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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화장실에 가고 싶을까, 호진은 갑작스럽게 엉덩이 사이로 무게감이 느껴졌다. 재택근무 이틀 째, 점심 시간 잠깐이라도 바깥 공기를 쐬고 싶어 동네 중고서점에 들어선지 채 5분이 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어디에서든 책이 있고 서가가 존재하는 장소에 들어가면 반드시, 예외없이 호진의 대장은 급격히 활발하게 움직였다. 지금껏 변비를 경험해본 적은 없지만, 만약 기미가 보인다면 어느 서점이나 도서관에 들어가면 바로 해결될거야. 자신같은 사람들이 있는지 포털에 검색해볼까 싶기도 했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든 웃길 것 같아, 시도해본 적은 없었다.

 

중고 서점의 화장실은 좁았다. 여름인데다 며칠 청소를 하지 않았는지 암모니아 냄새와 지린내가 미묘하게 섞인, 깨끗하지 않은 특유의 내음이 났다.  그 냄새는 호진으로 하여금 그해 여름 대학 도서관 화장실을 기억하게 했다. 둘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하릴없이 빈둥 거릴 때 서점을 찾는 호진은 대학 시절에도 도서관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였다. 공강 시간에 아무 서가 사이를 골라 왔다 갔다하며 맡는 오래된 책 냄새가 좋았다. 비어있는 열람실 아무 곳이나 앉아 책을 뒤적이다 보면 마치 타임워프한 것처럼 한 두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스마트폰도, 스크롤하면 쏟아지는 남들의 타임라인도 없었던 때였다.

 

학교 도서관을 떠올릴 때 가장 또렷한 기억과 풍경에는 항상 한 학번 선배 B가 있었다. 같은 학과는 아니었지만 호진을 가장 잘 챙겨준 형. B가 여자친구와 100일인 날에 맞춰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축하 파티를 열어줄 정도로, 호진도 그를 친형처럼 좋아했다. 둘이 가까워진 계기는 하나의 공통된 정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데, ‘양담배 피는게 뭐 어때서’였다.

 

호진이 신입생 수련회에서부터 학교 생활에 정이 떨어져 버렸는데, 학생회 선배 한 명에게 건넨 양담배를 그가 눈 앞에서 바로 부러뜨린 일이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우리 농민의 피와 땀이 어린 담뱃잎이… 하는 레파토리에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이후 호진이 강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이런 저런 뒷 이야기들이 오갔고, 한 번은 호진이 성조기가 프린팅된 옷을 입고 학교에 갔을 때 또 시작된 모 복학생의 비아냥거림. 5월이 채 지나기 전에 호진은 학교 사람들에게 질려버렸다.

 

오며 가며 눈 인사를 하던 B와 어떻게 단 둘이 술을 마시게 됐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전철을 타기 전, B가 호진이 피우던 양담배 한 보루를 사서 건네며 나도 작년에 그랬어. 그런거 신경 쓰지마, 무심하게 건넨 그에게 호진은 마음을 내줬다. 장남인 호진과 막내인 B는 그 날 이후 친형제처럼 지내기 시작했다.

 

행정학과였던 B는 호진이 제대하기 몇 달전부터 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졸업후 신림동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B는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열람실에 소위 ‘고정석’을 만들어 불 켜고 들어가서 불 끄고 나오는 생활을 이어갔다. 원래 도서관 좌석은 떠날 때 자리를 비워놔야 하나, 몇몇 고시생들은 책과 심지어는 스탠드까지 그대로 놔두고 있었다. 거의 하루 종일 자리에 앉아 있으니 학교 측에서도 적극적으로 치우지는 않았다. 호진은 가끔 도서관에 들러 B를 찾았다. 휴게실에서 레쓰비 한 잔을 뽑아 담배 몇 대와 나누는 이야기가 그에게 기분전환이 되어주길 바랬다. 

