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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에서 운동화를 신은 준호를 희정은 꼭 끌어안았다. 이제 자신보다 훌쩍 키가 커버렸지만 아침에 이렇게 아이를 안아주는 것이 초등학교 때부터 해온 등교 인사였다.
“이따 한 시에 엄마가 공개 수업 갈게. 교실에서 만나.”
준호가 별다른 말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현관문을 닫았다. 언제 이렇게 컸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릎을 구부려야 품에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작고 가냘팠던 아이가.
이혼이 마무리될 때까지 집안 분위기는 아무래도 냉랭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준호는 한창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변해가는 시기였다. 정서가 민감한 때에 부모가 다투는 모습은 큰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희정은 바닥이 무너진 고층 건물 옥상에서 수직 낙하하는 듯한 아득한 무력감에 휩싸였다. 까불대며 늘 재잘거리던 아이가 말없이 조용해지기 시작한 건 비단 사춘기가 왔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죄책감과 함께.
학교에 거의 도착했을 때 차선은 양방향으로 막혀 있었다. 3개 학년 동시 공개 수업이라 학부모들이 가져온 차가 몰린 탓일까. 시간에 맞춰 교실에 들어갈 수 있을지 희정은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차는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 바로 앞에 멈춰 있었고 여기서는 비보호 좌회전이 가능했다. 왼쪽으로 들어가면 길은 좁아도 15분 정도는 시간을 아낄 수 있다. 희정은 왼편을 계속 보고 있었지만 차마 운전대를 돌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때 짧게 클랙슨이 울렸다. 반대편 차선의 대각선으로 마주 보고 있는 차에서 나온 소리였다. 그쪽 운전자가 손을 들어 이쪽으로 들어가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앞 차와의 간격을 벌려 놓아 좌회전할 공간을 만들어 놓은 후였다. 희정은 아니라는 뜻으로 손바닥을 좌우로 흔들었으나 상대는 괜찮다는 듯 조금 더 크게 제스처를 취했다. 앞에 멈춰있던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더 이상 이 자리에 멈춰 있을 수는 없었다. 희정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운전대를 왼쪽으로 틀며 악셀을 지그시 밟았다. 공간을 양보해 준 차는 흔히 보기 어려운 외국 브랜드의 오프 로드용 지프였다. 그쪽 운전자가 지나가는 자신을 보며 미소 짓고 있는 것 같았다.
공개 수업은 국어와 사회 두 과목으로 진행되었다. 사회 시간에는 미리 발표 주제를 알려주고 파워포인트 자료를 준비시킨 모양이었다. 원하는 학생에게는 교실 뒤쪽에 서 있는 학부모들을 비롯해 반 친구들 앞에서 발표할 기회를 줬다. 자기가 하겠다고 손을 든 아이들 중에 준호는 없었다. 앞선 국어 시간에는 선생님이 준호를 지목해 질문을 던졌을 때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키는 가장 큰 축에 드는 아들의 그런 소극적인 모습이 속상하기보다는 안쓰러웠다. 누구보다 밝고 활발한 아이였는데. 마치 자신이 그렇게 만들어 버린 듯한 죄책감에 희정은 똑바로 서 있기 힘들었다.
학생들이 하교한 후 학부모 간담회가 진행되었다. 공지사항 전달 및 간단한 질의응답까지 예정된 순서가 끝나갈 무렵 담임 교사가 말했다.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이 될 때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합니다. 본격적인 입시 학업이 시작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급격히 바뀐 환경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죠. 때문에 이번에 학부모님 중에 한 분께서 아주 감사한 도움을 주시기로 하셨어요. 앞으로 모실게요. 주아 아버님, 나와 주시겠어요?”
아이들 책상에 앉아 있는 어른들 중에 뒷자리에 앉은 남자가 일어나 교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간담회에 참석한 몇 안 되는 아버지들 중 한 명이었다.
“안녕하세요. 같은 반 강주아 아빠 되는 사람입니다.”
“주아 아버님은 정신의학과 전문의세요. 학교에서 부탁드려서 1학년 중 마음 돌봄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에게 무료 상담을 해주기로 하셨습니다. 우선 저희 반부터 시작할 예정이고요.”
교사가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전하고 난 후 주아 아빠가 말했다.
“정신과 상담한다는 게 부담스러우실 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요. 맞습니다. 정신적으로 잘 못 되어서 진료를 받는 게 아니고요. 아이들에게 어쩌면 부모님과 이야기하기 어려운 이야기, 자기의 힘든 점을 어딘가에 편하게 털어놓는 자리로 봐주시면 좋겠네요. 그런 감정의 배설만으로도 도움이 되거든요.”
