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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입구 맞은편의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주 앉았지만 둘 중 아무도 아직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재킷을 벗자 반소매 셔츠 밖으로 얇은 금속 재질의 타이즈를 입은 듯한 팔이 나왔다. 팔뚝부터 손가락까지 모두 미끈한 철에 덮여 있었다. 생활하기에는 나보다 편하지 않을까. 내 경우는 돌의 양감이 조금이지만 항상 느껴진다. 움직임도 그전보다 아주 약간 둔해진 기분이다.

이런 생각을 할 때였다. 테이블 위에 양 팔꿈치를 대고 느슨하게 깍지를 낀 내 손등에 그녀의 손가락이 닿았다. 예고 없이 팔을 뻗어 몇 번을 가볍게 문지르듯 손가락으로 내 손등을 만졌다. 순간 느껴진 것은 서늘함이었다. 그녀의 손가락에서 전해오는 온도는 얼음 같은 차가움보다는 더운 날 집에 와서 냉장고를 열었을 때 나오는 청량한 공기에 가까웠다. 내가 돌로 변하면서 촉감에 변화가 있듯 그녀는 체온을 잃었던 거다.

“이런 느낌이구나. 돌이 된 사람은.

그녀가 감탄하듯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자신의 행동을 깨닫고는 미안해요,라며 얼굴을 붉히고 재빠르게 손을 다시 가져갔다.

“나 같은 사람 만난 거, 처음이 아니죠?”라고 단도직입적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아니에요. 그쪽은 제가 처음이겠죠.

“네.

“그럼 잘 모르겠네요. 우리가 이렇게 만난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일이 일어나요?

“맞아요. 이렇게 만난 게 우연은 아닐 거예요. 만날 때가 되었으니 우리를 만나게끔 만든 거죠. 아니, 만남이라기보단 승계,라고 하는 게 맞을까.

“만나게 만들어요, 누가요?

“글쎄요. 그건 모르겠네요. 하지만 저도 그렇게 들었어요. 당신과 같은 처지였을 때.

 

그녀가 찾아낸 건 온몸에 진흙을 뒤집어쓴 사람이었다. 중년의 여자였을 거라고 했다. 눈에 보이는 외모와 말투로 성별과 나이를 가늠할 수 있을 뿐, 이름과 직업 등 그 어떤 것도 물어보지 않고 또 알려주지 않는 것이 전해 내려오는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내가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할 때, 지금 그쪽처럼, ‘몸이 조금씩 변해왔죠라면서 바로 묻더라고요. 마음의 상처를 입을 때마다 변해가는 것도, 그게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까지 이미 알고 있었고. 왜냐하면 그 아줌마 자신도 똑같이 겪었다면서.

“그렇다면 우리 둘만이 아니라는 거네요. 멀쩡하던 몸이 무엇으로 변하는가, 그 차이만 있군요.

“맞아요. 자기는 온 몸이 나무토막으로 된 아저씨를 만났다고 하더라고요. 통통한 몸매의 피노키오가 앞에 있는 것 같았대요. 코가 비쭉 튀어나와 있지도 않고 몸이 알록달록하지도 않았지만.

 

그녀는 진흙 아줌마가 피노키오 아저씨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리고 다시 철가면을 쓴 자신에게 이어진 이야기를 벽돌 인간인 내게 전해주기 시작했다.

 

처음엔 너무 무서웠어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왼쪽 종아리가 통째로 쇠로 변했으니까요. 엄마한테 울면서 보여줬더니 멀쩡한 다리 가지고 왜 그러느냐고 핀잔만 들었죠. 그때 남자 친구랑 헤어지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가 어떻게 된 줄 알았어요. 그 자식이 바람피우다 걸려서 굉장히 지저분하게 깨졌거든요. 바로 병원에 가진 않았어요. 며칠 지나고 마음을 가라앉히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웬걸요. 그다음에는 팔, 가슴까지 조금씩 몸이 금속으로 변해갔어요.

