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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열명 남짓한 사람들이 음식점으로 들어왔다. 그중 가장 나이 많아 보이는 남자가 예약석에 밑반찬을 올리고 있는 만호를 보고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와. 오늘은 만호가 있구나. 운 좋았네”

“그렇죠? 과장님은 만호가 만든 제육볶음 좋아하시잖아요? 벌써 준비해 놨다고요. 하하”

 

쑥스러운  얼굴로 작게 고개만 끄덕여 인사한 만호를 대신해서 예지가 큰 소리로 손님들을 반겼다. 

“정말이야. 사장님도 음식 잘 하시지만, 이 집 아들의 손맛에는 뭐랄까. 그리운 느낌이 있단 말이지”

과장이라 불린 남자는 기대된다는 듯 두 손바닥을 비비며 입맛을 다셨다.

 

“자, 그럼 새로 우리 회기 동사무소의 새 식구를 환영하며, 건배!”

왁자지껄하게 술잔이 돌기 시작한 테이블의 음식 준비를 마친 만호가 다시 민주의 앞자리로 돌아왔다.

“미안해요.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렸죠”

만호는 접시에 담긴 제육볶음을 만주의 앞에 내려놓으며 “제가 만든 거예요.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네요”라고 수줍은 얼굴로 말했다.

 

“아까 들었어요. 이게 유명한 만호 씨의 제육볶음인 거죠?”

“아,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엄마한테 배운 대로 한 건데요 뭐”

붉은색으로 고추장 양념이 된 고기와 양파를 젓가락으로 들어 입에 넣은 민주가 두 눈을 감은 채 한동안 양쪽 볼을 오물거렸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리운 느낌이라는 게”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위로 들어 올린 민주가 “이런 건 그냥 먹으면 안 되죠. 우리 소주 한잔할까요?”라며 빙긋 웃었다.

뺨에 보조개가 깊게 팬 만호의 얼굴이 접시에 담긴 당근과 같은 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만호야, 누구야? 여자친구?”

화장실에 다녀오던 일행 중 한 명이 만호와 민주의 테이블을 지나가며 물었다. 얼굴이 불콰한 것이 기분 좋게 취한 얼굴이었다.

“앗, 아니에요. 같이 일하는 동료예요. 근처 지나다가 밥 먹으러 왔어요”

만호가 양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민주의 눈치를 살폈다.

“잘 어울리는데 뭐. 아가씨, 이 청년 말이야. 꽤 괜찮다고요. 요리 잘 하는 남자, 요즘 인기라면서요. 후후”

 

그의 말에 민주가 두 손에 턱을 괸 채로 싱긋 웃었다.

“그러게요. 오늘 멋있는데요”

만호가 “뭐, 더 필요한 거 없으세요? 주방 좀 다녀와야겠다”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허둥대던 만호의 발치에 빈 의자가 걸려 덜컹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하아. 이제 좀 살 것 같다. 하루 종일, 꽤 긴장했거든요”

민주가 주먹을 쥔 양손으로 자기 어깨를 토닥였다.

“처음 가본 장소기도 했지만, 뭐랄까. 본사에 있는 사람들은 다 멋있는데, 나만 초라해 보이는 것 같고”

만호는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민주를 바라봤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나. 민주도 나랑 똑같은 기분이었던 걸까.

 

“그런데 있잖아요. 아까 지하철 타고 여기로 오면서 계속 그 말이 생각났어요”

만호는 내내 창밖을 보며 평소와 다르게 별말이 없던 민주의 모습이 기억났다. 그리고 자신도 머리속으로 되뇌었던 전도일 셰프의 말도.

 

“겉으로 보기에 그럴싸한 것만이 아니라…”

만호가 시작한 말을 민주가 나직한 목소리로 이었다.

“…소박한 게 더 좋은 향기를 지니고 있다”

 

민주가 소주잔을 들어 만호의 잔과 부딪혔다.

“지금 먹은 제육볶음에 그 향이 스며있는 것 같아서, 안심됐어요. 그게 사실이구나 싶어서, 기뻤어요”

 

민주가 가게를 떠난 후 동사무소 일행의 자리도 마무리됐다. 마침 영업을 마칠 시간이 되어 예지와 만호는 가게 문을 닫고 테이블을 치우기 시작했다. 민주가 앉아 있던 자리를 만호는 마지막까지 정리하지 않았다.

 

“이제 내가 마무리할게. 오늘 고생했다”

부모님과 예지를 집으로 보낸 후 만호는 민주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그 맞은편 의자에 다시 앉았다. 그녀가 사용하던 젓가락과 접시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제육볶음이 있던 접시는 깨끗이 비어 있었다. 만호는 민주의 입술이 닿았던 소주잔에 가만히 손바닥을 올려봤다.

 

“만호 씨 계획은 이거 어때요? 이 멋진 가게를 지금처럼 사람들이 행복하게 머무는 곳으로 키워가기”

가게를 떠나기 전 잘 먹었다며 악수를 청할 때 민주가 했던 말이, 그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리고 있었다. 

 

만호는 맞은편의 빈 의자를 바라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둘이 같이 하면 더 좋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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