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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팀장과의 면담을 마치고 회의실에서 나오자 오른 팔꿈치가 우두둑하는 소리와 함께 돌로 변하기 시작했다. 면담이라기보다 경고 통보에 가까운 자리였다. 우리 팀의 두 사람이 주축이 되어 팀원 모두가 단체 행동을 했다. 인원이 모자란 상황에서 충원도 없이, 팀장인 내가 강압적인 문화를 만들어 너무 힘들다는 고충이 접수됐다고 했다. 그에 대한 사실 조사 차원의 자리였다.
생각하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으며 귀에 이명이 들릴 정도로 나는 당황했다. 그때 이미 오른팔에 무언가 변화의 조짐은 있었다. 모두 내 잘못이고 내가 모자란 탓이라고 나는 말했다. 어떤 핑계도 통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이란 말로 모든 것이 정리되는 분위기인 것이다. 다행히 징계 등의 인사상 불이익 없이 구두 경고로 마무리되었지만 이 일은 내 인사 기록에 남아있을 것이다.
개인으로서의 나 자신은 여러 결함을 지니고 있음을 안다. 때문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고 또 상처받고 살아오는 것을 받아들인다. 그래도 직장에서는 부족할지언정 나름 그럭저럭해 왔다고 여겼다.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너무 깊숙한 관계를 만들지 않는 것이 균형 잡힌 회사 생활의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또 그걸 지키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난 여기서도 틀린 것인가. 나는 회사에서조차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러 왔고, 그게 이렇게 또 내 몸을 돌로 만들고 있다. 이제 내 몸에서 온기가 흐르는 곳은 오른손과 얼굴, 두 군데뿐이다.
언젠가 얼굴까지 포함해서 온몸이 돌로 변하게 되겠지. 그때 난 어떻게 될까. 인간이 아닌 어떤 다른 존재로 변하는 걸까. 신체 부위가 딱딱해졌다고 해도 신진대사에 변화가 있는 건 아니다. 아주 미세한 차이로 무게감을 느끼고 있을 뿐, 체중 변화도 거의 없다. 무엇보다 나를 제외한 어떤 사람도 내가 돌로 변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정말로 내 정신적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온전한 ‘석화 인간’이 된다는 건 내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오리라는 예감을 버릴 수 없었다. 조금씩 딱딱해져 가다가 더 이상 남아있는 곳이 없을 정도로 굳어져 버린 몸은 그 자체로 커다란 상징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게 어떤 의미일지는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팀원들을 한데 모으는 자리를 마련했다. 회사가 징계 대신 요구한 바대로, 그간의 리더십에 대한 사과와 함께 구제적인 팀 운영 개선안을 설명했다. 인사팀장은 그 자체가 ‘팀장에 대한 불신임을 공식화하는 것’이라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 또한 회사 생활의 일부일 뿐, 수치심 같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비슷한 불만이 한 번이라도 반복된다면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팀장의 책임으로 여기겠다. 그때는 이 자리를 내놓겠다는 다짐까지 마치자 차라리 마음이 개운했다.
처음에는 불편해 보였던 팀원들의 얼굴이 담담한 내 말투에 조금씩 풀려가기 시작했다. 미팅을 마쳤을 때는 개운하다는 기분이 몇 명에게서 드러나 보였다. 팀장 교체라든지 내게 일신상의 변화가 있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이제 단체 행동을 감행한 자신들에게 부정적 영향이 있을 차례일까 걱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일은 없었던 것처럼 하겠다는 내 말에 안도하는 기색을 몇몇은 비쳤다.