 

시험 기간이 되면 열람실 좌석이 꽉 찼다. B는 주변 자리 중 하나를 호진을 위해 지정석으로 만들어줬다. 새벽같이 와서 자기 책 몇 권을 놓아두는 식이었다. 제대 후 첫 학기는 호진 역시 공부에 불태웠던 때라 수업 시간을 제외하곤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호젓한 평소의 도서관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사각대는 펜 굴러가는 소리와 자리를 꽉 채운 사람들의 긴장된 공기가 좋았다. 박찬호나 김병현의 경기가 있는 시간에는 TV가 놓여진 휴게실이 꽉 찼다. 와아, 함성 소리가 그곳에서 새어나올 때는 한국 선수들의 파인플레이가 펼쳐졌다는 신호였다. 

 

호진은 취업과 함께 학교를 떠났다. B는 졸업때까지 1차를 패스하지 못했다. 주말에 가끔 호진은 신림동 고시원에 자리를 잡은 B를 찾아갔다. 새로 사귄 여자친구를 데리고 간 적도 있었다. B의 시험이 끝났을 때는 둘이 즐겨가던 강남역 바에서 비틀거릴 때까지 술을 마시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형은 안될리가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2년만인가, 미안해 형. 매번 내가 먼저 연락 못하고”

“됐네, 이 사람아. 그래도 부르면 나와줘서 고맙지. 회사생활 하느라 바쁠텐데”

 

사십대가 된 둘은 강남역을 가지 않는다. 주로 B의 동네, 아저씨들이 갈 법한 한적한 음식점에서 일년에 두 세번 만나왔다. 호진이 회사를 몇 번 옮기고,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으며 지극히 평균한 중년 남자로 변해온 사이 B는 고시 준비를 멈췄으며 취업은 포기했다. 신입으로 회사를 들어가기엔 시기를 놓쳐버렸다. B의 아버지는 그를 위해 일산에 적당한 크기의 다세대 건물을 마련해줬다. 임대료를 받으며 자전거를 타고 이런 저런 소일거리로 지내는 그를, 호진은 부럽다고 말하지는 못했다. B는 몇년 사이 몸이 크게 상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이유인 당뇨가 아직 이른 나이인 그의 몸에서 말썽을 일으켰다. 그를 만날 때면 팔뚝에 주사 자국이 도드라졌다.

 

왜 그때 있잖아, 우리 시험 기간에. 호진은 평소보다 서둘러 소주를 입에 털어넣었다. 노포 분위기의 곱창 집에는 구식 형광등이 달려있었다. 도서관 천장의 불빛이 생각났다. 나 형이 쓰는 책 받침대 되게 부러웠다. 내가 사긴 좀 그랬지만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 받침대가 있는 자리는 고시생이라는 일종의 표식이었다. 하나 달라고 그러지, 형 몇 개 있었는데. 그냥 그렇다는 거지, 내가 고시 공부한 것도 아니고. 오버잖아. 그래도 참 열심히 했다. 그렇지?

 

B와의 대화는 과거로 돌아가는 터널을 지나는 것과 같았다. 둘이 함께 할 때마다 추억이 멈춰있는 시간으로 향해가는 기차에 타는 것은, 그만큼 현재의 공통점이 둘 사이에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B의 근황과 건강을 묻고, 호진의 회사 생활을 이야기하는 것은 대화의 핑퐁이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서로의 세상이 그만큼 달랐다. 그렇기에 함께 공유하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 사실과 풍경을 이야기하고, 맞춰가는 것만으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당연히 즐거웠다. 또한 서글퍼졌다. 

 

“형, 우리 이번 주말에 학교 앞 그 골목 한 번 가봅시다. 왜 그, 우리 밥 먹던 거기 있잖아, 아직 있으려나? 냉모밀 좋았는데”

“자매식당 말하는거냐? 거긴 제육덮밥이야. 냉모밀은 은주네가 잘했지”

“우리 시험 끝나고 낮술했던 닭갈비 집도 가고 싶네”

 

B와 헤어진 후 정말 갈 수 있을까, 호진은 핸드폰 일정에 ‘학교앞, B형’이라 기록하며 걱정스러웠다. 더위와 코로나에 B의 컨디션이 그날 나빠지지 않았으면. 기억하는 식당들이 아직 그 모습 그대로 있어주기를. 그리고 틀림없이 낮술 한잔 걸치게 될텐데 아내에게 크게는 혼나지 않기를. 이것저것 바램이 많아지는 귀갓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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