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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출근길에 고기 굽는 냄새가 풍겨온다. 이른 아침이라 식욕을 자극하기는커녕 기름진 내음에 인상이 찌푸러진다. 버스 정류장 근처에 24시간 고깃집이 있다. 건물 앞 꽤 넓은 공간에 포장마차처럼 커다란 차양을 올린 채 둥그런 드럼통 모양의 식탁을 열 개 남짓 늘어놓고 장사를 하는 집이다. 퇴근할 때 길 건너편 정류장에 내려서 보면 저녁 손님으로 꽤나 북적이곤 했다. 장사도 그만하면 잘 되는 듯한데 적당히 쉬면서 할 것이지. 종일 가게를 열면 운영비나 뽑을 수 있을까. 아침에는 자리도 거의 비어 있는데.
회사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거기 있는 사람들을 힐끔거리곤 했다. 도대체 누가 이 시간에 고기를, 거기다 술까지 곁들이면서 먹고 있는 걸까. 직업을 있는 사람들인가. 밤부터 마시기 시작 한 거면 술이 얼마나 세기에 지금까지 버티는 걸까 등을 생각하면서.
고주망태가 되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젊은 남녀들은 정류장에까지 들릴 만큼 큰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섞어가며 낄낄거리곤 했다. 앉은 자리에서 담배까지 피우기도 했는데, 가게 주인은 말릴 생각이 없는 듯했다. 나도 저 나이 때는 저랬던 적이 있었지 싶어 헛웃음도 나왔지만 눈살을 찌푸리는 건 나 혼자뿐은 아니었다. 옆에 있던 한 나이 지긋한 노인은 쯧, 하고 혀를 찼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구름에 해가 가려서인지 고깃집 천막 위에 걸린 전등 불빛이 유독 환했다. 비계가 타는 듯한 누린내 대신 매콤하고 구수한 향이 비릿한 빗물 냄새 사이에 섞여 흐르고 있었다. 김치 찌개 냄새였다. 가게 안을 들여다봤다. 둥그렇게 자리를 잡고 앉아있을 무리를 예상했지만 천막 아래 테이블들은 텅 비어 있었다. 직원들이 아침 식사를 하고 있나 싶어 시선을 옮기다가 입구 쪽으로 등을 돌리고 홀로 앉아 있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일행이 있는데 잠시 자리를 비운 건 아닌 듯 버스를 기다리며 틈틈이 그쪽을 바라보는 동안 맞은편 자리는 계속 비어 있었다. 소주 한 병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지만 그를 바라보는 오 분 남짓 동안 병에 손을 대지 않았다.
간간이 그 남자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항상 혼자였고 고기를 굽는 대신 단출한 찌개와 소주 한 병이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어떤 음식을 파는지 있는지 궁금해 식당 입구까지 걸어가 메뉴판을 본 적이 있다. 삼겹살, 목살과 냉면, 청국장, 김치찌개 등 고깃집의 흔한 메뉴였다.
아들 중학교 때문에 근처에서 학군이 좋다는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일 년. 아직 낯선 동네였다. 저녁에 술 한잔 기울일 친구는 없었고 그렇다고 아무 데나 들어가 호기롭게 혼술 할 성격도 못 되었다. 가끔 술 생각이 나면 편의점에 들러 캔 맥주와 간단한 안줏거리를 사서 식탁에 앉아 혼자 마셨다.
그래서였을까. 이른 아침 혼자 소주잔을 기울이는 그의 등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모두가 바쁘게 일터로 향하는 이 시간에 식사와 반주를 하는 걸까. 밤새워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나. 평범한 사람이 고단한 하루 일을 마치고 저녁에 술 한잔 걸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걸까. 그 남자는 늘 식당 입구에 등지고 앉아 있어 얼굴을 본 적은 없었다.
