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은 어제 잠을 설쳤다. 어떻게 첫인사를 할지, 광고주의 질문에 어떻게 답변할지 고민하다 보니 쉽게 잠들 수 없었다. 택시를 타고 광고주로 이동하는 동안 몇 번이고 되풀이해 온 미팅 상황을 상상하는 유진은 설레고 있었다. 오늘은 그가 처음으로 혼자 광고주 미팅을 하러 가는 날이다. 이제 입사 이년 차, 어엿한 광고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네? 전 이제 과장입니다. 하하. 그럼요. 시간이 꽤 지났지 않았습니까” 오경근 과장이 꽤 오랜 통화를 마친 후 바로 구호진 팀장 자리로 바로 갔다. 둘 사이의 대화가 오간 후 호진이 유진을 불렀다. 호진 책상 옆 보조 의자에 앉은 유진은 호진이 하는 말에 잠시 얼떨떨했다가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유진이도 이제 혼자 케어하는..
“이상하네. 왜 서로 따로 다녀요? 아까는 작은 아저씨 혼자 만나러 오더니” 얘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현준은 앨리스의 얼굴을 알아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아까 기타! 작은 아저씨? 재경이 형? 만났어요? 어디서? 형 지금 어디 있어요?” 단어를 더듬대다가 질문을 쏟아내는 현준에게 앨리스는 안경 너머 투명한 눈빛으로 답했다. “사지요. 사지로 간다고 해서 알려줬어요” 시디 가게로 내려오자마자 재경은 앨리스를 다시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멀리 가지는 않았을 거야. 이 사람은 거기를 알겠지. 재경에게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말하고는 서둘러 계단을 올랐다. 헤드폰을 걸치고 걸어가는 앨리스가 보였다. 저기요. 재경은 숨을 뱉어내며 앨리스를 세웠다. 마치 다시 올 것을 알았다는 듯 재경을 향한 그녀의 ..
“왠지 우리 고등학교 때 여자애들 같지 않아?” 볼수록 그 시절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고 현준이 말했다. “나도 그 생각 하고 있었다. 하얀색 게스 천 가방 있잖아. 그거 메고 있으면 완전 딱이겠는데” 순간 앨리스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고 현준과 눈을 마주쳤다.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똑바로 걸어온 그녀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기타를 앞으로 내밀었다. “저기요. 이거 사실래요? 십오만 원에 내놓은 건데, 십사에 드릴게요” ”텄어요. 약속 시간 십 분 지나 못 오겠다고 메시지 왔네요. 참 나” 거래는 어떻게 됐냐는 현준의 질문에 앨리스가 말했다. 일이 재밌게 되어간다는 생각에 현준이 말할 거리를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그럽시다. 안 깎아줘도 돼요. 십오만 원에 살게요” 재경이 지갑에서 돈을 꺼내고 있었다. “..
당뇨 환자에겐 더운 날씨라고 현준은 생각했다. 추석을 앞둔 주말이었으나 지하철역 밖으로 나오자 한여름처럼 후끈했다. 거의 십 년 만의 홍대 입구였다. 풍경은 시간이 흐른 만큼 변했다. 출구 앞에서 상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모습은 사라졌으나 한껏 차려입은 젊은이들이 무리 지어 움직이는 모습만은 여전했다. 스냅 백이라도 쓰고 올걸. 아저씨처럼 보이는 자신의 모양새가 영 어색했다. 괜히 재경이 형하고 여기 오자고 했나. 며칠 전의 약속이 후회됐다. 형 힘들 거 같으면 다음에 보자고 메신저를 보냈다. 막 전철 탔어. 벌써 도착한 거? 답장이 바로 왔다. “농담치곤 심한데. 그게 내 앞에서 할 소리냐? 일주일마다 두 번 투석 받는 사람 앞에서?” 재경은 주사 흔적으로 부어있는 팔뚝을 현준에게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