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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신부님이라는 호칭은 조금 그렇네요”
“앗, 죄송합니다. 그럼 어떻게?”
“선배는 어떨까요? 제가 나이가 많은 것 같은데”
내 무신경함에 화가 났다. 사제라고 불리는 것에 거부감을 가질 거라고 왜 생각 못했을까. 걱정과 달리 그의 표정은 평온했다. 화가 나 있지도, 난처해 하지도 않은 얼굴.
“그럼, 유석 선배님. 댁에 들어가기 전에 간단한 안줏거리 좀 사갈까요?”
“그래요. 맥주나 와인은 충분히 있어요”
함께 걷던 사람들이 와, 하고 작게 탄성했다.
“하긴 신부님들은 술 드셔도 되잖아요?”
“그럼요. 매일 드시는 분들도 꽤 있죠. 후후”
아까 낮에 간 미술 전시회에서 예전에 꽤 친하게 지내던 지인과 우연히 마주쳤다. 그는 다섯 명의 무리와 함께였는데, 어쩌다 보니 자연스레 거기에 섞이게 됐다. 그중에서 유독 한 사람이 작품에 대한 평을 주도했다. 모두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모습에서 그가 이 모임의 중심임을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신부님,이라 부르고 있었다.
“재영 씨라고 했죠? 무슨 일하세요?”
“아 네, 조그만 프로덕션 운영하면서 방송 프로그램 만들고 있습니다”
“PD님 이시구나. 어쩐지, 그림에 대해서 잘 아신다 했어요. 미술이나 영상이나 같은 시각 예술 분야니까”
러시안 아방가르드 화풍에 대해서는 몇 년 전에 방송을 만든 적이 있어 얕게나마 알고 있었다.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에 자연스럽게 신부님이라 불리는 사람과 대화가 트였다.
“신부님이라고 불리시던데. 로만 칼라를 안 하셨네요?”
“잘 아시는군요. 혹시 신자이신가요?”
“네. 지금은 냉담하고 있지만, 견진 성사까지는 다 마쳤습니다”
오늘은 사제라는 위치를 잠시 잊고, 기분 전환 겸 평상복으로 나오신 건가.
“음 그야. 이제는 사제가 아니니까요. 몇 년 전에 그만뒀습니다”
반가운 마음은 잠시였다. 뭐라 답해야 할지 말문이 막혀 있을 때 그가 내 어깨를 가볍게 치며 말했다.
“지금은 그림 이야기만 하죠. 저녁에 시간 괜찮으세요? 모두 제가 사는 집에 가기로 했는데”
그 후 두 시간 정도 미술관을 거닐며 지인에게 그에 대해 물었다. 이름은 한유석. 바티칸으로 사제 유학을 갔다가, 거기서 그림에 홀딱 빠졌대. 돌아온 후에도 미술 평론으로 박사까지 했다고 하더라고. 내가 처음 알게 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사제였어. 그런데 몇 년 전에 그만뒀다는 소식이 들리더라. 아니, 직접 들은 건 아니고. 근데 어떻게 해. 예전부터 신부님이라고 불렀는데, 계속 신부님이지 뭐.
과연 그림에 대한 그의 설명은 깊이가 달랐다. 작가의 배경뿐만 아니라 당시 시대상과 역사적 사건들까지 엮어내는 말솜씨가 방송 진행을 맡겨도 될 정도였다.
“아, 말을 많이 했더니 배고프군요. 이제 정리하고 저희 집으로 가시죠”
초대는 받았지만 막상 함께 가도 될지 주저하는 나를 보며 유석이 싱긋 웃었다.
“PD 님도 함께 가시죠. 이렇게 만난 것도 주님의 뜻인 것 같은데”
와인이 다섯 병 째 비워졌다. 간단하게 만들겠다는 유석의 음식 솜씨는 결코 간단치 않았다. 별것 없어 보였던 마늘 파스타의 풍미는 여느 전문점 못지않았고 종류 별 치즈도 와인과 맛깔나게 어울렸다.
“자취 생활만 30년이 되어 가니까요”
동행 중 유난히 취한 여자의 호들갑스러운 요리 실력 칭찬에 유석이 말했다.
“그런데요. 신부님. 아니지. 그럼… 유석 씨? 그렇게 불러도 되죠? 왜 그만두신 거예요?”
당황한 분위기의 침묵이 잠시 이어졌다. 모두 유석의 눈치만 보고 있을 때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사실 제 친구도 사제거든요. 저랑 같이 복사 5년 동안 한 녀석인데, 여하튼 걔가 그러는데. 신부님들도 중간에 그만두시는 거 많다고 하더라고요. 이직하는 것처럼. 뭐 이것도 하나의 직업이니까요”
“제가 왜 사제를 그만뒀는지, 사실 여러분 많이 궁금하셨죠?”
유석이 천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도 꽤 마셨는지 눈이 조금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하느님을, 신을 어떻게 대할지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도망친 겁니다. 그분의 공간에서”
그의 말에 누구도 쉽게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왜 그만뒀냐고 물었던 여자는 술 기운에 꾸벅대며 졸기 시작했다.
“고해성사의 내용을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불가침을 어겼습니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아요. 그때의 판단이 옳았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의붓딸을 수년째 범해왔다는 어느 신자의 고백 때문이었다고 했다. 목소리만으로도 유석은 고해소 건너편의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봉사 활동에도 열심이었던 남자. 울먹이는 그의 목소리와는 별개로 고해성사 내내 유석은 주먹을 너무 세게 쥐어 손바닥에 손톱의 상처가 남을 정도였다. 가족들끼리도 곧잘 주말 미사에 참석하고 했던, 참 단란해 보였던 가족이었다. “속죄의 기도를 하시고 다시는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마세요. 남은 삶을 매일 뉘우치고 참회하시기 바랍니다” 유석은 자신의 보속에 대해 그것으로 충분했는지 매일 고민했다.
“제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고 매일 생각합니다” 몇 달 후 울먹이는 여자아이의 고해 성사를 들으며 유석은 결심했다. 그 남자는 잘못을 뉘우치지도, 악행을 중단하지도 않았다. 한 인간이 만든 지옥에서 약자가 괴로워하는 것을 눈 감는 것이야말로 신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리라. 유석은 경찰에 신고했다.
“한동안 교단에서 시끄러워졌죠. 여기저기 불려가기도 했고요. 중요한 것은, 그 일로 제 안에 무언가가 끊어졌음을 깨달은 겁니다”
유석은 오른 손가락을 들어 눈앞에서 한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끊어졌다니요? 신앙을 잃었다는 말씀인가요?”
내 질문에 그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저었다.
“아니요. 오히려 나란 사람에 대한 믿음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요. 제가 과연 사제직을 수행할 수 있을까? 사제로서 어떻게 신을 대해야 할지를 모르겠더군요. 누군가를 어떻게 대할지 모르겠을 때, 가장 쉬운 방법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어느 틈에 나와 유석, 둘만의 대화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건 상대를 미워하는 겁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서로 멀어지게 되죠. 그로부터 거절당하면, 서로 대할 일도 없어지니까요. 어쩌면 가장 손쉽고 경제적인 방법입니다”
“그럼 선배님은 아직도 신을 미워하시나요?”
“글쎄, 아마도요. 하지만 그런 말도 있잖아요. 미움받는 것보다 더 슬픈 것은 잊혀진 거라죠?”
말을 마친 유석은 거실 구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보니 작은 선반 위에 천주교 사제가 사용하는 성작과 성반이 십자가와 함께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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