그 모든 하나하나의 반응이 우습고도 서글펐다. 밥벌이를 위해 여기 모여서 복작대는 사람들 사이의 일이란 게 참 부질없다는 무력감이 들었고, 돌로 된 몸이 아주 살짝 버거웠다. 지친 기분에 팀원들이 자리를 뜨고 나서 빈 회의실에 잠시 혼자 앉아 있었다. 잠시 후 그 두 명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내 앞에 서서 고개를 푹 숙였다. 회의 중에도 가장 표정이 안 좋았던 둘이었다. 이번 일을 주도한 게 자신들이라는 걸 내가 알고 있음을, 그럼에도 회사가 나를 다시 한번 재신임했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울 게 분명했다. 어쩔 줄 몰라하는 그들의 표정에 안쓰러움이 먼저 일었다. 왜 내게 직접 대화를 요청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야속함과 분노에 휩싸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힘들 만큼 내 얼굴을 대하고 이야기하기가 어려웠겠지. 너희들을 그렇게 만든 건 나였다.
“일이 이렇게 되게 한 책임은 전적으로 내게 있어. 그러니 그만 고개 들어”라고 내가 말하자 두 사람 중 일 년 선임인 권 과장은 입술을 달싹이며 무언가 말하려 하다가 말았다.
“어차피 회사에서 알게 된 인연이 영원하지 않은데, 조금 더 여러분 배려하고 나 자신을 내려놓을게. 그동안 힘들게 해서 미안해. 그리고 약속하는데, 이 일로 두 사람에 대한 어떤 편견이나 나쁜 감정 없이 앞으로도 공정하게 대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진심이었다. 여기서 더 일을 키워봐야 누구에게도 좋을 것 없다. 그저 이렇게 주어진 배역대로 회사라는 무대에 올라 연기를 하다가 조명이 꺼지면 역할을 마치면 될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이마에서부터 시작된 거칠고 껄끄러운 느낌이 눈가를 거쳐 콧등으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이대로 얼굴 전체를 덮어버릴 기세는 입가에 이르러서 갑자기 끝났다. 고속으로 달리던 자동차가 급정거를 한 듯한 순식간의 멈춤이었다. 돌로 변한 광대뼈를 문지르다 조금 내려온 손가락에 반 뼘 정도 면적으로 남은 인간의 입술과 턱이 만져졌다. 이로써 나는 얼굴 일부를 제외한 모든 신체가 벽돌이 되었다. 앞으로 한 번 정도가 남았겠지. 어떤 일을 겪으면, 어떤 상처를 마음에 입으면 완전히 돌로 변하게 될까.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조금은 기대가 되기도 했다.
이후 반 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크고 작은 사건이 있었고 그때마다 감정의 흔들림이 있었다. 하지만 예의 그 유리가 깨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는 마음에 울리지 않았다. 남은 얼굴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나는 완성되기 직전 단 한 번의 손길만 남아있는, 하지만 작가의 관심에서 멀어진 조각상이 된 기분이었다.
철커덕하는 소리가 연달아 고요한 극장에 나지막이 울렸다. 명절 연휴 첫날, 한적한 조조 상영관에 어울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멀티플렉스가 아닌 독립 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시네마테크여서 관객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쇠가 맞물리는 듯한 그 소리는 내 쪽으로 가까워지다가 오른 편에서 멈췄다. 좌석 두 개 넘어 자리에 누군가 자리를 잡고 앉을 때 철컹, 하고 쇳소리가 났다. 그쪽을 힐끗 쳐다봤을 때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얼굴에 철 가면을 뒤집어쓴 듯한 사람이 있었다. 철로 만들어진 투구 뒤쪽으로 긴 머리카락이 나와있는 모습과 치마를 입은 것으로 보아 여자임을 알 수 있었다. 치마 아래 나와 있는 두 다리 모두 은색 빛을 띤 쇠로 되어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고정되어 있는 내 시선을 의식하지 못한 듯 정면의 어두운 스크린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은 광고 상영 없이 정확한 시간에 영화를 시작한다. 곧 극장이 어두워지고 읽을 수 없는 동유럽의 어느 나라 언어로 된 타이틀이 스크린에 비쳤다. 평이 좋아 꽤나 기대했던 영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계속 오른쪽의 여자에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코스프레는 아닐 것이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저런 차림으로 다닐 리 만무하다. 생각해 볼수록 나와 비슷한 형편의 인물이 아닐까,라는 가설에 다다랐다. 돌와 철이라는 차이일 뿐. 이런 일을 겪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닐 수도 있다. 영화가 종반부로 가면서 그 가설은 그녀가 나와 같다면 좋겠다는 강한 소망으로 변하고 있었다. 누군가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니. 어떤 일을 겪었길래 이렇게 된 것인지, 언제부터 이렇게 생활하고 있는지를 이야기를 꼭 나눠봐야만 했다.
