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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노크 후 한유리 과장이 베이커리 조리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만호는 오늘 판매분 케이크를 만드는 데 한창 집중하느라 그녀가 온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완성된 케이크를 매장으로 내보내려 트레이에 올릴 때까지, 유리는 조용하게 만호가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집중하는 모습 멋있네요. 방배점 케이크가 왜 잘 되는지 알겠어요”
만호가 놀란 기색을 보이자 유리는 “어머, 미안해요. 방해하지 않으려 조용히 있었어요”라며 미소 지었다. 만호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
“아, 민주 씨 보러 왔어요. 같이 이야기할 게 있어서”
만호는 어딘가 허전한 얼굴로 말했다. “오늘 민주 씨 오프예요. 챙길 일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같은 시각, 민주는 면접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꽤 이름이 알려진 온라인 쇼핑몰로, 오랜만에 서류 통과가 된 회사였다. 민주 나름의 지원 기준에 맞는 곳이어서 더 좋았다. 너무 딱딱해 보이지 않는 곳. 일하며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곳. 이력서를 넣기 전 둘러본 쇼핑몰에는 아기자기하고 예쁜 상품들이 곳곳에 보였다. 여기서 일하는 것도 이렇게 알록달록하기를 바랐다.
오랜만에 입은 검은색 치마 정장이 몸에 끼는 기분이었다. 너무 편하게 입고 다녔던 걸까, 아니면 요즘 케이크를 많이 먹어서 살이 좀 쪘을까. 콩닥 거리는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인 듯 누구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않고 작은 소리로 무언가를 읊조리며 입술을 움직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민주의 이름이 불렸다.
두 명의 면접관과 두 명의 지원자가 적당히 거리를 두고 마주 앉았다. 민주 옆에는 비슷한 스타일의 정장을 입은 여자가 앉았다. 지원 동기와 자기소개로 면접이 시작됐다.
UX 라이팅에 대해서 알고 있나. 본인의 카피 라이팅 능력은 어느 수준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 쇼핑몰을 이용한 적이 있는가. 개선할 점이 무어라고 생각하나…
두 사람에게 던져진 질문에 가끔 더듬었던 민주와 달리 옆자리의 경쟁자는 마치 연습이라도 한 듯이 막힘없이 대답했다. 면접관은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며 앞에 놓인 종이에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면접관 중 한 명은 날카로운 인상 때문인지 유영빈 점장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영빈처럼 민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도, 네에,라고 호응해 주지도 않았다. 그저 맞은편에 있는 대상을 품평하는 듯한 눈빛으로 민주를 바라볼 뿐이었다. 영빈이 물었던 “이 일을 좋아할 것 같나요?”라는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우리 회사에 입사 후 포부는 뭔가요?”
옆자리의 여자는 이번에도 정석에 가까운 답을 했다. 이커머스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 이 회사를 아마존처럼 만들고 싶다.
그녀가 말을 마치자 맞은편의 시선이 민주 쪽으로 향했다.
“저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민주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저와 일하는 후배가 무언가 잘 했을 때, 머리를 쓰다듬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내내 표정에 변화가 없던 차가운 인상의 면접관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머리를, 뭐 한다고요?”라고 다시 확인하듯 물어오자, 민주는 “쓰담 쓰담입니다. 사람을 참 행복하게 만들어 주거든요”라고 말했다.
몇 달 전, 가로등 아래에서 유영빈 점장이 자기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줬을 때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면접 자리라는 것도 잊은 채 민주는 푸훗, 하고 작게 웃었다.
버스가 흑석동을 지나고 있었다. 계속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민주는 무언가 결심한 듯 입술을 앙 다문 채 자판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 죄송합니다. 2차 면접에는 참석하지 않겠습니다. 좋은 기회 주셨는데 죄송합니다
어제 받은 1차 면접 합격 문자에 처음에는 설렜다.
‘왜 나를? 질문에 대답을 잘 한 것도 아닌데’ 이유가 뭘까 아리송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일하는 걸 상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카페 토라세 방배점의 사람들, 만호 씨와 한나 매니저, 유영빈 점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과 보낸 시간이 벌써 반년이 지났다. 많은 생각 사이를 공간 이동처럼 오가면서 민주는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밤을 새운 김에 이른 시간에 집에서 나온 민주는 평소보다 훨씬 일찍 방배점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으리라는 생각에 도어록 번호를 누르려 했을 때 매장 안에 불이 켜져 있음을 알았다. 누가 이렇게 일찍 왔을까, 만호 씨가 베이킹 때문에 빨리 왔을까. 탈의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였다.
“어, 민주 씨 웬일이야? 이렇게 일찍?”
유영빈 점장이 식기세척기에서 막 꺼낸 듯 물기가 잔뜩 묻은 컵과 쟁반을 트레이에 실어 카운터로 옮기고 있었다.
“좀 일찍 일어나서요. 점장님은요?”
“나도 똑같지 뭐. 집에서 빈둥대느니 미리 영업 준비나 해 놓을까 싶어서. 하하”
영빈의 곱슬머리는 평소보다 더 부스스했고,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듯 이른 아침의 나른함이 얼굴에 섞여 평소보다 더 편안한 인상이었다.
“저도 같이 도울게요” 민주는 영빈의 옆으로 다가가 마른 수건으로 컵에 묻은 물기를 닦기 시작했다.
“오는 길에 추웠구나? 양쪽 볼이 홍시 같네” 영빈이 민주의 얼굴을 보며 말하다가 “아, 너무 아재스러웠나? 홍시라니. 하하”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민주의 얼굴 위에 창문으로 들어온 아침 햇살이 환하게 비치기 시작했다.
‘난 이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던 거구나’
두 사람만 있는 고요한 매장에 뽀득 뽀득, 컵 닦는 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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