더 이른 시간에 출근하고 막차 시간이 가까워서야 퇴근하는 날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래야만 할 회사 분위기였다.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소문이 돈 지 반 년 만에 회사의 주인이 바뀌었다. 건축물에 들어가는 유리를 만드는 업종이라 불경기의 타격을 직격으로 맞았다. 개인 판매 영업망 없이 몇몇 중견 건설사와의 탄탄한 관계가 있어 신규 아파트 현장에 대량 납품을 하는 걸로 꾸려오는 살림이었는데 그중 가장 큰 업체가 부도를 맞은 여파를 이겨내지 못했다.
동종 업계 선두 기업 중 한 곳이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실제 원하는 것은 공장 시설과 대형 거래처의 승계뿐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총무 및 경영지원을 담당하는 나 같은 관리직은 고용 승계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어찌 됐건 팔리는 입장에서는 챙겨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인수 기업의 담당자와 미팅이 계속됐고 그들이 요구하는 숫자와 자료를 만들어 내야 했다. 내심 마음 한구석에 지금 잘 보여두면 어떻게 자리보전이라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진 건 비단 나뿐 아니었다.
아침 반주하는 남자를 보지 못한 지 한 달이 넘었다. 그는 변함없이 이 삼일에 한 번씩 늘 같은 자리에 있을지 모른다. 버스 정류장에 가지 않은 건, 출근을 그만둔 건 나였다.
두 달 전 회사의 매각 계약 도장이 찍혔다. 그리고 삼 주 정도의 시간 후 큰 규모의 인사 발령이 나왔다. 거기에 내 이름이 들어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경영지원을 담당하다 보면 인사이동 소식을 먼저 듣기 마련이지만 이번에는 새 주인이 된 회사의 인사 담당 임원과의 면담에서 미리 언질을 받았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정도 조건으로 희망퇴직하는 게 나을 텐데요. 아니면 지방 영업소 발령받고 거기서 일개 직원으로 버티겠습니까? 그때 그만둔다고 해도 이 혜택은 이미 사라지고 없습니다.”
더 이상 생각해 볼 것도 없는 일방적인 통보이자 협박이었다. 그나마 희망퇴직 대상자에 포함된 것만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본사의 내 나이 또래 중 몇 명은 그마저도 건너 뛰고 연고도 없는 곳에 말단 영업직으로 발령 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영업 실적이 가능할 리 없고 얼마 안 가 저성과자로 낙인찍힐 것이 뻔했다. 몇 푼이라도 챙겨줄 때 그걸 거부할 용기가 내겐 없었다.
회사를 그만 두고도 매일 아침 출근 준비는 빼놓지 않았다. 아직 가족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똑같이 옷을 옷을 차려입고 늘 가지고 다니는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회사로 가는 노선을 타던 버스 정류장 대신 반대편 쪽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회사와 관련된 것에서는 되도록 멀리 떨어지고 싶었다. 그렇다고 IMF 사태 때 실직자들처럼 등산을 가거나 공원을 배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출근 시간 붐비는 지하철을 무작정 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피곤에 지친 얼굴로 눈을 감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는 사람이나 초점 없는 눈으로 쉴 새 없이 엄지손가락을 놀려 가며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들이 부러워 보였다. 싫든 좋든 저들은 가야 할 자리가 있는 사람들이구나. 그렇게 구경하다 보면 몇몇 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쑥 빠져 나갔다. 앉을 여유가 생길 때는 열차가 도심을 빠져나간 후였다. 그렇게 전철 안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 틈에 점심시간이 되었다.
공단이 모여 있는 동네의 역 근처에는 꽤 저렴한 가격의 한식뷔페를 찾을 수 있었다. 우연치 않게 내렸던 그 지역이 한동안 나의 목적지가 되었다. 배를 채우고 나서는 부근 PC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취업 포털에서 경력직 자리를 알아보고 이력서를 작성하기도 하고, 오랜만에 스타크래프트를 했다. 그렇게 보내다 보니 어느새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력서를 넣은 곳에서 오는 연락은 기대보다 적었다. 그마저 한 군데는 다단계 판매를 취업으로 가장한 사기였다. 곧 다시 일을 찾을 거란 기대가 옅어지면서 불안과 무기력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양껏 가져와 먹던 7천 원짜리 한식뷔페는 먹고 난 뒤 속이 더부룩해지는 것 같았고, PC방에서 계산할 때마다 보는 아르바이트생의 웃는 눈빛이 조금씩 다른 의미로 보였다. 내가 갈 곳 없는 백수라는 걸 그 동네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고, 속으로 비웃는 듯했다.
