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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팀장 호진씨의 일일

My Generation

은고랭이 2021. 8. 24. 16:07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앞은 변한 듯 변하지 않았다. 아들이 친구 생일 파티에 엄마와 함께 초대받은 토요일 오후였다. 예상치 못한 반나절 휴가를 얻은 호진은 20대 추억이 깃든 거리를 오랜만에 찾았다. 어제 TV 프로그램이 이끌어낸 아련한 기억 때문이었다. 10여년 전 녹화된 어느 모던록 밴드의 출연 영상이 그 때 여름의 냄새와 소리, 사람들을 불러왔다. 호진 자신이 홍대의 일원인 듯 주말 밤마다 골목을 쏘다니고, 취하고, 춤추던 그 때를 떠올린건 아주 오랜만이었다.

 

건물이 새로 올라간 것 같았다. 역 입구에 어떤 가게가 있었는지는 잊었지만 풍경은 시간이 흘러간만큼 변했다. 토요일 저녁이면 약속 상대를 기다리던 사람들로 웅성이고, 담배 연기가 곳곳에서 피어오르던 모습은 없어졌다. 하지만 한껏 차려입은 젊은이들이 우수수 홍대 거리로 움직이는 모습만은 똑같았다. 나이들어 다시 이 곳을 찾은 호진만이 변해있을 뿐이었다. 

 

한창 ‘나이트 라이프’에 심취했던 20대 후반, 호진은 금요일 퇴근 후 집에 가지 않을 각오로 홍대를 찾곤 했다. 가방과 같은 클러빙에 거추장스러운 물건은 지하철역 코인로커에 밀어넣었다. 밤새 하얗게 불태우고 다음날 아침에 찾아가겠다는 각오의 표현이었다. 주차장 골목을 지나 삼거리 포차까지의 공간에서 호진은 일종의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같은 시간과 공간에 있는 또래 세대의 친구들과 하나된 기분이 들었다. 이제 40대 중반이 되었을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지금 홍대를 가득 채운 젊은이들처럼 삶에 대한 흥분과 설레임을 뿜어내던 그 시절의 사람들이 그리워졌다. 호진을 스쳐가는 20대들 사이에 문득 그 때의 풍경들이 신기루처럼 둥둥 떠다녔다. 

 

호진이 홍대에 드나들기 시작한건 회사 생활을 막 시작한 때였다. 당시 사귄 여자 친구가 이끄는 홍대를 찾으며 강남과는 다른 매력을 찾을 수 있었다. 강남역과 압구정이 아닌 듯 하면서도 남들을 신경쓰는 분위기였다면 홍대는 ‘남의 시선 따윈 개나 줘버려’라는 식이었다. 물론 한창 나이의 남녀간 묘한 긴장감은 넘쳐 흘렀지만, 네게 잘 보이고 싶다는 것보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너랑 나랑 맞을까’의 문화였다. 호진은 홍대에서 자유를 느꼈다. 강남 나이트에서는 부킹을 위해 룸을 잡아야 했고 들어오는 여자들에게 말빨로 승부를 걸어야 했다면, 홍대 클럽에서는 좋아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가, 바에 앉아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옆 자리의 이성과 자연스럽게 ‘너와 내가’ 맞는 부분이 찾아지면 스토리가 시작되는 일이 잦았다.

 

주차장 골목으로 향해 있는 횡단 보도를 지났다. 클럽에 들어가기 전, 초저녁 반주를 위해 들리곤 하던 곱창집이 아직 있는지 궁금했다. 10평 남짓한 조그만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던 주차장 길의 뒷편 골목이었다. 초입부터 예전에는 없던 타로점 집들이 들어서 있었다. 변한 풍경에 호진은 당황했다. 자신의 기억이, 그 때 주말마다 만나던 친구들의 존재가 사라진 듯한 불안함이 엄습해왔다. 다행이었다. 점집과 악세서리 가게를 지나 골목 끝 자리에 곱창집은 아직 남아있었다. 저녁이 되려면 아직 한참 남았기에 문은 열려있지 않았다. 

 

기름기 가득한 그 여름 초저녁의 냄새가 어디선가 묻어오는 듯 했다. 일주일만에 만난 친구들은 팀장을 욕하기는 했지만 아직은 자기 회사에 대한 프라이드로 가득찬 신입사원들이었다. 자기가 어떤 일을 맡았고, 어떻게 성장하고 있다는 자랑으로 이어졌다. 한두 잔 술이 들어가면 오늘 밤의 일정을 짰다. 어느 클럽을 먼저 가고, 분위기를 보다가 어디로 옮겨가자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술에 취한 것인지 이 밤에 대한 흥분으로 몸이 떨리는 것인지 헷갈렸다.

