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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조건(상)

 

이곳에 발령받은 지 삼 개월째지만 내 앞의 이 여자는 여전히 무섭다. 강한나 매니저와 매장 사무실 테이블에서 마주하고 앉았다. 일단 외모가 평소와 달랐다. 좋은 징조는 아니다. 평소 길게 늘어뜨리던 긴 머리를 포니테일로 대충 묶은 채, 늘 쓰고 다니는 검은 뿔테안경의 오른쪽 부분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고 있다. 뭔가 심기가 불편할 때 하는 버릇임을 난 알고 있다.

 

“점장님, 매니저로서 건의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네 강한나 대리님, 말씀하세요”

내 대답에 그녀의 표정이 살짝 찌그러졌다. 

“매장에서는 직급이 아닌 직책으로 불러달라고 여러 번 말씀드린 걸로 아는데요. 아니면, 앞으로는 저도 점장님이 아니라 유영빈 과장님,이라고 해 드릴까요?”

“앗. 미안해요. 아직 본사에서 했던 버릇이 남아 있어서… 조심할게요. 그럼, 강한나 매니저님. 무슨 건의인가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나가 툭 내뱉듯 말했다.

“아르바이트 민주 씨, 이제 그만두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요즘 들어 한결 편해진 듯 보이던 민주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른 직원들과 휴식 시간에 스스럼없이 농담도 하는 등 잘 어울리기 시작했다. 처음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제 어엿한 우리 가족이 되었구나 생각해서 안심했는데.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또 있었던 건가.

“물론, 처음에는 강 매니저한테 여러 지적받았던 것 알고 있어요. 나도 몇 번 코치해 줬고. 지금은 꽤 적응한 걸로 알고 있는데, 왜죠?”

“확실히 작은 실수는 줄었죠. 하지만 여전히 시한폭탄 같은 아이라고요”

 

어제 일이었다고 했다. 한 고객의 음료 주문을 민주가 받았다. 진동벨을 들고 음료를 가지러 온 고객에게 민주가 전한 것은 주문한 아이스 카페 모카가 아니라 라떼였다. 당황한 고객이 자기가 주문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을 때, 일이 터졌다.

“그때 제가 지나가면서 봤기에 망정이지. 걔가 고객한테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고객님, 어쩌죠?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제가 다시 만들어 드릴게요. 참. 이건 죄송한 제 마음으로…”

민주는 초롱초롱 빛나는 큰 눈으로 삼천 원에 판매하는 아몬드 쿠키를 수줍게 고객에게 내밀었다. 그 모습은 마치, 밸런타인데이 때 같은 반 훈남에게 초콜릿을 건네는 여고생 같았다며, 한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풉. 심각한 분위기를 잊은 채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제가 끼어들어서 상황을 무마하고 나중에 민주 씨 불러서 한 마디 해줬어요. ‘판매하는 물건 그렇게 마음대로 증정하고 그러면 안 된다’고. 그랬더니 걔가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니까요”

나는 이 일의 잘잘못을 판단하기보다, 민주가 뭐라고 말했을까가 더 궁금했다.

 

딱딱하게 굳어있는 강 매니저의 눈을 마주하지 못한 채, 민주는 바닥을 바라보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나중에 제가 결재하려고 했어요. 공짜로 손님한테 주는 게 아니고요. 제가 잘 못해서 기분 나쁘셨을 테니까…”

웃다가 큭큭 거리며 잔기침까지 내뱉는 날 강 매니저는 한심하다는 듯 째려보기 시작했다. 또 당근색으로 물들었을, 민주의 햄스터 같은 표정을 생각하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여하튼, 매장 운영의 의사 결정권은 저한테도 있으니, 이 건은 꼭 관철시키고 싶습니다”

한나는 뿔테안경을 코 위로 살짝 올린 후 매서운 눈초리로 내게 가볍게 인사하고 사무실에서 나갔다. 이 일을 어쩐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무마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판매 상품의 무단 반출 여지도 있고, 그냥 덮어버린다면 강 매니저 성격에 곧 있을 상반기 상사 평가에서 이 일을 그냥 넘길 리 없었다.

 

나는 엄한 표정을 지으려 애쓰는 중이었다. 오늘 폐점 후 강한나 매니저와 민주에게 잠시 남으라고 한 후, 사무실에 셋이 모였다. 

“민주 씨, 어제 있었던 쿠키 건. 강 매니저에게 보고받았습니다”

“네에…” 민주는 잔뜩 풀이 죽어 어깨를 움츠린 채 내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회사 방침에 어긋나는 행동임이 분명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민주 씨가 우리와 함께 일하지 못할 이유도 됩니다”

내 말에 민주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보고 싶지 않았다. 난 오른 편에 앉아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날 노려보고 있는 한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민주 씨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고자 해요”

이번에는 한나에게서 눈을 피했다. 틀림없이 다 잡은 가젤을 눈앞에서 놓친 살쾡이 같은 표정이겠지.

“왜냐하면 민주 씨도 우리의 소중한 고객이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안 좋은 경험으로 우리와 헤어진다면, 카페 토라세는 남민주라는 고객을 평생 잃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기도하듯 두 손을 맞잡은 채 꼭 감겨있던 민주의 두 눈이 활짝 뜨였다. 얘는 정말 눈이 크고 예쁘단 말이야.

 

내 목소리가 단호하면서도 인자하게 들리길 바라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민주 씨는 하나의 과제를 통과해야 합니다. 우리 카페는 온라인이나 카운터 옆 게시판으로 고객의 직원 칭찬을 접수하는 것 알고 있죠? 3개 이상을 받아 내세요. 그게 조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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