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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슬픔 대신 분노를 택한 영호는 그에 걸맞은 직업을 가졌다. 경찰이었다. 마침 1년 전세 기간이 끝난 부산의 집을 정리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노량진 고시촌으로 들어간 그는 첫 응시에서 경찰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았고 오직 공부와 체력 단련에만 집중했다. 사람과 어울릴 이유와 여유 따윈 없었다. 그저 마음속에서 꿈틀대고 있는 분노라는 감정을 마주했을 뿐이다.
모든 게 부조리했고 세상은 불합리했다. 대상을 찾을 수 없이 불타오르고 있는 화를 법에 저촉되지 않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범죄를 단죄하는 것이었다. 영호는 높은 점수로 합격했는데 상위권 지원자들은 몸이 편한 내사 부서를 지원했지만 그는 강력계를 택했다. 체력 시험 준비 수준을 넘어 몸을 혹사시킬 정도의 운동을 통해 단단한 체구를 지니게 된 영호는 희망 대로 가장 혹독하다는 금천 경찰서 강력팀으로 배치되었다.

30대의 늦깎이 신입 형사였지만 금세 조직에 녹아들 수 있었다. 거친 생활을 하는 강력계 형사의 세계는 사제 집단과 본질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았다. 폭력을 대하느냐 신의 뜻을 바라보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위계질서의 구조를 재빠르게 파악하고 해야 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뚜렷하게 구분해 행동하는 것은 다르지 않았다. 신학교와 사제 생활 10년을 통해 영호에게 자연스럽게 녹아있던 요령이었다. 나이가 어린 선배들은 ‘손 형’이라 그를 부르며 살갑게 대해 주었고 동료 형사들이 몸 사려가며 하라며 그를 챙겨줬다.
형사처럼 보이지 않는 순한 인상의 사람. 하지만 일 처리만큼은 누구보다 매서운 형사. 그게 영호에 대한 평가였다. 가장 먼저 출근했고 제일 마지막에 퇴근했다. 집에 가지 않고 숙직실에서 잠시 눈을 붙이는 날도 많았다.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맞이해주는 사람도 없는 집은 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더 많은 사건을 처리하고 가능한 많은 범죄자를 찾아내 처벌하는 것이 아직도 수그러들지 않은 분노를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취조할 때만큼은 사람 좋은 얼굴이 사라졌다. 뻔뻔하게 거짓을 말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상대를 대했을 때 영호의 표정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변하곤 했다. 상대의 가슴을 날카로운 칼로 도려내고 심장을 끄집어 낼 듯한 꿈틀거리는 분노가 드러나는 그의 사나운 기운에 압도된 용의자는 순순히 자백을 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비웃었다. 너희들은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진 않는구나. 어째서 회개를 못하는 것이냐. 실컷 경멸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그때 영호의 내면은 악마와 다르지 않았다. 스스로 지옥의 심연까지 떨어진 타락한 천사, 루시퍼였다. 비록 슬픔에서 벗어났을지 몰라도 대신 분노로 가득 채워진 그의 내면이 바로 지옥이었다.

영훈의 동기가 어쨌든 밤낮 가리지 않는 업무 몰입은 일에 대한 헌신과 조직을 향한 충성으로 받아들여졌다. 게다가 신학교를 나온 사제 출신이라는 배경 또한 영호에게 남들과 다른 특별한 아우라를 만들어 주었다. 높은 고과 점수를 받았으며 본청으로의 이동 제안도 꾸준히 있었으나 그는 강력계 형사로 현장에 남기를 원했다. 대신 매년 좋은 곳으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금천 경찰서에서 2년을 지낸 후 성동, 분당을 거쳐 서초 경찰서에서 근무를 하게 된 건 10년 차가 되었을 때였다.
소득 수준이 높은 관할서로 옮겨갈수록 폭력과 절도 범죄는 줄어드는 대신 사기나 경제 범죄 등이 많아졌다. 동료 형사들도 몸을 쓰는 유형보다는 경찰 대학교 출신의 엘리트가 많았다. 오랜 시간 잠복을 해서 용의자를 잡아내거나 필요에 따라서 위험도 마다하지 않는 전통적인 수사 방법은 쓸모가 없었다. 어느덧 영호는 젊은 혈기로 현장에 뛰어나가기엔 무리인 중년으로 접어들었다. 윗사람보다 후배들이 많은 중간의 위치에 올라 밖으로 돌아다니기보다 경찰서 안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갔다.

어쩔 수 없을 때만 어울리던 식사 모임이나 술자리에 초대받는 일이 서초서에 온 후 부쩍 잦아졌다. 경찰 동료 외에 낯선 얼굴도 꼭 한 두 명은 끼어있는 자리였다. 그들은 작은 사업체를 하고 있다며 명함을 건네왔는데 어떤 업종인지 가늠되지가 않았다. 가벼운 반주를 곁들인 식사는 여자들이 나오는 술집까지 포함된 2차, 3차로 이어지기 일쑤였는데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던 중에 영호는 깨달았다. 경찰 조직에 비밀스럽게 엮여 있는 뇌물과 접대의 커넥션이었다.
최근 들어 잠잠해진 마음속 단단한 감정에 연기가 피어올랐다. 베일 아래 교묘하게 감춰진 부패의 밀실 거래를 마주한 순간, 그리고 자신을 거기에 집어넣으려는 움직임이 교묘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고체연료 심지에 성냥 불이 붙은 것처럼 분노가 다시 거세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때의 행동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끔은 자신의 동기가 기억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정의감이었을까. 조직에 대한 애정이었을까. 승리하지 못할 것임을 뻔히 알면서 한 번 부딪혀 본 치기 어린 호승심이었을지도 몰랐다. 공익 제보자라는 말은 허울 좋은 치장이었다. 내부 고발자. 혹은 식구들의 등에 칼을 꽂은 배신자라는 딱지가 그의 이마에 찍힌 주홍 글씨였다.