 

호진이 친구들과 자주 가던 곳은 ‘스카’와 ‘틴팬’이었다. 대세로 불려지던 대형 클럽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댄스 클럽이라기보단 뮤직 클럽, 혹은 춤을 출 수 있는 뮤직 바로 부르는 것이 맞을 듯한 두 곳이었다. 테크노보다는 록 음악이나 댄서블한 팝 음악이 나오면 술을 마시다가 어울려 춤을 추는 장소였다. 블러의 Song2가 나오면 ‘우후' 후렴구에 모두가 방방 뛰며 춤을 추는 분위기였다. 삼거리 포차 옆에 있는 스카에서 입장료를 내고 손목 밴드를 받아 놀다가 아직 사람이 덜 찼으면 길 건너 틴팬으로 옮겨 바에 자리를 잡았다. 데킬라를 마시며 시간이 지나길 기다렸다. 프란즈 퍼디난드의 take me out이라도 나올라치면 호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었다. 가사를 소리높여 따라부르다가, 곁에서 춤추던 외국인들과 눈이 마주치면 함께 어울려 놀다가 합석하고 친구가 되었다. 

 

늘 입구에 줄이 늘어서 있던 M2나 NB는 자주 가지 않았다. 그 곳은 왠지 강남 냄새가 났다. 미끈하게 빠진 곳보다는 개러지 느낌이 나는 클럽에서 호진은 더 미친듯이 놀 수 있었다. M2에서는 딱 한 번 신난 적이 있었다. 뉴오더의 베이시스트 출신인 피터 훅이 DJ로 초대된 파티에서였다. 그리운 뉴오더의 음악이 몇 번 믹싱되어 나올 때 호진은 마치 스카에서처럼 놀았다. 함께 간 친구들은 어디선가 여자들과 어울려 춤을 추고 있었다. 호진은 그들과 떨어져 디제잉 박스에 있는 피터훅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곳이 글래스톤베리같았다. 

 

10년도 훨씬 지나 다시 찾은 홍대에서 틴팬은 없어졌다. 그곳엔 새 건물이 올라가고 있었다. 스카는 남아 있었다. 겉에서 보기에 하나도 변한게 없어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 아직 환한 대낮이어서였을까. 건물은 마치 오래된 유물처럼 보였다. 쿵쾅대는 음악이 흘러나올 것 같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 당시 음악의 리듬에 더 이상 흥분하지 못하는 호진 자신의 모습처럼, 스카는 낡았고 쇠퇴해 보였다. 지금이 밤이었더라면, 열려있었다면 이 곳을 들어갔을까. 아니 입장을 허락받을 수나 있을까. 호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삼거리를 지나 홍대 정문을 거쳐 신촌역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내와 연애시절, 자주 홍대의 카페를 찾았다. 아내는 클럽에 익숙하지 않았다. 둘은 이쁘장한 카페에 들러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고 조그만 메모장에 서로 낙서를 하며 놀았다.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시간이었다. 지금도 호진의 책상 안에는 아내가 장난처럼 적어준 낙서들이 간직되어 있다. 소녀같던 그녀의 모습이 그 종이를 보면 눈 앞에 그려졌다. 

 

아름답고 가녀린 여자였다. 호진을 향해 한껏 기대오는 마음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카페들이 있던 골목은 어디였는지 이제는 기억나지 않았다. 비슷한 곳을 찾아  발걸음을 옮길수록 아내의 그 때 마음이 너무 절절하게 기억되었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한 조각 그늘없이 자기를 내어주었던 그녀. 그 마음에 나는 얼마나 진심으로 대해왔나. 호진은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유흥가를 지났다. 미술학원들이 있는 공간으로 접어들었다. 화구를 등에 맨 소녀들의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과거로 돌아간건가. 호진은 눈을 의심했다. 맞은 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수수한 모습의 안경 쓴 여자아이는  ‘미치코 런던’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갑자기 주변 풍경이 변했다. 미치코 런던과 게스의 그 시절이 눈 앞에 펼쳐졌다. 그저 모든 것이 좋았던 시절, 다 잘될 것 같은 그 때의 기억들이, 가까웠던 얼굴들이 짧은 순간 훅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백 스테이지’가 있던 건물이 저 편에 보였다.

 

호진이 뉴오더를 처음 만난 곳. 요즘처럼 뮤직비디오를 보기 쉽지 않던 시절, 음료 한 잔을 시키고 신청곡을 적어내면 뮤직 비디오를 틀어주던 백 스테이지. 록 키드들에게 성지가 됐던 그 곳의 입구까지 걸어갔다. 아직 맥주 맛이 쓰기만 하던 시절, 마운틴 듀 한잔을 시키고 김이 다 빠질 때까지 몇 장이고 신청곡을 주문했던 곳이었다. 한 동안 기억조차 못했던 그 곳에서 호진은 하아, 하고 한 숨을 쉬었다. 어떻게 여기를 잊고 있었지. 음악 한 곡에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던 자신을 어떻게 잊고 살았지. 

 

백스테이지 또한 사라졌다. 지하 공간은 연주 스튜디오로 변해있는 듯 했다. 하긴 꽤나 넓었지. 크게 음악을 틀던 곳이니 방음도 잘 되고 있을터였다. 누군가 입구를 바라보던 호진 곁을 지나 스튜디오로 들어가고 있었다. 일렉트릭 기타를 등에 맨 호진 또래의 남자였다. 

 

아. 그 때의 홍대 친구들은 이렇게 살고 있었다. 작은 젊음의 편린을 하나씩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흘렀더라도, 더 이상 젊지 않더라도 우리 세대의 기억은 각자의 마음 속에 튼실하게, 작더라도 굳건히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를 계속 걷게 해줬으리라. 호진은 고마웠다. 함께 그 시절을 통과해준 자신의 세대들에게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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