오늘은 공단 근처의 역에서 내리질 않고 지나쳤다. 전철이 움직이면서 내는 덜컹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앉아있다 보니 어느새 열차는 순환 노선을 한 바퀴 돌고 있었다. 집 근처이긴 했으나 아직은 귀가할 수 없는 시간이다. 가능성은 낮지만 아내나 아들을 마주칠까 싶어 세 정거장 정도 더 가서 내렸다. 처음 와 본 곳이었다. 출입구 밖으로 나오니 왼쪽으로 시장 길목이 보였다. 부침개며 갖가지 김치, 젓갈 등 음식이 늘어선 좌판 사이를 천천히 걷는 사이에 배가 고파졌다. 점심시간이 꽤 지난 후였다. 마침 백반집이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이 몇 개 없는 그 식당에는 시장에서 일하다가 식사를 하는 듯한 사람들이 몇 있었고, 모두 혼자서 밥을 먹고 있었다. 들어가 자리를 잡고 김치찌개 일 인분을 시켰다. 맞은편의 사람이 막걸리를 반주 삼아 마시는 걸 보고는 어차피 다시 올 일이 없을 곳이라는 생각에 나도 소주 한 병을 내어 달라고 했다. 왁자지껄한 시장 밖을 바라보며 비계가 탱글하며 씹히는 돼지고기와 빨간 찌개 국물을 안주 삼아 술 몇 잔을 마셨다. 허기졌던 탓인지 취기가 빨리 돌기 시작했다.
지금쯤 회사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 환송 회식 때 무슨 표정을 지을지 몰라 하던 팀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쫓겨나는 팀장도 안쓰러웠겠지만 팀이 없어지고 졸지에 다른 회사로 노예처럼 팔려가는 자신의 불안한 처지도 막막하긴 마찬가지였겠지. 인수인계 받겠다는 자리에서 꼿꼿하게 위압적인 자세를 유지하던 인수 기업의 팀장 얼굴이 떠오르자 얼굴 위에 험악한 불기운이 덮어오는 듯했다. 술잔을 한 번에 입에 털어놓고 거친 소리와 함께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동안 애써 묻어 놓았던 서운함과 분노가 수많은 새들이 한 번에 날아오르기 시작한 것처럼 가슴속에서 푸드덕거렸다.
이제 와서 이게 무슨 소용인가. 나이를 먹어가며 몇 번의 실수를 통해 배운 것 중 하나는 혼자만의 감정 과잉은 나 자신의 낭비로 이어질 뿐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몇 번 숨을 크게 들이키며 나쁜 생각을 잊으려 애썼다. 다시 묵묵히 밥을 뜨고 김치를 씹고 술을 반 잔씩 마셨다. 조금 전의 마음속 격랑이 조금씩 수그러들고 있었다. 그리고 불현듯 출근길 고깃집 천막 아래 그 남자의 등이 기억났다. 아침마다 보이던 그의 뒷모습은 지금의 나와 다르지 않았다.
국민연금 회사 가입이 해제되었다는 내용의 우편물을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다. 어제 아파트 1층에 있는 우편함을 내가 먼저 살펴보았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가족에게 들킬 뻔했다. 이제는 더 이상 숨기기 무리라는 생각이 들고 있던 차였다. 언제 어떤 표정을 짓고 설명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앞으로 먹고 살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는 여전히 물음표였다. 무엇보다 이 소식을 받아들일 아내의 표정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에 검은 연기가 가득한 기분이었다.
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을 던져가며 걷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출근길 버스 정류장 앞이었다. 습관은 무서웠다. 무의식적으로 저절로 여기로 와 버린 것이다. 겨울로 접어들며 해가 짧아져서인지 아직 사위는 어두웠고 아침 공기가 서늘했다. 고깃집 천막에 매달린 전등이 말을 건네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여길 바라보며 버스를 기다릴 이유 따윈 이제 없잖아. 이제 그만 이쪽으로 와보는 게 어때. 나는 발걸음을 떼서 천막 안으로 향했다.