그를 바라보는 엄마들은 이미 설득되어버린 표정을 지었다. 그가 한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미중년이라는 묘사에 딱 들어맞는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큰 키에 적당히 웨이브가 들어간 풍성한 머리칼은 약간 흐트러진 듯 자연스러웠다. 몸에 딱 들어맞는 회색 니트와 검푸른 색의 바지를 입은 모습은 의사라는 소개가 없었다면 문화계 쪽이나 엔터테인먼트 업계 사람으로 생각할 법 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그의 마지막 인사말에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박수가 터져 나왔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 교사가 희정 쪽으로 다가와 잠시 이야기 나눌 시간이 있냐고 물었다.
“다름이 아니고, 이번 상담에 준호를 가장 먼저 시작했으면 해서요.”
조금은 곤란해하는 듯한 그녀의 표정에 희정은 몸이 순식간에 딱딱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저희 아이에게 무슨 문제라도.”
“아니요, 절대 그런 건 아닙니다. 준호가 조용하고 나서기 싫어하는 성격이지만 수업에 임하는 태도도 좋고, 숙제도 빼먹지 않고 잘 해오고 있어요. 다만.”
입학 이후 점심 급식을 먹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반 아이들이 모두 구내식당으로 몰려갈 때 준호는 교실에 남아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고, 운동장이 북적대는 점심시간에도 아이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는 것이다. 걱정스러워 한 담임의 질문에도 배가 고프지 않다는 간단한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이번 기회에 학교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이야기할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담임은 희정에게 조심스럽게 의견을 물었다.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답하면서도 희정은 다시 한번 혼란스러웠다. 전혀 몰랐다.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챙겨주는 간식을 남기지 않고 먹는 걸 보면서 한창 클 때여서 그런가 보다 했을 뿐, 점심 식사를 아예 걸러서 배가 고파 그런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언제나 품에 안겨 있는, 내가 모든 걸 알고 있는 어린아이라고 여겨온 아들이 갑자기 멀리 떨어져 있는 낯선 존재가 된 기분이었다. 일 때문에 너무 자주 집을 비웠기 때문일까. 이모가 아무리 잘 챙겨준다고 해도 엄마가 아니고서는 결코 채울 수 없는 사각지대를 내가 만들어낸 것일까.
희정은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까지 어떻게 왔는지 모를 정도로 어지러운 생각에 빠져 있었다. 문을 열려고 할 때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들렸다. 자기에게 건넨 인사인지도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교실에서 봤던 주아 아빠라는 사람이 그녀를 바라보며 또 뵙네요,라고 말했다. 옆에는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제 딸 주아입니다”라고 그가 소개했고 아이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아이가 먼저 조수석으로 들어갔고 그가 “그럼, 안녕히 가세요”라고 말한 뒤 차에 올라탔다.
먼저 출발한 그의 차가 눈에 걸렸다. 아까 공간을 양보해 준 지프와 같은 모델이었다. 그제야 교탁에서 그가 지었던 미소에서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이유를 희정은 깨달았다. 좌회전을 하던 순간 지나치며 봤던, 맞은편 차에 앉아 있던 사람의 미소였다.
준호가 병원에서 돌아오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희정은 계속 고민 중이었다. 오늘이 약속된 아이의 상담일이었다. 의외로 준호는 담담히 가보겠다고 하면서도 조건으로 내건 게 엄마와 함께 가지는 않겠다는 거였다. 주아 아빠의 정신과는 집에서 멀지 않아 아이를 혼자 보냈다. 집에서 나간 뒤 두 시간 정도 지난 후에 준호가 돌아왔다.
“어땠어?”
희정은 아무렇지 않게 말하려 몇 번이나 다짐했으나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응. 재미있었어.”라고 준호가 말했다. 표정이 살짝 편안해진 것처럼 보이는 건 자신만의 착각일까,라고 희정은 생각했다.
“별다른 말씀은 없으시고?”
“없었어. 원래 당사자한테는 상담 결과를 이야기해 주지 않는 거래. 난 아직 미성년자라서.”
준호가 피식 웃었다. 그 모습에 희정은 지금까지의 걱정과 불안이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선생님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어. 주아 있잖아. 엄마가 없대. 몇 년 전에 돌아가셨대. 그래서 우리 집은 아빠가 없다고 나도 말했어.”
아이의 말에 주아 아빠의 얼굴이 떠올랐다. 배우자를 잃은 어두움 같은 건 보이지 않았는데. 직업이 그쪽이다 보니 표정 관리가 잘 되는 편인가. 준호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작은 종이를 엄마에게 건네며 말했다.
“상담의 연장이라면서, 엄마를 한 번 만나면 좋겠대. 여기 명함 전해주라고 하시더라. 전화해서 예약하고 찾아오면 된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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