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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호는 퇴근 준비하고 있는 민주를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내일부터 열흘 동안 이곳에서 민주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기운이 빠진 자신과는 달리, 조그만 노래를 흥얼대는 민주의 모습에 서운하기도 했다.
“민주 씨, 꽤 힘들 텐데. 걱정이네요”
“에이, 아니에요. 저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분들하고 같이 가는걸요”
“내가 샌드위치 만들어 가져갈 때 조금씩 도울게요”
민주는 조리실을 둘러보며 빙긋 웃었다. “매일 여기에서 일하다가 밖으로 나간다니까 설레네요. 소풍 가기 전날 잠 못 자던 어릴 때 같기도 하고, 히히”

벚꽃잎이 눈발처럼 고이 날리는 곳에서 민주와 나란히 앉아 하늘을 바라보는 풍경을, 민주가 조리실에서 나간 후에도 오랫동안 만호는 상상해 봤다.

호수 공원에서의 집합 시간이 한 시간이나 남았음에도 서한준은 미리 도착해 있었다. 일하는데 걸리적거릴까 단발머리를 가지런히 묶어 야구모자 뒤로 빼서 고정시킨 모습이었다. 오늘, 열심히 일하는 모습으로 강한나 매니저를 감동시키고 말겠다고 한준은 다짐했다. 작년 이맘때 요일 별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수와, 음료를 구매할 것으로 예상되는 확률을 계산해서 시간당 제조해야 할 음료 예상치도 뽑아 놓았다.

중앙 광장에 마련한 팝업 스토어 앞에 서서 손님 대기 줄을 어떻게 만들지 잠시 생각한 후, 한준이 차단봉을 배치하고 있을 때 강한나 매니저가 놀란 표정으로 걸어왔다.
“웬일이에요. 이렇게 일찍 오고”
“매니저님이야 말로요. 아직 이른 시간인데”
“뭐, 그쪽이랑 같은 생각? 고객 대기 동선 만들까 싶었는데, 벌써 시작했군요”
“제가 그랬죠? 우린 꽤 잘 맞을 거라고. 하하”
한준의 능글맞은 대답에 한나는 피식 웃고는 차단봉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한준 쪽으로 걸어왔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내리는 화창한 아침 햇살이 벚꽃잎에 부서져 반짝이고 있었다. 말 그대로 꽃잎이 만개한 호수 공원에 하나둘씩 인파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직 대기 줄이 늘어서진 않았지만 사람들은 아침을 거르고 온 듯, 만호가 방금 가져온 샌드위치 주문이 많았다.

“이야. 셰프, 뿌듯하겠다”
새벽부터 만호가 조리실에서 만든 샌드위치가 빠르게 팔려나가는 걸 보고 민주가 활짝 웃었다.
“그러게. 만호 씨, 오후에는 조금 더 많이 준비할 수 있겠어요?” 평소와 달리 한나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어려있었다. 안경을 끼지 않아서인지 그녀의 표정은 매장에서보다 더 해맑고 부드러워 보였다.
‘이게 내가 좋아하는 강한나의 얼굴이야’ 서한준은 셀카 찍자는 핑계라도 대서 꼭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유리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거라고 한나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가 능숙하게 음료를 만드는 모습에 솔직히 놀랐다. 주문을 받고 음료를 건넬 때 밝게 웃는 유리를 보고 손님들도 기분 좋게 매장을 떠나는 모습에 한나를 비롯해 같이 일하는 민주와 한준의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열흘 동안 한유리가 구멍이 될 거라는 걱정은 눈 녹 듯 사라져 버렸다.

정오가 지나자 고객 대기 줄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다. 팝업 스토어의 직원들은 몇 시간째 쉴 틈 없이 주문을 받고, 음료를 만들고, 샌드위치를 손님에게 건네고 있었다.

유리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 모습을 보고 한나는 의외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내가 이 여자를 잘 못 알고 있었던 걸까. 예쁜 얼굴만 내세우는 줄 알았다. 그런 여자들이 결국 주변에 피해만 끼치는 경우를 숱하게 봐왔기에 한유리도 그중 하나라고 여겼다. 어쩌면 나와 비슷한 면이 있을지도, 열흘 동안 가까워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는 팝업 스토어의 철문을 내린 후 그 자리에 바로 털썩 주저앉았다. “와, 이런 걸 전쟁 같은 하루라고 하는구나” 그 옆에서 한준 역시 밑으로 고개를 늘어뜨린 채 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내가 예상한 수치보다 훨씬 많이 팔았네요”
“그러게요. 물량이 없어서 생각보다 일찍 매장을 닫을 거라 생각도 못 했어요”

강한나 매니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고, 한유리는 민주와 한준 앞에서 양팔을 위로 올려 크게 기지개를 켰다.
“한유리 과장님, 저 오늘 솔직히 감동했습니다” 한준이 유리 쪽으로 엄지를 세워 올리며 말했다.
“맞아요. 너무 멋있었어요. 줄이 길어져서 짜증 난 분들도 유리 과장님 보고는 웃고 가셨잖아요? 전 무서워서 그렇게 못했을 거예요”

아유, 아니에요. 한유리가 손사래를 치며 겸연쩍은 얼굴을 하고 있을 때, 통화를 마친 강한나가 걸어오며 말했다.
“저도 동감합니다. 오늘 한유리 과장님이 없었으면 우리 모두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감사해요”
말투는 딱딱했지만 한유리에게 악수를 청하는 강한나 매니저의 눈빛에는 따스함이 한껏 담겨 있었다. 유리도 밝게 웃으며 한나의 손을 마주 잡았다. 민주가 와, 하며 손뼉을 치기 시작하자 한준도 벚꽃 매장 파이팅!이라고 외쳤다.

“참, 점장님이 오늘 수고했다고 지금 여기로 오신대요. 치킨이랑 맥주 사가지고. 예상보다 일찍 영업도 끝났고, 우리도 이젠 벚꽃놀이 시작할까요?”
강한나가 웃으며 한 말에 민주와 한준이 기운을 차린 듯 벌떡 일어났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네 사람의 얼굴에 맺힌 땀을 식혀줬다. 바람에 실린 벚꽃잎이 살랑대며 그들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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