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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느낌 가질 수 없어요]

 

영호는 작은 나무 상자를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채 택시 뒷좌석에 앉아 눈 덮인 산등성이를 바라봤다. 하얀 보자기로 감싼 정사각형 상자 안에는 한 번 안아 보지도 못하고 눈을 마주해 보지도 못한 아기가 들어 있었다. 능선을 따라 이어진 구부러진 길을 지나야 해서 택시는 속도를 줄였고 멀리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수진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 화장장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이 작은 것이 얼마나 뜨거울까. 따스한 엄마 아빠의 손길을 느끼지도 못하고 뼈마저 녹이고 삭혀 버릴 불구덩이로 들어가야 할 기쁨이가 너무 가여워서 영호는 숨죽여 흐느꼈다.

 

상자에 담긴 채 아기가 화장로 속으로 들어간 후에 영호는 유골함을 판매하는 매장으로 갔다.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 좋은 걸로 골라야 하지 않을까. 이건 너무 비싸네. 딸의 몸이 화마에 쌓여 재로 변해가고 있을 때 값을 따지고 있다는 사실에 영호는 헛웃음이 나왔다. 그와 동시에 저 불꽃 속으로 차라리 내가 들어가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혔다.

한 팔로 충분히 품에 안을 수 있을 정도로 아담한 크기의 항아리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온기를 잃지 않았다. 그게 아기의 체온인 듯 영호는 바다가 보이는 마당 의자에 앉아 꼭 끌어안은 채 눈을 감았다.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지만 항아리는 여전히 따듯했는데, 딸이 남긴 한 줌의 재에서 나오는 온기인지 품어 안고 있는 자신의 체온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수진이 퇴원하고 집에 돌아온 후 가장 먼저 한 건 아이를 위해 준비해 놓은 것들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더 이상 엄마 아빠일 수 없었기에 기쁨이라는 애칭은 물론 아기에 대한 그 어떤 것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수진은 상실감을 메우려는 듯 평소보다 더 활달하게 굴었다. 밥을 먹을 때도 더 맛있다는 듯 부산을 떨었고 매일 집안을 청소했다. 저녁 산책을 가자며 영호의 팔을 잡고 집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것도 그녀의 몫이었다. 겨울바람이 매섭게 불 때면 그의 품에 안겨 “아, 따듯하다”라고 말하면서 뽀얀 입김을 그의 가슴에 불어넣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수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이었고, 살아가고자 하는 필사적인 안간힘이었다.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건 영호였다. 수진이 차려놓은 식사를 제대로 먹지 못하기 일쑤였고 직장에서도 멍하니 있다가 지적을 당하는 경우가 잦았다. 저녁 산책 중에 이유 없이 눈물을 쏟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수진은 그를 아무 말 없이 꼭 안아줬다.

자신이 잠든 것을 확인한 후 영호가 조용히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는 걸 수진은 눈치채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애쓰고 있었지만 그녀 역시 눈을 감고 누우면 온몸이 떨릴 정도의 슬픔이 차올라 잠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귀를 기울이면 마당에서부터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차츰 커져 가면서 그가 외우는 기도문 구절이 또렷이 전해왔다. 그러면서 콧물을 훌쩍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기도가 끊기곤 했다. 그럴 때면 수진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로 베개가 축축하게 젖었다.

 

영호는 틈날 때마다 마당에 나가 작은 의자에 앉았다. 시선은 늘 대문 옆의 아카시아 나무에 꽂혀 있었다. 수진이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아기를 화장한 골분을 그 나무 아래 뿌렸다. 한 줌이 채 안 되는 가루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곳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밤에 묵주기도를 할 때면 나무 아래에서 무릎을 꿇었다. 아기의 영혼에 안식이 있기를 기도했고, 자신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기를 빌었다.

딸을 잃은 슬픔은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향한 혐오와 자책으로 변해 있었다.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에서 나아가 수진을 사랑한 것, 사제의 책무를 버린 것, 신을 향한 길에서 벗어난 선택까지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 말았어야 할 것들만 끊임없이 떠오를 뿐이었다.

 

어느 날부터 영호는 대문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방에 누워 있거나 아카시아 나무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씻지 않아 몸에서는 불쾌한 냄새가 났고 머리와 수염도 정리하지 않아 마치 노숙자 같은 차림이었다. 불성실한 근무 태도로 동사무소에서 계약 연장을 받지 못해 일자리도 잃은 상태였다.

수진이 대신 일을 나가기 시작했다. 작은 보습학원에서 중고생 대상으로 국어를 가르쳤다. 서울 명문대 국문학과 휴학생이라는 신분 덕이었다. 오후부터 저녁까지 학원에 머물렀기 때문에 저녁 산책도 자연스럽게 중단되었고, 밤늦게 수진이 돌아오면 나가기 전에 차려놓은 저녁 식사는 그대로 남겨진 채 차갑게 식어 있었다.

 

처음 이 집에 왔을 때처럼 해수면 위에 수북하게 내린 초여름 햇살이 수만 마리의 물고기가 춤추는 것처럼 반짝이는 날, 수진은 영호를 떠날 결심을 했다. 그를 향한 사랑이 식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가 싫어졌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가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이유가 자신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먼저 사랑을 잃은 건 영호였다. 삶에 대한 믿음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잃은 채 이렇게 둘이 같이 지낸다면 그는 영영 살지 못할 것이었다.

그는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다시 한번 오롯이 혼자 일어서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수진은 그를 떠나야 했다. 영호를 보듬어 주고 싶고, 다시 일으켜 세우고 싶었지만 그녀의 도움보다 절실한 것은 영호 스스로가 자신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몰차게 떠났다. 살아오며 가진 가장 독한 마음으로 이를 악문 채 해낸 거짓 연기였다.

 

버스 뒷좌석에 앉아 있는 여자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신호에 정차한 사이 영호는 틀어놓은 라디오 볼륨을 줄였다. 작은 소리로 상대방과 이야기하고 있어 제대로 들리진 않았지만 영어로 말하고 있는 듯했다. 교포인가. 저 사람이 수진이라면 이민을 간 건가. 아니면 외국과 관계된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신호가 바뀌어 다시 운행을 시작하면서도 영호는 계속 생각했다. 그녀가 아니라 하더라도, 수진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수진의 다짐이 옳았다. 부산의 집에서 영호는 죽지 않았다. 숨만 쉬는 시체처럼 지냈던 그가 홀로 남게 되자 자신을 책망하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자신의 마음속을 제대로 들여다보면서 슬픔으로만 얽혀 있는 무성한 수풀을 헤치고 그 안에 있는 감정을 찾아나갔다. 그동안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난 나뭇가지에 긁혀 온몸에서 피가 흐르는 듯한 아픔도 겪었다. 무수히 많은 상처가 새겨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저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분명한 감정의 덩어리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어서 나를 찾아내라고, 그리고 나를 부둥켜안으라고 부르는 소리가 생생했다. 그렇게 내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 지 몇 주가 흘러 영호가 당도한 곳에는 ‘분노’가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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