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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지 않으세요? 여름이라 긴 머리가 불편하실 텐데”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숨을 돌리고 있을 때, 함께 랠리를 한 여자가 옆에 앉으며 음료수를 내게 건넸다. 
“고마워요, 수아 씨. 이제 두 달 정도 됐죠? 어때요, 할 만해요?”
“아직 잘 안되는데, 그래도 재밌어요. 테니스 시작하길 잘한 것 같아요”
수요일 밤과 토요일 오전은 테니스 동호회에 온다. 테니스는 오십 년 전 홍콩에서 살 때 열심히 했던 후로 오랜만이다. 동호회 사람들과 맞춰주며 쉬엄쉬엄 적당히 쳤다. 수아라는 신입 회원은 나를 ‘프로님’이라고 부르며 틈날 때마다 자세를 봐달라고 했다.

“저도 지석 프로님처럼 백핸드 잘하고 싶어요. 언제부터 치셨어요?”
“에이 프로라뇨. 그냥 친지 오래 된 것 뿐이예요”
“얼마나요? 초등학생 정도부터요?”
이십 대 후반 정도 됐을까. 싱그러운 나이다. 항상 밝게 웃는 그녀는 벌써 동호회의 아이돌이 되어 버렸다. 싱글인 남자들 사이에서는 그녀에게 남자 친구가 있는지가 관심사고, 없다면 어떻게 해보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꽤 있는 걸로 알고 있다. 
“프로님은 결혼하셨어요? 저랑 별로 나이 차이 안 나 보이시는데”
“저 나이 많아요”
“에이 거짓말. 프로님은 많아 봐야 서른 정도 되실 거 같은데. 전 스물일곱이에요.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모를 수 없었다. 내게 호감이 있다는 것을. 내가 거리를 두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밖에서 따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몇 번 영화를 보고, 식사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연인이 될 수도 있겠지.
“단발인데 모자까지 쓰고, 오빠 정말 덥겠다. 머리라도 묶으면 더 시원할 텐데”
“그러게요. 그래도 그냥 이게 편해요”
어느 틈에 오빠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섞이고 있었다. 그녀의 말처럼 어깨 부근까지 내려오는 머리 때문에 목덜미에 늘 땀이 맺혔다. 하지만 그날 이후 오랫동안 늘 이 정도 길이의 머리로 살아왔다. 남자들이 짧은 머리를 한 것은 최근 백 년 사이뿐이었다. 그전에는 남자도 머리를 길러서 귀를 숨기기에 편했다. 조선 시대에는 신분이 높아지면 상투를 틀어야 했고 귀가 드러났다. 나는 일부러 낮은 계급으로 살기를 택했다. 오백 년 전에는 소와 돼지를 잡았다. 천한 놈이라며 사람들이 꺼려 했고 쉽사리 다가오지 않았다. 내겐 그 편이 오히려 나았다. 

환생이란 것이 정말로 있구나 싶을 정도로 닮은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조수아라고 합니다. 테니스 처음 치고요. 많이 가르쳐 주세요”
다른 남자 회원들처럼 그녀가 처음 왔을 때 나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얼굴과 몸 매무새가 닮았다. 백오십 년 전 즈음이었을 것이다. 범이네가 그때처럼 “밥은 자시면서 하시오”라며 보리밥 뚝배기를 내어놓을 것 같았다.

지나가는 노인네들은 모두 혀를 쯧쯧 차던 땅이었다. 거 왜 사서 고생을 하누. 젊은 놈이 어디서 힘써주고 밥 한 그릇이라도 얻어먹는 게 낫지. 여기는 죽은 땅이야. 죄다 자갈에 물길도 안 닿는 곳에서 무슨 농사를 짓겠다고. 안쓰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농주라도 몇 잔 걸친 듯 불콰한 얼굴로 술 냄새를 풍기며 성질을 내는 이도 더러 있었다. 
“에라. 이 미친놈아. 백 년, 천 년을 살아봐라. 그 땅에서 감자 하나라도 기를 수 있는지”

몇 날을 무작정 걸어가던 중 찾은 마을이었다. 백 명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닭을 기르고 소박하게 농사를 지어 먹고사는 곳이었다. 관청의 발이 닿지 않을 정도로 외져 있다는 것에 마음이 놓였다. 마을의 연장자를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고 빈 집과 조그만 땅을 받았다. 혹시라도 전쟁이나 축성 등으로 나라에 차출될 때는 대표해서 나가겠다는 약조를 하고 나서였다. 왜 하필이면 그 땅이오? 나는 웃으며 그냥 해보는 거지요,라고 답했다. 농작물을 기르겠다는 욕심은 없었다. 젊은 놈이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으면 이상한 말이 도는 시절이었다. 중국 고사에서 누구는 세월을 보내기 위해 낚싯대를 드리운다고 했다. 그건 내 나름의 낚시질이었다. 