조용했다. 차도에서 지나는 자동차 소리만 나직이 들려왔다. 가게는 생각보다 넓었다. 천막 아래 테이블에 더해 건물 안쪽에도 자리가 있었다. 한쪽 벽에 커다란 TV가 달려 있었지만 꺼진 상태였다. 잠시 서서 가게를 둘러본 후 그 남자가 늘 있던 곳으로 기억되는 자리에 앉았다. 그와는 달리 출입문 쪽을 바라보는 위치를 잡았다. 천막 위 철제 봉에 철사로 이어져 매달린 메뉴판을 찬찬히 읽으며 한동안 기다려도 물병을 들고 찾아오는 직원은 없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플라스틱 티슈함 옆에 붙은 진동벨이 눈에 들어왔다. 그걸 누르자 짧은 전자 벨 소리가 가게 안에 울려펴졌다. 생각보다 큰 소리에 잘못이라도 한 듯 깜짝 놀랐다. 조금 지나자 삼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주방에서 나왔다. 아마도 가게 주인인 듯 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밖에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있느라 손님 오신 줄 몰랐네요. 식사하러 오신 거죠? 뭘로 드릴까요?”라고 물어왔고 김치찌개와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그가 주방으로 돌아가자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아침 시간에는 혼자서 가게를 보고 있는 듯했다.
멍하니 밖으로 시선을 두고 있자니 종종걸음으로 바삐 직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행렬이 이어졌다. 버스 정류장 부근에는 버스가 오는 쪽과 스마트폰으로 번갈아 고개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빼곡했다. 그때는 내가 반대로 밖에서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지. 지금은 그곳 무리 중 아무도 이 가게 안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옷차림과 체구만으로도 뒷모습만 보아 온 그 남자임을 알 수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내가 있는 곳으로 걸어오던 그는 자리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잠시 멈칫한 후 내 오른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이번에도 출입문을 등지고 앉았기 때문에 공교롭게 나와 서로 대각선 방향으로 마주 보고 앉은 모양새가 됐다. 잠시 후 주인이 내가 주문한 김치찌개와 소주 병을 가져와 내려놓고는 그에게 말을 건넸다.
“오늘은 조금 늦게 오셨네요. 늘 드시던 거 내올까요?”
손님이라기보다 잘 알고 지내온 사람에게 건네는 듯한 친근한 말투였다.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내 앞에 놓인 음식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였다. 수저로 국물을 떠서 입에 넣었는데도 맛을 느끼기 어려웠다. 소주 뚜껑을 비틀어 열면서도 그의 시선에 계속 마음이 불편했다. 왜 자기 자리를 엄한 사람이 차지하고 있나라는 짜증이 눈빛에 섞여 있는 듯했다.
그런데 여기 들어온 것부터가 그를 만나고 싶어서 아니었나. 회사에 다니던 때부터 지켜보던 그의 뒷모습이, 앞으로 구부정하게 내려간 그의 등이 언제부터인가 계속 떠올랐기 때문에 오늘 충동적으로 여기에 앉아 있는 게 아니었나. 그 생각에 짧게 숨을 들이켠 후 그의 시선을 마주하며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건넸다. 예상치 못한 내 인사에 그는 당황한 기색으로 눈을 내리깔며 네,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곧 그가 주문한 것들도 나왔다. 나와 똑같았다. 대각선 방향으로 같은 모양의 상차림이 거울에 비친 듯 대칭되어 있는 것이 우스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잔을 들어 말했다.
“같이 한 잔 하시겠어요?”
서로의 잔을 살짝 위아래로 흔드는 걸로 건배를 대신했다. 그게 다였다. 대화가 끊어진 채 어색한 침묵이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서로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속으로 끙끙대는 이 상황이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 두 개를 붙여놓은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오며 가며 자주 봤습니다. 여기서 식사하시는 거.”
