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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세 번 읊조리면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안심될 때가 있어
나를 향한 네 눈길에 더 이상 아무 감정도 없음을 알아채는 것도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야
지난 십여 년의 시간이 결국 무엇도 남기지 못했음을 곱씹는 것도
난 빈 껍데기만 남아 있음을 이제야 깨닫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다짐하다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누가 무엇을 잘 못했기에 이런 걸까를 생각하다 보면 화를 누를 길 없기도 하지만
결국 이렇게 될 일이었다고,
그냥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늘 한 번 보고 조용히 입 밖으로 내뱉어 보면
크게 뚫려 있는 가슴속 구멍으로
차갑지만 시원한 바람 한 줄기 흘러들어가는 것 같기도 해
하지만
이제 곧 아무것도 아니게 될
이 공간과 물건, 냄새와 소리에 가끔은
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렸구나, 생각이 들어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중얼거려야만 겨우 무너져가는 마음을
움켜쥐고 버텨나갈 수 있는 내가 있는데
너에게는 이미 오래전부터
난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까지 미칠 때면
더없이 쓸쓸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이상 아무것도
무엇 하나 남지 않은 채로
그렇게
아무것도 아닐 시간만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린 내 앞에 길게 늘어서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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