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차갑지만 상쾌한 겨울바람이 영빈의 몸을 한차례 휘감았다. 어두운 밤하늘에서 소박한 눈송이가 떨어지고 있었다. 영빈은 가게 맞은편의 담벼락 쪽으로 걸어가며 담뱃불을 붙였다. 빈속에 계속 들이킨 술 때문에 정신은 몽롱했으나 오히려 속은 가벼웠다.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벽에 등을 기대고 고개를 들자 희미한 주황색 가로등 불빛이 자신의 입김과 자욱한 담배 연기 사이로 흩어지고 있었다. 얼굴에 닿는 작은 눈송이의 느낌이 청량했다. 유흥가에서 벗어난 한적한 골목 초입에 위치한 음식점이라 주변은 조용했다. 직원들의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가게 밖으로 흘러나왔다. 이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함께 해온 방배점 가족들이다. 함께 켜켜이 추억을 쌓아온 이들과 헤어질 생각을 하니 영빈은 다시 한번 쓸..

“그리고, 여러분께 알려야 할 내용이 있어요” 월요일 아침 조회가 끝나기 전, 유영빈 점장이 말끝을 흐렸다. 직원들은 예상하고 있던 이야기가 나올까 싶어 숨죽인 채 기다렸다. 사무실 천장 쪽을 바라보던 영빈은 무언가 결심한 듯 작게 한숨을 내뱉은 후 입을 열었다. “다들 이미 소문으로 알고 있겠지만, 이번 주까지만 여러분과 함께 있게 됐네요. 다음 주면 전 본사로 돌아갑니다” 역시 소문이 맞구나. 몇 직원들의 작은 탄식이 있었을 뿐 반응은 대체로 조용했다. 며칠 뒤면 정식으로 조직개편 발령이 있을 거라는 말과 함께 영빈이 마지막까지 잘 부탁한다며 작게 미소 지었다. 누군가 외친 ‘수고하셨습니다!’와 함께 박수가 시작되려 할 때 영빈이 잠깐,이라며 두 손을 저었다. “아직 한 가지 더 남았어요” “이제 민..

“점장님 오늘도 자리 비워?” “요즘 하루 걸러 하루는 본사로 가잖아. 그 소문이 진짜인가 보다” 강한나 매니저가 진행한 아침 조회가 끝난 후, 사무실에서 나와 매장으로 돌아가는 직원들이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하고 있었다. 유영빈 점장이 지난 주부터 부쩍 자주 본사에 가면서부터 ‘곧 점장이 바뀐다’라는 이야기가 직원들 사이에 공공연한 사실처럼 오르내리고 있다. 한나도 요즘 매장 분위기가 어수선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영빈에게 싫은 소리를 하진 않았다. 본사에서는 아직 복귀 발령도 나지 않은 영빈을 마치 신사업 프로젝트에 이미 투입된 것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원래 회사란 게 그랬다. 위에서 힘을 실어준다 싶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달려드는 불나방 같은 문화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조직에서 관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