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세 번 읊조리면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안심될 때가 있어 나를 향한 네 눈길에 더 이상 아무 감정도 없음을 알아채는 것도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야 지난 십여 년의 시간이 결국 무엇도 남기지 못했음을 곱씹는 것도 난 빈 껍데기만 남아 있음을 이제야 깨닫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다짐하다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누가 무엇을 잘 못했기에 이런 걸까를 생각하다 보면 화를 누를 길 없기도 하지만 결국 이렇게 될 일이었다고, 그냥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늘 한 번 보고 조용히 입 밖으로 내뱉어 보면 크게 뚫려 있는 가슴속 구멍으로 차갑지만 시원한 바람 한 줄기 흘러들어가는 것 같기도 해 하지만 이제 곧 아무것도 아니게 될 이 공간과 물건,..

나는 많은 것에 담겨 당신을 찾아간다. 당신의 오감은 불현듯 내미는 내 손을 쉽게 잡아주곤 한다. 나는 소리에 섞여 당신의 마음을 두드린다. 그리운 멜로디는 당신과 나를 오랫동안 잊고 있던 그곳으로 데려간다. 짧은 선율은 이미 잊은 지 오래인 당신의 어떤 마음을 나와 함께 열어젖힌다. 그러나 어쩔 줄 모른 채 흐르기 시작하는 당신 뺨의 눈물은 누구의 탓도 아니다. 나는 냄새와 친하기에 쉽게 섞인다. 후각에 올라탄 나는 당신의 시선과 손끝까지 미친다. 순간 어지러움과 함께 찾아온 나 때문에 당신은 가끔 발걸음을 멈추고 얕은 한숨을 쉬기도 한다. 당신은 나를 반기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나는 당신이 짓는 미소와 함께 사라지고, 당신이 흘린 눈물과 함께 말라간다. 내가 찾아가는 것을 당신..

네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그건 내가 죽는데 성공했다는 거겠지. 눈에 띄는 곳에 놓아 놨으니 어렵지 않게 찾았기를 바란다. 우선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어찌 됐건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 되도록이면 고통스럽지 않으면서도 내 주검이 흉해 지지 않을 방법을 나름 열심히 찾아봤어. 범죄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괴기스러운 모습으로 발견되기는 싫었거든. 내 얼굴에 괴로운 기색이 많지 않다면 별로 힘들지 않게 떠났으리라 생각해도 된다. 네가 그걸 신경 쓸지는 모르겠지만. 오래전부터 널 기억하는 데 온 힘을 다했다. 너와 보낸 시간과 같이 갔던 장소, 함께 먹었던 음식들을 기억하보니 언제부턴가는 널 기억했던 나를 기억하고 있더라. 기억을 또 기억한다는 게 참 우스우면서도 한편으론 또 고마워졌어. 그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