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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장 발령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르바이트 채용이었다. 2개 층 50석인 카페 규모에 비해 인원이 모자랐다. 월 매출 대비 인건비를 따져 봤을 때 2명 정도 비용 여유는 있었다.

 

“유영빈 과장, 2년 정도 현장 다녀와야겠어”

과장 진급 후 직영 카페 점장으로 나가는 것이 회사의 운영 방침이니 예상은 하고 있었다.

“현장 경험 가지고 본사 복귀하면 마케팅 시야도 넓어질 거야. 가서 머리도 좀 식히고”

부문장은 환경 좋은 매장으로 나를 배치시키느라 힘 좀 썼다며 한쪽 눈을 찡긋, 했다.

 

카페 토라세 방배점. 반년 전에 오픈한 직영점으로, 매출은 나쁘지 않으나 상권을 생각하면 더 잘 할 여지가 분명히 있는 매장이다. 케이크로 객단가를 높이려는 생각으로 한 명의 아르바이트는 우선 제빵 자격증을 가진 남자로 채용했다. 하지만 홀 관리 및 음료 담당은 뽑기가 여의치 않았다. 내가 마음에 들어해도 매장 매니저가 안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인사팀 동기가 ‘거기 일 잘하는 대리 하나 있다’더니, 강한나 매니저는 감탄할 만큼 똑 부러졌다. 하지만 뭐랄까, 고등학교 때 학생주임 같다고 할까. 빈틈이 없는, 내가 윗사람이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안심이 되는 무서운 면이 있었다.

“점장님, 아르바이트 그렇게 쉽게 뽑는 거 아니에요. 매장의 얼굴이라고요”

“그래도 이 친구는 괜찮지 않아요? 바리스타 자격증도 있고. 아까 면접 때 보니까 성실해 보이던데”

“제가 매장 경험만 4년 째인데요. 이 친구는 맷집이 없어 보여요. 조금만 힘들면 그만둔다고 할 것 같다니까요”

“그거야 우리 하기 나름이죠. 벌써 면접만 2주 째야. 그냥 이 사람으로 합시다. ?

 

강 매니저의 감이 맞았을까. 내 고집으로 뽑은 아르바이트는 손이 빠른 편은 아니었다. 아직 처음이니까, 며칠 지나면 좋아지겠지. 나는 케이크 생산에 주의를 쏟느라 매장 운영은 매니저에게 맡긴 상황이었고, 덕분에 케이크 판매량은 눈에 띄게 늘어났다. 가끔 스쳐 지나가는 아르바이트생의 얼굴이 어두워진 걸 눈치챈 것은 우리 매장에 온 지 일주일 후였다.

 

“남민주 씨, 잠깐 시간 돼요?

“네, 점장님”

매장 사무실 테이블에서 민주와 마주 앉았다. 아르바이트 채용 이후 따로 시간을 내어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다른 건 아니고. 지금 여유 있을 시간이니까. 민주 씨 어떻게 지내는지, 힘든 건 없는지 이야기해 보고 싶어서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쭈뼛대며 앉아있던 민주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어깨에 닿을 듯한 길이의 염색도 웨이브도 하지 않은 수수한 스타일의 검은 머리. 얼핏 보면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외모여서 나는 그녀의 이력서에서 올해 대학을 졸업했고 지금 취업 준비 중이라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작은 키에 호리호리한 체구. 화장기 없는 얼굴에 동그란 눈이, 처음 봤을 때 토끼나 햄스터를 연상시키는 인상이었다. 그 큰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고 있다. 게다가 조그만 매장 사무실에 단둘이 있는 상황. 누가 들어오기라도 하면 어쩌지.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았지만 난 막상 아무 행동도 못하고 의자에 앉아 손깍지만 하고 있었다.

 

“죄송해요. , 부끄러워”

민주가 눈을 비비며 코를 훌쩍일 때야 비로소 일어나 티슈 갑을 들어 그녀 앞에 올려줬다. , 하고 코를 한 번 푼 그녀는 금세 얼굴이 빨개지더니 연신 죄송하다고 고개를 꾸벅였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아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 좀 괜찮아요? 민주 씨 그동안 힘들어 보였는데 미리 귀 기울여주지 못해서 내가 미안해요”

내 말에 그녀의 눈이 다시 그렁그렁 해지기 시작했다. , 이게 아닌데.

“혹시 우리 매니저가 힘들게 하지는 않아요?

민주의 눈빛이 흔들리며 입술을 잘근대기 시작했다.

“아니, 다른 뜻이 아니라… 강 대리가 그 뭐랄까, 원칙 주의자잖아. 뭐 일은 잘 하지만. 혹시나 해서”

“아닙니다. 제가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매니저님 말씀대로 하려고 하지만 아직은 부족해요”

민주의 눈빛에 단호함이 조금씩 비치기 시작했다.

 

“그래요? 대표적으로 어떤 거?

“이거요”라고 말하며 민주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양팔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입고 있는 매장 유니폼 셔츠의 손목 부근 소매와 배꼽 근처에 얼룩이 묻어 있었다.

“매니저님한테 복장이 청결하지 않다고 자주 주의 받거든요. 조심한다고 하는데, 커피 내리거나 테이블 정리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자꾸 뭔가 묻어 있네요”

손으로 얼룩 부분을 문지르며 지우려 애쓰는 민주의 모습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풋, 하고 웃어버렸다.

“점장님도 제가 칠칠치 못하다고 생각하시죠?

민주가 뾰로통한 표정을 짓자 양쪽 볼이 살짝 부풀어 올랐다.

 

“아니요. 난 오히려 안심했는데?

민주가 다시 의자에 앉으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얼룩들은 민주 씨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오히려 자랑스러워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흔적도 없지만, 그건 민주 씨의 훈장 같은 거잖아. 오히려 난 고마워요. 열심히 해줘서”

진심이었다. 빙긋 웃는 날 보는 민주의 얼굴이 당근 케이크 위에 놓인 데코레이션 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감사해요. 큰 힘이 됩니다. 점장님!

연신 고개를 꾸벅이는 민주를 보기가 민망스러워 그럼, 짧게 말하고 먼저 사무실에서 나와 버렸다.

 

여전히 민주는 강 매니저에게 혼나고 있다. “컵이 플라스틱이라 안 깨져서 다행이지, 민주 씨가 떨어뜨리는 컵이 하루에 몇 개인지 알아요?” 난 그럴 때면 내 옷소매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는 시늉을 하면서 민주 옆을 지나며 눈을 마주친다. 녀석은 음, 하는 결의에 찬 듯한 표정과 눈빛으로 내게 답한다. 그녀의 유니폼에는 여기저기, 얼룩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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