곧 군관이 들이닥칠 것이라 했다. 왕이 신하들에게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돌 때 즈음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종족은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숨어 살지 않았다. 천주 쟁이라 불리는, 바다 밖에서 온 귀신이 돌아다닌다는 말과 함께 사람들은 우리를 천주 귀신이라며 죽이기 시작했다. 뾰족한 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노인의 나이가 되어도 청년 같은 모습을 가지기 때문일까. 우리는 사냥 당하기 시작했다. 어느 마을의 종족 모두가 목이 잘려 죽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오늘은 우리 차례였다.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라. 네가 누구인지 말하면 안 된다. 귀를 절대 남에게 보이지 말거라.”
나보다 천 몇 년을 더 살았을, 아득히 먼 옛날부터 지금의 얼굴이었다는 형님은 헤어질 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청나라로 갈 것이다. 그곳은 워낙 넓어서 어딘가에는 봉황만 산다는, 구름 위까지 높은 산이 있다고 하더구나. 나는 그리 가서 숨을 것이다.”
나는 가벼운 봇짐을 가슴팍에 안고 길을 떠났다. 형님은 노잣돈이라며 금괴 한 덩이를 내게 쥐여줬다. 먼 옛날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방법이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 금을 항상 소지하고 다닐 것. 그리고 틈날 때면 모아놓을 것.
“오래 살 거라. 그러면 또 만날 것이다”

마을에 내 뒤로 새로운 사람이 온 것은 세 번의 여름을 감자 한 톨도 못 건지고 지낸 다음이었다. 동네 사내들이 수군거리는 말에서 젊은 과부라는 것을 알았다. 작은 방앗간을 하면서 가끔 삯바느질 품팔이도 하는 그 과부가 그렇게 절색이라는 말은 몇 달 지나자 수그러들었다. 얼굴은 안 그렇게 생겨서 성질머리는 얼음장같다는 말이 마지막이었다.
“밥은 자시면서 하시오”
쟁기질을 한참 하던 중에 누군가 뒤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오른쪽 까까머리에 부스럼이 난 사내아이와 함께 젊은 여자가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어느 정신 나간 사내가 삼 년이나 자갈로 된 죽은 땅을 파고 있다는 소문이 있길래, 혹시나 해서 와 봤는데 진짜였네”
꼬맹이가 엄마 뒤에 숨은 채 빼꼼히 고개만 내밀고 있을 때, 여자가 뚝배기를 내밀었다. 거 몸 축나오. 밥이나 좀 챙겨 드시오. 며칠 동안 오며 가며 봐왔는데, 뭘 먹는 꼴을 못 봤다는 말을 더하며 여자는 빙긋 웃었다. 다 먹는 걸 보고 나서야 가던 길 가겠다는 듯, 자갈밭 옆 바위에 자리 잡고 앉아 있는 여자의 기세에 눌려 나무 숟가락으로 보리밥을 양껏 퍼 입에 가져갔다. 

나의 종족은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었다. 물 약간만 있으면 됐다. 우리는 식욕이 없이 태어난다. 반드시 먹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각은 있다. 누군가와 어울리거나 먹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을 때는 먹는다. 하지만 지금처럼은 아니었다. 뭐가 신나는지 여자는 우적거리며 보리밥을 씹어내는 내 얼굴을 계속 바라보고 있다. 그 옆의 꼬맹이는 그런 엄마의 모습이 신기한지 나와 여자 사이를 번갈아가며 고개를 돌린다. 잘 먹었소. 내미는 밥그릇을 받으며 여자가 말했다.
“이 아이는 범이라고 하오. 난 그냥 범이네,라고 부르시오”

 

범이네는 하루 걸러 하루 내가 있는 자갈밭으로 찾아왔다. 하는 말은 매번 같았다. 밥은 자고 하시오. 어떤 날은 갓 찌었다는 백설기를, 가끔은 잔칫집 일 도와주고 받아왔다는 녹두전이며 고기 산적을 내밀었다. 범이네가 차려온 먹거리를, 나하고 범이가 마주 앉아 먹었다. 그녀는 그 모습을 싱글거리며 보기만 했다. 