본청 내사 요원들이 서초서에 들이닥쳤을 때의 기세와 달리 결과와 처분은 미미했다. 진급을 앞둔 서장의 경찰대 동기들이 내사과 요직에 자리 잡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건 고작 두 명의 근신 처분으로 감사가 종료된 지 며칠 후였다. 곧바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소문은 영호에 대한 것이었다. ‘누가 찌른 거냐’라는 의심의 표적으로 그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았고 홀로 내린 결정이었는데 본청에서 제보자 정보가 흘러나온 모양이었다.
노골적으로 업무에서 배제되기 시작했다. 수사 회의에 부르지 않았고, 식사 자리나 수사 현장에도 그와 함께 하려는 동료는 없었다. 몇 주 지나지 않아 영호는 번화가에 인접한, 취객의 난동을 주로 처리하는 파출소로 이동 발령을 받았다. 그곳에서도 소문은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야간 근무 중에도, 현장 순찰을 나가서도 그에게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딱히 영호도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파출소에서 지낸 지 한 달이 되기 전, 경찰 일을 시작한 지 11년만에 영호는 두 번째 일터를 떠났다.

버스 운전은 사제가 하는 일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영호 자신은 늘 같은 곳에 있고 사람들이 찾아왔다가 떠난다. 마음의 안식이 필요한 신자가 성당에 왔을 때 손영호 바오로 신부는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그들을 맞이해야 했다. 매일 301번 버스를 운전하는 손영호 기사는 늘 같은 길을 약속된 시간에 떠돈다. 승객은 차에 올랐다가 버스에서 내린다. 제공하는 것이 비슷해서일까. 이 세 번째 직업이 그는 꽤 마음에 들었다.
차고지 근처 한적한 주택가에서 영호는 혼자 살았다. 송파구의 끝자락이지만 임야가 많고 개발이 되지 않아 서울 같지 않은 한적한 동네였다. 간선 도로와 고속도로가 인접한 곳이라 늘 자동차 소리로 시끄러웠으나 덕분에 전세 가격이 쌌다. 마당에 앉아서 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멀리 탄천이 보였다. 이 집을 고른 이유는 대문 옆에 커다란 나무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 나무를 처음 봤을 때 갈매기 소리가 들리고 소금기가 희미하게 담긴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 시절 부산에서 살던 집과 달리 담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무릎 높이의 커다란 돌들이 나란히 늘어져 있을 뿐이었는데 사람을 막는 벽으로 보이진 않았다. 대문을 통하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집 안팎을 오고 갈 수 있을 정도였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가슴속에서 똬리를 틀고 있던 뜨거운 분노가 자취를 감췄다. 그 자리에는 이제 아무것도 없었다. 슬픔도, 미워하는 마음도, 후회도,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았다. 텅 비어있는 공허함이 차라리 상쾌했다. 그 자리에 다시는 어떤 것도 채워놓고 싶지 않았다.
가끔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가 떠나는 감정들이 있었지만 그걸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가장 자주 찾아오는 손님은 그리움이었는데 그럴 때면 영호는 달 밝은 밤에 흙으로 된 마당에서 털썩 주저 않아 눈앞에 보이는 저 낮은 담을 넘어 누군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다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는 걸 알면서도.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스스로 져버렸던 그 사람을 기다렸다.

버스가 동대문으로 접어들면서 승객들이 내릴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동대문 역사 문화공원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수진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쪽 출입문에서 사람들이 교통 카드를 찍으며 내리는 걸 바라보고 있을 때 정류장에서 버스를 향해 양팔을 들어 크게 휘젓는 외국인 남자가 보였다. 루카스였다. 도착할 시간은 알려주지 않았는데 언제부터 밖에 나와 있던 건지 턱수염으로 가려지지 않은 양쪽 뺨이 겨울바람에 빨갛게 익어 있었다. 그의 눈을 마주하자 루카스가 어린아이처럼 제자리에서 통통 뛰었고 그 모습에 수진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앞선 사람들이 모두 내리고 수진이 내리려 할 때 운전석 쪽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호는 이게 마지막인 것처럼 시선을 막 버스에서 내리려고 하는 여자에게 고정하고 있었다. 운전석에서 일어나다시피 하고는 몸을 버스 뒤쪽으로 돌린 채라는 걸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했다. 내내 무표정했던 그 여자가 처음으로 웃었다. 밖에 있는 누군가에게 작게 손을 흔들며 미소 지을 때였다. 그녀의 눈가에 주름이 접히는 게 보였다. 너무도 익숙한, 꿈에서라도 보고 싶었던 그 미소였다. 수진이 자신에게 보내던 그 포근한 미소였다.
수진이 사라지기 직전이었다. 건네야만 할 말이 머릿속에서 터지는 폭죽처럼 퍼져나가고 있었다. 잘 살아줘서 고맙다고. 날 사랑해 줘서 고맙다고. 내가 당신을 사랑해서 미안했다고.

“길이 미끄러우니 내릴 때 조심하세요.”
기사가 건네 온 말이 신기하고 고맙기도 해서 수진이 그쪽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중년의 남자가 고개를 살짝 숙여 수진에게 인사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짧게 스쳐 지난 후 수진은 잠시 숨을 고르고 버스에서 내렸다.
“무슨 기분 좋은 일 있었어?”
수진을 품에 안은 루카스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라며 그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수진의 눈가에는 아까 웃을 때와 같은 모양의 주름이 잡혀 있었다. 미소가 띄어진 얼굴 위로 몇 방울 눈물이 아롱지어 조용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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