 

여기까지는 나와 거의 판박이였다. 나는 그녀에게 마음속에서 유리가 깨지는 것 같은 균열음을 들었냐고 물었다.

 

맞아요. 뭔가 부서지고 깨지는 느낌 말하는 거죠? 그건 진흙 아줌마도 똑같았대요. 내 안에서 무엇인가 중요한 것이 훼손되었다는 기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망가졌다는 느낌이 들 때면 몸이 변했다고요. 그리고 나서는 다른 걸로 변한 딱 그만큼만 마음이 단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는 것도 비슷했어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조금 과장하면 구원받은 기분이 들었어요.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다 상처를 입고 살고 있구나. 다만 우리는 상처에 조금 더 예민할 뿐이라고 아줌마가 웃으며 말해줬어요. 다만 그 차이일 뿐이라고. 너무 걱정하면서 살 필요 없다고.

 

진흙이 된 아주머니와는 어떻게 만났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중요한 비밀을 이제부터 알려주겠다는 것처럼.

 

이 만남에서 항상, 먼저 발견하는 건 뒤를 잇는사람이에요. 몸이 변할 마지막 한 조각만 남아있는 때를 맞이한 사람이죠. 그때 마트에서 그 아줌마를 먼저 찾아낸 것도 나였어요. 난 얼굴만 빼고 몸 전체가 쇠로 변해 있었고, 그 아줌마는 이마부터 눈가까지만 피부로 남아 있었어요. 어렸을 때 찰흙으로 빚었던 인형처럼 짙은 갈색으로 된 아줌마를 마트 안에 있던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어요. 여름이어서 팔다리가 다 드러내 있었는데도 말이죠. 카트를 움직이는 것도 잊은 채 우뚝 멈춰서 있는 내게 주변 사람들이 뭐라 하기 시작했고, 그제야 아줌마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어요. 내 팔과 다리를 보고는 애틋한 눈빛으로 내게 다가왔어요. 그러고는 바로 내 손을 잡고 매장 구석으로 데리고 갔죠. 아줌마가 내게 처음 한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이번에는 당신이군요. 기다렸어요”라고 하더군요. 눈에 눈물까지 맺혀 있었어요.

 

진흙 아줌마가 피노키오 아저씨에게 들은 이야기는 마치 여러 개의 피스가 서 있는 도미노가 차례대로 쓰러지는 것처럼, 신체 변화를 겪은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에게 이어지는 운명의 사슬이었다. 자신의 신체가 모두 변하기 직전에 얼굴만 사람으로 남아있는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때와 장소는 알 수 없지만 그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만나게 되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이 불가사의에 대해 다음 사람에게 알려주어야 하고, 다음번에 자신의 차례가 왔을 때는 그다음 사람에게 같은 이야기를 해준다는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그게 끝을 맞이할 수 있는 조건이다. 누군가는 졸업이라고 했고, 언젠가는 구원으로 불리기도 했다. 어찌 됐건 그 만남이 끝난 후 온몸이 변한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어떤 변화냐는 내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만큼은 전달되어서는 안되고, 언어로 전해질 수도 없는 일이라고,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 겪어야 만 알 수 있는 일이라고. 나와 헤어지고 나면 곧 자기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릴 거라고.

 

무섭냐고요? 긴장되는 건 맞지만 지금 조금씩 몸이 떨리는 게 공포 때문 만은 아니에요. 약간의 기대도 있다고나 할까. 지금까지 몸이 조금씩 쇠로 변해온 것의 마지막이잖아요. 어떤 의미가 있었겠죠.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어떤 목적이 있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너무 하잖아요. 그동안의 혼란과, 막막함과,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던 쓸쓸함에 아무 의미가 없다면 너무 가혹하잖아요. 이 변화의 끝에 무엇이 찾아올지, 난 그걸 알고 싶어요.

 

그녀는 이 말을 끝으로 내게 싱긋 웃어 보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행운을 빌어요. 당신에게도, 내게도.

그리고 다음에 당신을 찾아올 그 누군가에게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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