매번 받는 것이 미안해 범이한테 줄 주전부리를 사서 집을 찾아갔다. 빙 돌아가야 하는 먼 길에 있었다. 지나는 길에 들렀다는 그녀의 말은 거짓이었다. 범이는 엿을 좋아했다. 오일장에 오는 엿장수에게 호밧엿이며 옥수수엿, 고구마엿 등을 종류 별로 사놓고 조금씩 가져다주었다. 범이는 멀리서부터 내가 오는 모습을 보면 ‘태구 아재요’라고 부르며 달려왔다. 그렇게 왕래하다 언제부턴가는 같이 밥상 머리에 앉아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범이네의 웃는 얼굴을 나는 좋아했다. 범이가 잠든 밤, 둘이 나란히 누워  농이라도 던질 때면 환하게 웃는 얼굴이 달빛을 한껏 머금은 박꽃 같았다.
“자네는 참 예쁘게 웃는구려”
“살 좀 맞댔다고 이제 애교도 부릴 줄 아네. 과부도 여자는 여자인 갑소. 당신 말 한마디에 이렇게 기분이 좋으니”
달그림자가 지나 다시 방이 밝아졌을 때 박꽃에 이슬 몇 방울이 맺혀 반짝이고 있었다. 범이가 당신을 이렇게 따르니 우리 같이 삽시다. 저녁을 먹고 꾸벅이며 졸던 범이를 안아 방에 뉘고 난 후였다. 범이네가 맞은편 먼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범이네의 오른손 위에 내 손바닥을 포갰다. 

마마 때문이라고 했다. 범이네는 쓰러진지 이레 만에 죽었다. 내 이래 행복해질 때 무언가 불안하다 했소… 며칠 전까지만 해도 평소보다 새근대던 정도였던 숨이 거칠어지며 얼굴이 검붉게 변한 범이네는 힘없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자네 그게 무슨 소린가.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걸세”
“당신하고 오래오래 이렇게 살고 싶었소. 당신하고 같이 늙어 살며 이것저것 해보고 싶었는데. 젠장 맞을 팔자가, 네년은 이것만으로도 복에 겨운 줄 알라며 이제 그만하라네”
말을 마친 후 감긴 범이네의 눈은 다시 떠지지 않았다. 어느 달 밝은 밤, 엉엉 우는 범이를 꼭 안아 재우고 하늘을 봤다. 그날은 달의 모양새가 꼭 박꽃 같았다. 
 
부산으로 가는 증기 기차에 범이를 태웠다. 예전에 알던 포목상 주인이 도착 시간에 맞춰 부산역에 나와 있기로 했다.
“태구 아재요. 내랑 같이 살아줘. 내 무섭다”
“이놈아. 이제 코밑에 수염도 듬성듬성 나기 시작한 놈이 무섭긴 뭐가 무섭냐. 옛날 같으면 장가도 갔을 나이다”
그렁 그렁한 눈물이 배인 녀석의 얼굴을 나는 애써 모른 척했다. 데려갈 수 없고 같이 살 수 없다. 나는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고, 그래서도 안된다. 더 이상 사랑하는 이가 먼저 죽는 모습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져가라. 간수 잘하고 아껴 쓰면 삼 년은 버틸 거다” 나는 손가락 크기의 금덩이들이 들어 있는 작은 주머니를 범이 손에 쥐여 주었다. 
발차를 알리는 소리가 크게 나더니 기차 바퀴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내민 범이의 아직 여물지 않은 손을 한 번 꽉 잡아 주며 말했다.
“오래 살 거라. 네 어미 몫까지 오래 살 거라”
그러면 언젠가, 다시 만날 거라는 약속은 할 수 없었다.

도쿄 올림픽이 열렸던 해였다. 여름의 오사카는 조선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덥고 습했다. 한국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에 일본으로 넘어왔다. 막부 시절에 백 년 정도 살다가 오랜만에 다시 왔음에도 일본어는 몇 개의 단어를 빼고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나는 사진 기술을 배워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었다. 이 직업 역시 많은 사람과 얽히지 않는다는 점에서 꽤 마음에 들었다. 여행 잡지사에서 의뢰받은 사진을 납품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오후 시간이라 노면 전차 안은 승객이 별로 없이 한적했다. 마 재질의 흰색 셔츠를 입은 흰머리의 노인과 어린 소녀가 정거장에서 전차에 올랐다. 

