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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팀장 호진씨의 일일

그땐 그랬지

은고랭이 2021. 7. 21. 09:22

“오늘은 연차 쓰시고 오신 건가요?”

 

4명의 면접자 모두가 그렇다고 답했다. 설사 아니더라도, 재택 근무 중에 잠깐 나왔거나 혹은 외근 나간다 하고 면접을 보러 왔더라도 ‘하루 연차를 썼다’라고 하는 것이 암묵적인 정답임을 호진도 잘 알고 있다. 자신도 예전에 똑같이 말했으니까.

 

지금의 회사에서 ‘조그만 거짓말’을 하고 면접을 보러 나왔다는 것은, 여기서도 똑같이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어서, 최대한 좋은 인상을 줘야하는 면접에서는 금기되는 말이다. 사람을 좋게 평가할 면을 찾는 것보다, 안좋은 부분을 발견하는 것이 더 쉬운 법이다. 

 

첫 면접자 A는 마치 신입사원 면접에 온 것처럼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앳된 얼굴에 아직 경력도 4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아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호진이 간단한 자기 소개와 지원 동기를 묻자, 아마도 방금전까지 연습했을 내용을 말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어떤 성과를 냈으며, 어느 부분에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지를 숨쉴 틈 없이 빠른 속도로 쏟아놓은 그의 이야기에서 호진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요즘 ‘핫하다’는 데이터 분석 직무였으니, 호진에게 생소한 시스템명과 분석 툴의 이름이 이어졌다. A의 모습을 보며 호진은 예전 저 자리에서 앉아있던 과거의 자신이 떠올랐다. 나 역시 멋있어 보이는 브랜드 용어를 나열했던가. 영어 단어를 적절히 섞어가며 전문성을 어필했던가. 상대편의 면접관이 이해하지 못할수록 더 좋다고 생각했을까. 

 

“온라인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라고 생각해요?”

 

모든 면접자에게 물어보려 준비한 질문이었다.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운 질문이라서 선택한 것만은 아니다. 호진도 궁금했다. 젊은 친구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밖에서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에 몸 담고 있는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알고 싶어서였다. 

 

“고객 리뷰입니다”

 

오호라, 반가운 답이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시각은 아니었지만, 호진도 중요하다고 여기는 단어가 나왔다. 나도 아직 감이 죽진 않았구만이라는 자기 위안에 흐뭇해졌다. 예전의 나라면 어떻게 답했을까.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흔히 생각하지 못할 ‘신박한 답’을 일부러 했던 것 같기도 했다. 그 면접에서 통과했던가. 지금의 호진이라면 면접관이 동의할 수 있는 안전한 답을, 나아가 그가 좋아할 답이 무엇일까를 더 고민했을 듯 했다. 자신의 생각보다 남이 원하는 답을.

 

두 번째 면접자 B는 이미 전 직장을 퇴사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굳이 그렇게 리스크를 떠않을 필요가 있을까.

 

“제 나름의 소신입니다. 이직을 고려하면서 현재 직장에서 일하는 것은 떳떳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일에 집중하기 어렵고, 주변 사람들에게 안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걸 멋지다고 해야하나, 지나친 자신감이라고 해야 하나. 호진은 판단하기 어려웠다. B의 인상이 강해 보이는게, 말투에서 자신감을 넘어선 날카로움이 묻어나는게 마냥 좋아보이진 않았다. 모든 질문에 또박또박 하이톤으로 눈을 마주치며 답하는 그녀의 모습은 호진에게 호감보다 부담으로 다가왔다. 같이 일 하다가 의견이 안 맞으면 어떻게 될까. 내가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과거의 호진은 지원자로써 전문성과 패기를 어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면접관의 위치에서 보니 어쩌면 편안한 인상을 기본으로, 거기에 역량이 더해지는 것이 더 낫겠구나, 라고 바뀌었다.

 

‘아니, 왜 이직하려고 하지? 왜 우리 회사를 오려고 하지?’

 

마지막 면접자 C의 이력서를 보고 호진이 처음 든 생각이었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경력을 보면 누구나 그러지 않았을까. 지원 동기에 대한 그의 답이 궁금했다. 

 

지금 회사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경험도 많다. 페이스북이나 구글 미국 본사와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고 한 선배는 말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사실 돈을 생각하면 이직하기는 쉽지 않다. 마치 마약과도 같다. 

 

C의 답은 충분히 거슬릴 수 있는 말들인데, 호진은 이상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겸손하게 말하는 태도 때문인가. 면접자의 얼굴이 호감형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면접자의 회사명에서 나오는 어떤 아우라가 호진을 사로잡았기 때문인가. 한없이 너그러워지는 마음에 호진은 흐뭇한 미소까지 지어 보인다. 

 

“하지만 10년 정도 지나고 나니, 제가 주도적으로 무엇을 한다는 성취감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하나하나 시스템으로 움직이다 보니, 업무 속도가 빠르지 않습니다. 최근에 개인적인 호의로 선배의 스타트업 마케팅 일을 돕고 있는데, 바로 효과가 나오는 것을 경험해 보고 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회사는 시스템은 부실할지라도 자기 주도적으로 일하는 문화는 확실하다. 의사결정은 팀장인 내가 하면 되고, 바로 실행하면 된다. 어느새 호진이 면접자에게 ‘세일즈하기’ 시작했다. C를 가지고 싶었을까. 전 면접자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썼고, 호진이 한 말도 더 많았다.

또 만나자는 인사를 마지막에 건넨 이도 C가 유일했다.

 

호진은 4명의 지원자 중 두 명을 추천했다. 인사팀 담당자는 하지만 이 두명은 급여를 맞추기가 쉽지 않을거라고 했다. 헤드헌터한테도 우리는 못 맞춘다고 이미 전했다며, 하지만 지원자들에게서 연봉보다는 일과 직무가 중요하다는 답이 왔기에 면접을 진행했다고 했다. 

 

그럴리가. 거짓말이라는걸 호진은 알고 있다. 돈을 포기하면서까지 옮길 회사는 그가 알기엔 없었다. 채용이 결정된 후 네고할 요령이겠지. 면접도 경험이라고 생각하면 우선 통과하는 것이 우선이니까. 나도 그랬었으니. 어쨌든 그들의 젊음을 잠시나마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직까지 미래를 고를 수 있고, 고민할 수 있는 존재들과 조우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기분전환이 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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