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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비가 아침부터 계속되고 있었다. 거리를 자욱하게 채운 썰렁하다 못해 스산한 기운이 가을을 지나 겨울로 넘어가고 있음을 알려오는 듯했다. 오늘처럼 궂은 날씨에는 시장을 찾는 사람이 뜸하다. 안경점이야 사람이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늘 한가한 편이지만 그래도 가끔 ‘장 보러 나온 김에 요즘 눈이 흐려졌는데 싼 돋보기라도 하나 마련해 볼까’ 싶어 들어오는 어르신조차 기대하기 어렵다.

창문 밖으로 쏟아지는 빗줄기와 드문드문 스쳐 지나는 색색의 우산을 바라보며 성당 사람들을 떠올렸다. 어제 수연과 만난 후 꽁꽁 싸매어 놓은 채 꺼내보지 않던 얼굴들과 그때의 일들이 닫혀 있던 상자를 열고 하나둘씩 고개를 빼꼼히 내어놓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반주단 소속으로 일요일 새벽 미사 오르간 연주를 담당했던 누나의 얼굴이 가장 오래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오랫동안 짝사랑했던 사람. 성당에 못 오게 될 것 같다고 말한 그 자리에도 같이 있었지만 끝내 마지막까지 내 마음을 내보이지 못했던 사람.

 

그때 우산을 바깥쪽으로 털며 손님이 들어왔다. 아는 얼굴이었다. 할머니와 여기서 안경을 맞춘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요즘 부쩍 자주 찾아오는 둘이었는데, 할머니의 표정을 보니 이번에도 같은 일이겠구나 싶었다.

“총각. 이번에도 부탁할 게 있어서.” 할머니가 손자의 등을 내 쪽으로 살며시 밀었다.

“저기 이거요. 또 부러졌어요.

아이가 왼쪽 다리가 부러진 안경테를 손바닥 위에 올려 내 쪽으로 보여줬다. 예상했던 대로여서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너 또 게임하다가 그냥 잠들었나 보네. 그러면 안 된다고 아저씨가 얘기했잖아. 그러다 몸에 눌리면 안경 망가진다고.

“어휴, 몇 번이나 주의를 줬는데도. 이번에도 일을 내버렸네.

“그래도 학원 갔다 집에 오면 열 시인데, 엄마가 자기 전에 한 시간은 게임해도 된다고 했단 말이야.

미안해하는 할머니의 말에 손자가 볼멘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공부하느라 힘들겠다. 게임이든 뭐든 스트레스는 풀어야지. 이리 내 봐. 아저씨가 고쳐줄 게.

검은 철제로 된 그리 비싸지 않은 안경테다. 새로 하나 사라고 권하는 게 장사에는 도움이 될 테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서랍에서 교체용 안경다리를 꺼내 부러진 쪽의 나사를 풀고 바꿔 달았다. 앞으로는 누워서 게임할 때 안경 벗고 하라고 말해주며 녀석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줬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돋보기안경은 쓰시기 괜찮냐고 물었다. 아주 밝게 잘 보인다며 매번 이렇게 친절하게 고쳐줘서 고맙다고 몇 번이나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손자의 손을 잡고 나갔다. 시장 골목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만 희미하게 들려오는 적막함이 다시 천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수연이 넌 뭐든 야무졌지. 엄마가 시켜서 복사를 섰던 것처럼 해야 하니 공부를 했고 친구들이 다니는 학원을 따라갔던 나와는 달랐어. 여자아이가 복사를 한 것도 네가 원해서 부모님을 졸랐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 같이 복사 서던 4년 동안 넌 한 번도 빠지지 않았어. 어쩌면 네 덕분에 나도 덩달아 개근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네. 그 새벽에 항상 먼저 도착해 복사복으로 갈아입고 준비를 마친 네게 지고 싶지 않았으니까.

네가 재수를 한 것도, 내 후배로 우리 학교에 온 것도 운이 없어서 였다는 거 알아. 넌 여고를 다녔지만 소문은 들었어. 전교 등수에서 한 자릿수를 놓친 적이 없었다고. 왜 우리 학교에 왔냐며 놀란 내게 첫 수능 때는 독감에 걸려서, 재수할 때는 긴장해서 밀려 쓴 것도 다 자기 실력이라고 넌 후회 없다고 했지. 그래도 가장 커트라인이 높은 과에 왔잖아. 나야 점수에 맞춰서 아무 관심도 없었던 이탈리아어를 전공으로 삼았지만 말이야. 난 지금도 기초 회화 밖에 못 해. 넌 동시통역사가 되었다고 했지. 진심으로 멋지다고 생각해.

