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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호는 민주가 신경 쓰였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밝고 쾌활한 듯 보였지만, 잠깐씩 얼굴에 떠올랐다 사라지는 슬픈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본사에서 파견 온 한유리 과장과 우연히 저녁을 먹었다고 말했던 날부터다.
“어머. 민주 씨, 안녕?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요!”
“히힛. 감사해요! 유리 과장님, 오늘도 너무 예뻐요”
출근길에 서로 인사하는 둘을 보고 개점 준비 중인 남자 직원들은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히야아. 보기 좋다, 그치?”
“그러게. 러블리 민주랑 새로 온 여신님의 조합이라! 근데 저 둘이 언제부터 저렇게 친해진 거래?”
민주는 머뭇거리고 있었다. 조리실에서 만호와 함께 새로 구상한 샤인 머스캣 조각 케이크를 완성하고 난 후였다.
“민주 씨 바쁘면 내가 가져갈게요”
“바쁜 건 아닌데…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맛이 꽤 괜찮은 것 같으니 매장 사무실에 시식용으로 몇 개 가져가면 어떻겠냐고 만호가 말했다. 혹시 점장님이 있으면 어쩌지. 한유리와 유영빈과 함께 한 저녁 식사 이후 민주는 영빈을 예전처럼 대하기가 어려웠다. 그의 얼굴을 볼 때면 가슴 어딘가에서 몽실 거리는 구름 같은 아픔이 퍼져갔다.
떨리는 마음으로 사무실 문을 열었을 때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민주는 케이크를 점장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방금 전까지 자리에 있었던 듯 영빈의 노트북 화면이 켜져 있었다. 노트북 옆에는 유영빈의 이름과 점장이라는 직책이 새겨진 명찰이 놓여 있었다. 영빈은 쑥스럽다며 좀처럼 달지 않았다. 민주도 그가 명찰을 한 모습을 딱 한 번 밖에 보지 못했다. 카페 토라세 방배점에 처음으로 와 본 날이었다.
‘에휴. 이번에도 안됐네’
핸드폰으로 온 문자에 바리스타 수업이 끝나고 경쾌하게 걷던 민주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지난주 면접 본 회사에서 보내온 문자였다. 졸업까지 이제 4개월. 국문과는 취업하기 어렵다는 말이 실감되는 나날이었다. 민주뿐 아닌 졸업을 앞둔 동기들 모두가 비슷한 처지였다. 절반 정도는 이미 작년부터 공무원이나 공사 시험 준비를 시작해서 연락도 잘되지 않았다.
‘국문과는 모두 소설가나 시인 지망생 아닌가’
신입생 때 많이 들었던 말이었다. 민주는 아니었다. 민주는 글쓰기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물론 과에는 그런 친구들이 많기는 했다. 매년 신춘문예나 문예지 공모전 시즌이 되면 며칠간 잠을 못 잔 듯 진한 다크서클를 한 채 좀비처럼 다니는 동기들이 꼭 있었다. 하지만 민주는 그저 이야기가 좋았을 뿐이었다. 누구나 좋아할 만한, 슬프거나 즐겁거나,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을 이야기를, 국문과에서는 늘 접할 수 있을 것 같아 전공으로 택했다.
졸업 이후를 생각해야 했다. 취업 활동은 계속하겠지만 그전에 무엇이든 일할 거리는 필요했다. 민주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선택했다. 커피를 즐겨 마시는 것은 아니었지만 카페라는 공간은 좋아했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곳. 찾아왔다가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곳. 고등학교 졸업할 때 국문과를 골랐을 때처럼, 민주는 또 이야기가 있는 쪽을 택했다.
자격증을 땄지만 카페 아르바이트를 얻는 것도 생각처럼 잘 되진 않았다. 면접에 온 민주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정말 대학교 졸업 예정 맞아요? 고등학교 갓 졸업한 게 아니고?”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한 카페 주인은 민주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 듯 돋보기안경을 위로 올려 이력서를 한참 들여다봤다. “어이구, 아가씨 동안이네”라며 말끝을 흐리다가 인자한 삼촌의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몸이 고된 일인데 할 수 있겠어요? 몇 주 하다가 포기하면 이쪽도 곤란한데”
몇 차례의 면접을 통해 민주는 알게 됐다. 그녀보다 더 크고, 힘이 세고, 빠릿빠릿해 보이는 사람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커피 관련된 일하는 거, 좋아해요?”
첫 질문이었다. 첫인상은 차가워 보이는 사람이었다. 점장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민주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한 후 커피가 담긴 쟁반을 들고 테이블로 걸어왔다. 팔다리가 길고 키도 컸다. 파마를 한 것 같지는 않지만 살짝 곱슬거리는 머리가 정돈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인상을 조금 부드럽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꽤 세련된 동네에 위치한 대기업 브랜드 카페의 면접이라 한창 긴장했던 민주는, 상대방이 던진 질문에 자기도 모르게 왜 바리스타 수업을 들었는지, 어떤 것들이 재미있었는지를 한창 신나게 말했다. 남자는 작은 소리로 호오, 네에,라며 민주의 말을 귀담아들었지만 그 옆자리의 검은 뿔테안경을 쓴 매서운 눈초리의 여자는 어느 시점부터 민주에게 흥미를 잃었는지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겠어요. 특히 카페를 이야기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게”
이 사람은 내가 꽤 마음에 들었나 보다. 민주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반응에 마음이 한결 놓였다. 근무 가능 시간과 질병 여부 등 일반적인 내용에 대한 질문과 답이 오간 후 남자가 민주에게 말했다.
“그러면 지원자분이 우리한테 궁금한 점은 없나요? 우리가 알고 싶은 건 이 정도면 됐고, 반대로 우리도 그쪽에 알려줘야 될 게 있을 텐데요”
잠시 생각하던 민주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카페 일이, 몸이 고된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 게 그렇게 힘든가요?”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물어본 민주의 말에 남자는 크게 웃었다.
“하하. 뭐든 하기 싫은 일은 힘든 거 아닐까요? 제가 볼 때 지원자분은 하나도 안 힘거 같은데요. 지금 같은 표정으로 일하면, 그렇게 행복한 표정이라면 본인도 힘들지 않고, 같이 일하는 사람도 틀림없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웃을 때 양쪽 눈가에 잡히는 주름 때문에 남자의 날카로운 인상이 순간 개구쟁이처럼 변했다. 계속되는 그의 웃음에 민주도 얼떨결에 따라 웃고 있었다.
‘만약 이 면접에서 떨어져도 앞으로는 꼭 카페 토라세만 다녀야지’ 민주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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