“태구 아재. 아재 맞재?”
내 맞은편 좌석에 앉은 노인이 한동안 나를 노려보다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의 눈이 두꺼운 뿔테안경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크게 떠진 흰자위에 붉은 핏줄이 순간 부풀어 오르는 것 같더니 이내 그렁 그렁한 물기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범이와 헤어진 날의 증기 기관차 소리가 들려왔다. 깡말랐던 녀석이 풍채 좋은 노인이 되어 있었다. 막대 사탕을 한 손에 든 여자 아이는 양 갈래 땋은 머리를 흔들며 일본어로 “할아버지, 누구야?”라고 물었다.
“사람 잘 못 보셨습니다. 어르신. 저는 다케시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럴 리가 없어요. 태구 아재. 내가 아재를 어떻게 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하나도 변한 게 없어요.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아닙니다. 아마 조선분과 헷갈리시는 것 같습니다. 전 사진작가이며 일본 사람입니다”
목적지가 아니었음에도 전차가 멈춘 사이 바로 내렸다. 다시 출발한다는 종소리와 함께 노인이 외쳤다. 
“꼭 한 번 다시 만나고 싶었어요. 아재, 우리 또 만나요. 아재!” 
조선말이었다. 못 들은 척 뒤돌아보지 않았다. 주먹을 꼭 쥐고 있었음을, 어느 틈에 축축해진 눈가를 닦으려다 깨달았다.

좋은 삶, 행복한 인생이었을까. 잊어버렸다. 좋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을 멈춘 지 오래되었다. 나는 그저 길게 살아왔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보내야만 했다. 몇 번이고 그리워하다가 포기해 버렸다. 나는 가만히 서 있는데, 그들은 다가왔다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나를 떠났다. 내가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그냥 살아져 갈 뿐이다. 마음을 닫은 채로. 언젠가 또 과거가 될 지금을 매번 슬퍼하면서.

오늘 테니스는 평소보다 길어졌다. 몇 번의 랠리를 마치고 나니 오후 3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같이 뒤풀이 가시면 좋을 텐데. 수아는 아쉬운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저는 집에서 샤워를 하는 게 좋아서요. 나중에 기회 되면 같이 할게요. 집으로 돌아와 모자를 벗는다. 위를 향해 뾰족하게 솟아오른 귀가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다. 더 오랜 옛날의 조상은 하늘을 날아다녔다고도 했다. 사람의 마음이 그냥 귀로 들려오는 능력을 지닌 이도 많았다. 나도 아주 가끔은 강하게 집중하며 상대방의 눈을 보자면 그쪽의 생각이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피곤한 일이었고, 오랫동안 안 하다 보니 이제 그 능력은 사라졌다. 남의 생각을 알아내는 것은 고통스럽고 슬픈 적이 훨씬 많았기에 그 능력이 사라진 것이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저 수아예요. 놀라셨죠?
-동호회 분에게 물어서 오빠 연락처 알았어요
-직접 물어보기 부끄러워서
-저, 오빠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여자친구나 부인 있으시면 죄송해요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핸드폰에 알림 창이 떴다. 메신저 화면에 말풍선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내가 답할 차례였다. 핸드폰 전파 건너편에 있는 수아의 마음이 느껴졌다. 범이네의 얼굴과 꼭 같은 여인이다. 날 두고 사라지는 사람을 더 이상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한 지 백 년이다.

아이였던 시절은 아득히 먼 옛날이라 대부분의 기억은 지워졌다. 하지만 커다란 손이 내 뺨을 어루만지던 때는 희미하게 남아있다. 내 얼굴을 감싸고도 남을 두 손이 얼굴 전체를 쓰다듬었다.
“다 크고 나면, 그 이후로 너는 오래 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네게 내려진 복이 아니다. 너는 남고 남들은 떠나기 때문이다. 몇 번을 반복하면 너는 마음을 잃는다. 스스로 마음을 버린다. 네가 감당할 수 없는 슬픔 때문이다. 우리 종족은 지금까지 모두 그렇게 살아왔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는 나와 눈을 맞추며 주름 가득한 미소를 띤 얼굴이 말을 이었다. 
“영생을 얻고 마음을 잃는다. 이렇게 사는 것이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네가 살아보며 알게 되겠지. 하지만 마음을 아예 닫지는 말거라. 그렇게 되면 넌 영원히 계속되는 지옥도에 혼자 남겨질 테니”

그 미소를 떠올릴 때면 가슴 안 귀퉁이 어딘가에 작은, 하지만 따스한 기운이 만져진다. 나는 이번에도 열어 보겠다. 닫힐 때를 두려워하지 않겠다. 내 마음에 사람을 다시 한번 들여 보겠다. 과거가 되기엔 아직은 이르기만 한 지금을 살아 보겠다. 메신저의 말풍선은 사라졌다. 이젠 내가 만들 차례다.

-수아 씨. 먼저 연락해 줘서 고마워요. 슬프게도 전 혼자랍니다. 아니 기뻐해야 하나요, 이젠?

불로불사의 존재. 요정.
이제 모두 사라진 나의 종족을 예전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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