녘에 성당에 도착했을 때 고개를 한껏 들어야 눈에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컸었는데. 지난 시간이 새삼스레 실감 났다. 성당으로 들어가자마자 인사를 드렸던 성모상도 기억보다 때가 타고 낡아 보였다. 나만 늙어가는 줄 알았는데 성당도 마찬가지였구나. 그동안 보수 공사를 했는지 눈에 익지 않은 곳도 꽤 보였다. 이층에 있는 본당까지 들어가 볼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당을 거닐며 옛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때 누군가의 손바닥이 등에 세게 부딪혀 왔다.

“안녕! 암브로시오 형제님.

아프기보다는 깜짝 놀라 거칠게 뒤를 돌아보니 수연이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은 채 미사 중에 하는 것처럼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세례명을 들은 것은 오랜만이었다. 성당에 발길을 끊은지도 한참 되었다.

“주님의 평화가 함께.

“이게 정말.

“뭐해? 너도 평화의 인사를 나눠야지.

입술을 비쭉 내밀며 날 바라보는 천진난만한 표정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같은 인사말을 건네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수연이는 변한 듯 변하지 않았다. 장난기 가득한 동그랗고 큰 눈부터 시야에 들어왔다. 어른들이 귀여운 토끼 같다고 했던 동그란 얼굴과 자그마한 체형도 그대로였다. 대학교 때까지 늘 긴 생머리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어깨 위에 살짝 걸쳐질 정도로 짧아졌고 웨이브를 넣은 건지 어두운 갈색 머릿결이 그때보다 더 곱슬거렸다. 회색 후드티에 다운 조끼를 그 위에 걸쳤고 통이 큰 짙은 녹색의 카고 팬츠 아래 러닝화 같은 하얀 운동화를 신은 모습이 그때나 지금이나 선머슴처럼 하고 다니는 건 여전했다.

“뭘 그렇게 보고 있냐. 사람 쑥스럽게.

“너 하나도 안 변해서. 대학교 때랑 그대로다. 진심.

평소답지 않게 얼굴이 불그스레해진 수연이 잠시 눈을 바닥으로 내리깔았다가 내 팔짱을 끼고 걷기 시작했다.

“어쭈. 이제 듣기 좋은 말도 할 줄 아네. 배고프다. 얼른 가자.

 

뭐 먹고 싶냐고 묻지도 않은 채 나를 이끌고 간 수연이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성당에서 멀지 않은 감자탕 집이었다. 나도 모르게 “여기가 아직도 있네”라고 중얼거렸다. 성당 활동에 아직 열심이었던 때의 추억이 깃든 곳이었다. 청년부 모임을 마친 후 술자리는 항상 여기서 했다. 먼저 자리를 잡고 앉은 수아가 아직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보고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장소 잘 골랐지? 너 딱 그런 표정 지을 것 같더라. 어라, 우는 거?

“울긴 뭘 울어. 그래, 잘 골랐다. 여길 잊고 있었네.

“근데 그때 아주머니는 안 계셔. 주인이 한 번 바뀌었거든.

“그건 아쉽네. 같은 성당 식구라고 우리한테 잘 해 주셨는데.

둘이 마주 앉은 자리 주변에 여러 얼굴이 스쳐 지났다. 복사단 때부터 같이 자라 온 형들과 친구들. 성가대 아이들. 그중 연락하며 지내는 사람은 없다.

“그러고 보니 너 우리랑 마지막으로 술 마신 곳도 여기였잖아. 왜 여름 수련회 다녀와서 뒤풀이 할 때였나. 너 막 울고 그랬지. 이제 청년부 그만두게 됐다고. 영화라는 꿈에 모든 걸 바치려 한다고.

 

수련회 가기 전부터 마음은 먹고 있었어. 이미 학교 앞에 집을 구해놓은 후였거든. 영화 만든다고 주일도 못 지킨지 일쑤였고, 너한테 날라리 신자 다 됐다고 욕도 많이 먹고 그랬잖아. 오늘은 말해야지 하면서도 막상 입 밖으로 못 내다가 그날 술기운에 털어놓을 수 있었던 거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더라. 취해서 기억이 드문드문 하긴 한데 걱정했던 것보다 다들 응원해 줘서 기뻤어. 복사 단장이었다가 그때는 청년 부장을 맡았던 명수 형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이것도 주님의 뜻일 거라고, 후회하지 않도록 끝까지 가보라고 해줬지. 이제야 돌아왔네. 꿈은 이루지 못한 채이지만 말이야. 남은 후회는 정말 없는 걸까.