 

수연에게선 연락이 없었다. 시디 안에 담긴 내용을 확인했다면 좋았든 싫었든 간에 그냥 넘어갈 녀석이 아니기에 은근히 신경 쓰였다. 그렇다고 먼저 물어보기도 그랬다. 카톡으로 “봤어?”라고 입력했다가 지우기를 몇 번 하다가 그만둔 후 며칠이 지나 전화가 왔다.

“이번 주말에 뭐 하냐?

“주말? 별일 없긴 한데. 그건 그렇고 시디는…”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성당 사람들이 너 보고 싶대. 우리 단톡방에서 지난번에 너 만났다고 했더니 난리가 났거든.

“아직도 같이 성당 다니는 거야?

“설마. 지금 우리 나이가 몇 개인데. 각자 다른 동네에서 살고 있지. 연락하면서 가끔 모이는 정도야. 토요일 저녁 비워놔라.

“그래… 어디서 볼 건데?

“어디긴 어디야. 감자탕 집이지.

오랜만에 만난다는 생각에 반갑기도 했지만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설명할 걸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에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듯 답답했다. 그렇다고 나 때문에 모인다는 데 거절할 수도 없었다. 수연은 마뜩해 하지 않는 걸 눈치챘는지 은근한 말투로 속삭이 듯 말했다.

“너 꼭 와야 할 이유가 하나 있지. 너의 그녀도 온 다더라. 반주하던 언니. 사실 우리도 오랜만에 보는 거야. 혜은이 언니 미국에서 살고 있는데 이번에 들어왔어.

 

새벽 미사 복사를 빠지지 않은 건 다른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보고 싶은 얼굴이 있었다. 제대에서 신자석을 향해 섰을 때 보이는 2층에 있는 성가대 자리와 왼쪽의 오르간. 그걸 연주하는 사람이 나보다 세 살 많은 중학교 2학년, 윤혜은 누나였다. 복사단과 반주단은 서로 교류할 일이 없어서 미사가 끝나고 나오다가 마주쳐도 그냥 스쳐 지나갔다. 누나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아직 국민학교 5학년이었고 이성보다는 게임이나 만화에 관심이 쏠려 있을 때이기도 했다.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야 오르간을 연주하는 사람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성가 선율의 아름다움이 가슴으로 들어와 핏줄을 통해 몸 깊숙이 퍼져나가는 경험과 함께 누나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새벽 미사는 오는 사람이 매주 비슷하기에 앉는 자리도 거의 정해져 있었다. 오른쪽 신자석 가장 앞 줄에 앉는 장애인 아저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헌금을 내거나 성체를 모시러 제대 쪽으로 나올 때면 그는 온몸을 비틀 듯 힘겹게 발을 내디디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찡그리는 듯, 울고 있는 듯 보이기도 했지만 그 아저씨는 얼굴의 모든 근육을 사용해 활짝 웃고 있다는 걸 알고 난 후, 그의 모습을 볼 때면 오르간 반주가 귀를 통해 들어와서는 눈물로 변해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때부터였다. 아름다운 곡을 연주하는 누나의 모습이 빛나 보였다.

 

그 즈음부터 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래봐야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열심히 빌려보는 정도였지만. 당시 가장 인기 있는 건 홍콩 영화였는데 황비홍을 보던 중에 혜은이 누나와 꼭 닮은 여배우가 눈에 들어왔다. 큰 눈과 오뚝한 콧날, 도톰한 입술의 그녀가 웃는 장면을 몇 번이나 돌려보다 보면 영화 주제곡의 북소리처럼 가슴이 쿵쾅거렸다.

 

하지만 모든 짝사랑이 그렇듯 내 첫사랑은 찬란한 기쁨으로 채색되지 못한 채 끝나 버렸다. 너무 늦은 사랑이었다. 혜은이 누나는 우리 복사단장인 명수 형과 사귀고 있었다. 새벽 미사를 마치고 나온 누나를 기다리던 형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봤던 날은 텅 빈 거리에 뒹구는 가을 낙엽처럼 마음이 빙글빙글 헛돌았다. 그날부터 그녀의 오르간 연주에 맞춰 흐르는 눈물에는 말하지 못한 사랑의 아픔이 절반 정도 섞여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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