엔딩 크래딧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상영관은 어두운 상태였다. 나는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때를 기다린 후 따라가 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말을 걸어 이야기를 나눌 작정이었다. 불이 켜진 후 그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역시 철커덩하는 소리가 발걸음의 흔적을 남기듯 이어졌다. 삼 미터 정도 간격을 두고 뒤따라 걸었다. 호리호리한 체형에 키는 168 센티미터 전후로 보였다. 헤어진 아내와 비슷한 느낌으로 보아 그 정도일 것이다. 발걸음은 철갑을 두른 것 같지 않게 경쾌했고 보폭도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치마 아래 종아리 모양도 쇠의 두께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금속 광택을 제외하고는 보통 여자와 다르지 않았다. 하긴 나 역시 돌로 변한 부분이 딱딱해졌을 뿐 돌의 부피 때문에 곤란하진 않으니 비슷한 경우일 것이다.
그녀는 극장에서 나와 인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계속 걸어갔다. 번화가 초입이라 지나치는 사람이 꽤 있었음에도 아무도 그녀에게 시선을 두지 않았다. 철로 감싸인 그녀의 모습은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게 분명했다. 이로써 그녀와 내가 같은 처지라는 게 더 사무치게 다가왔다. 마치 비밀스러운 표식처럼, 비슷한 증상을 지닌 사람들에게만 보여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모습 또한 그녀의 눈에 마찬가지 일 텐데. 아니다. 아직 내 모습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는 긴 팔 셔츠와 긴 바지를 입고 있다. 그리고 얼굴하고 손을 제대로 그녀 앞에 내보인 적이 없다.
대형 서점 입구에 다다르자 인파에 휩싸여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서점 안으로 들어간 그녀와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간격이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이 손을 잡은 부모와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 사이를 헤치고 그녀의 모습을 찾았으나 이미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후였다. 그녀가 바로 밖으로 나가지 않았길 바라며 몇 번이고 이곳을 돌아다니며 찾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면서 해외 소설 서고 사이로 들어갈 때였다. 누군가 내 뒤에서 등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먼, 총부리를 들이미는 듯한 사나움이 담겨 있었다.
“아까 극장에서부터 날 따라왔죠? 경찰 부르기 전에 그만하세요.”
“아니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라 저는.”
바로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이미 나를 눈치채고 있었고 여기로 유인한 것이다.
“그쪽 사정이 뭐든 당장…”
날카롭게 날 쏘아보던 그녀의 시선이 몸을 돌려 자신과 마주한 내 얼굴에 꽂혔다. 그러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제야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돌로 덮여있는 내 얼굴이.
동그랗게 커진 그녀의 오른쪽 눈과 함께, 놀라서 붉게 물든 이마와 뺨의 일부분이 보였다. 얼굴의 나머지 부분은 모두 철 가면에 가린 채였다. 마치 아이언맨의 마스크가 전투 중에 일부분 파손된 모습처럼 가면의 일부만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었다.
“그쪽이 내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나도 당신을 알아봤습니다. 아까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꼭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어요. 같은 처지의 사람이 있으리라곤 생각 못 했으니까요.”
나는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는 돌이군요.”
방금 전과는 다른 감정이, 그리움 혹은 반가움 같은 것이 그녀의 눈동자에 어리기 시작했다. 곧 그 감정들은 한 줄기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마스크의 철판 위에 방울 되어 맺힌 눈물이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이번에는,이라고 그녀가 분명히 말했다. 내가 놀랄 차례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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