 

수연이는 술이 더 세진 듯했다. 대학생 때도 못 마시는 편은 아니었는데 앞 접시에 덜어놓은 감자탕 국물 한 수저를 뜰 때마다 소주 한 잔씩을 넘겼다.

“근데 시디에 뭐가 들어있는데? 말은 그럴싸하게 해 놓고서.

술이 두 병째 비워졌는데도 얼굴이 멀쩡한 수연이 팔짱을 낀 채 팔꿈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내 쪽으로 상체를 숙여왔다. 내가 가방에서 꺼낸 투명 시디 케이스를 건네자 골똘히 들여다보더니 얼굴이 일그러졌다. 크크큭 거리는 소리를 내뱉다가 곧 크게 웃기 시작했다.

“이거 뭐야. 러브 레터야? 내 이름만 달랑 써져 있는 시디라. 뭐가 들었는지 되게 궁금하네. , 설마 이제 와서 나한테 고백하는 거니?

“고백은 무슨. 나중에 보면 알 거야.” 수연이 카고 바지 옆 주머니에 케이스를 넣는 걸 보고 물었다.

넌 어떻게 살았어? 결혼은 했고?

“결혼? 했다가 안 했지.

“그게 무슨 말이야.

“돌싱이시다, 이 말이다. 이년 전에 이혼해서 부모님 집으로 다시 들어왔어. 그래서 이 동네에서 보자고 한 거야.

“그랬구나. 미안하다.

미안하긴, 됐다며 손을 내젓는 수연의 얼굴에 살짝 민망한 기색이 비쳤다. 그러는 너는 결혼했냐는 녀석의 말에 아직 혼자라고 했다. 수연은 요즘 동네 성당을 나가면서 엄마에게 내 소식을 간간이 듣는다고 했다. 안경점은 잘 되냐는 말에 그냥 먹고 살만하다고, 아이들이 안경 맞추러 오거나 돋보기안경 사러 오는 동네 단골 덕분에 까먹지 않으면서 유지는 하고 있다고 했다. 수연이 내 잔에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아쉽다. 계속하지 그랬어.

“조감독까지는 어떻게 한 번 해봤는데. 그 다음이 쉽지 않더라고. 시나리오를 써도 받아주는 제작사가 없으니. 곧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보니까 현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 꿈만 먹고 살 수는 없더라고.

“그런데 왜 안경점이야.

“나보다 먼저 영화판 떠난 선배가 추천해 줬어. 기술은 금방 배울 수 있고 매장 입지만 잘 잡으면 괜찮다고 해서. 넌 무슨 일하고 지내는데?

“내 전공이 뭐였는지는 기억해?

“당연하지. 우리 같은 학교 다녔잖아. 영어과였지?

“재수해서 후배로 왔다고 네가 얼마나 무시했던지. 그거 생각하면 아직도 열받네. 여하튼, 전공 살려서 먹고살고 있어.

수연은 입학은 나보다 늦었지만 졸업은 먼저 했다. 3학년부터 수업보다는 촬영 현장에 주로 나가 있어서 학점은 학사 경고를 면할 정도만 겨우 받았다. 때문에 학교에서 서로 마주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빈 병이 세 개로 늘었지만 감자탕은 절반 넘게 남았다. 수연이는 시디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하다고, 보고 나서 감상평을 말해주겠다면서 한쪽 눈을 찡긋하고는 이제 일어나자고 했다. 전철역까지 데려다주겠다는 걸 무슨 애도 아니고 괜찮다고 하고는 가게에서 나와 바로 헤어졌다. 걷던 중에 오늘은 부모님 집에 가서 잘까 하다가 지난주에 이사를 가버리신 사실이 기억났다. 갑자기 이 동네가 낯선 곳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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