내가 먼저 던진 말에 처음에 그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뭐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고요. 저기 앞에서 이 시간에 버스를 탔거든요. 그러다가 우연히 혼자 식사하시는 걸 보게 되었고, 계속 신경이 쓰이더군요.”
난 과장된 손짓으로 천막 밖 정류장을 가리키다가, 남자 쪽으로 옮겼다가는 두 손을 가슴 언저리에 공손히 얹으며 변명하듯 더듬더듬 말했다.
“그랬군요. 그런데 왜 오늘은 버스를 안 타시고 대신 여기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나를 보고 그가 옅은 미소를 보냈다.
“뭐 사연이 있으신가 보네요.”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흰머리가 소복하게 내려앉았고 느낌상 나보다 세 네 살 정도 많은, 어림잡아 쉰은 넘어 보였다. 짙은 회색 점퍼에 품이 조금 커 보이는 갈색 면바지까지 수수해 보이면서도 단정한 옷차림이었다. 호리호리한 체구에 맞게 양쪽 볼이 홀쭉 들어가 있었지만 날카로운 인상은 아니었다. 큰 눈가에 짙은 주름이 몇 가닥 잡혀 있는 것이 꽤나 고생하며 살아온 듯한 느낌을 줬다. 아침마다 술을 먹는, 알코올 중독 조짐이 있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회사에서 쫓겨났습니다. 아직 집에는 알리지 못했고요. 이렇게 출근하는 척 연기한 것도 꽤 되었네요.”
그렇게 내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는지 놀랄 정도로 입 밖으로 나온 말이 그다음 이어질 말을 불러왔다.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던, 내 마음속에서만 떠돌던 하소연이 이제야 세상으로 나갈 출구를 찾았다. 구체적인 단어와 문장이 되어 끝도 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었다. 가끔 찌개 국물을 떠먹고 소주잔을 삼분의 일 정도 비우기도 했지만 분명 내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허어,라며 탄식하는 모습이 위로처럼 고마워서 말을 멈출 수 없었는지 모르겠다.
“안주 다 식었겠네. 자, 여기 내 술 한잔 받아요.”
이 가게에 오게 된 이유를 끝으로 이야기가 끝났다. 내 목소리를 키보드 자판 삼아 열심히 문장을 만들어내던 작가가 마지막 마침표를 찍어 버린 듯 내 입은 아무 소리 없이 작게 열린 채였다. 얕게 숨을 헐떡이고 있는 내게 남자가 소주 병을 들어 잔을 채워주었다. 목구멍을 넘어가는 술기운이 상쾌했다. 목에 끼어있던 텁텁한 무엇인가가 사라져 내려갔다.
남자는 가게 주인을 불러 내 찌개를 데워달라고 한 후 주문을 추가했다.
“오늘은 왠지 한 병 더 마셔야 할 것 같은데. 그거 만들어 줄 수 있나?”
“오랜만에 찾으시네요. 그럼요. 바로 해 드릴게요.”
주인이 싱긋 웃은 뒤 주방으로 향했다.
“그거라뇨?”
“아, 여기 주인장하고 예전부터 알던 사이인데요. 메뉴판에는 없지만 내가 가끔 부탁하면 만들어주는 게 있어요.”
내 술 병도 거의 비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기엔 그가 보여준 호의가 고마웠다. 나도 조금 더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어차피 갈 곳도, 할 일도 없다.
“제 사연만 실컷 늘어놓아서 죄송합니다. 시간을 너무 뺏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시간은 많아요. 괜찮아요.”
“그런데 여기 사장님하고는 어떻게 아시는 사이인가요?”
그에 대해서는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이번에는 그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내 제자였어요. 고등학생 때 우리 반 아이였죠.”
“제자요? 그럼 선생님이신가요?”
“선생이었죠. 예전에.”
아직 정년 퇴임할 나이로는 보이지 않았다. 쉽게 꺼내기 힘든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이상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때 식당 주인이 다가왔다. 옛 제자라는 말을 들어서인지 새로 만든 음식을 내려놓는 몸짓이 조심스러워 보였다.
“그래. 이거지. 오랜만에 맛보는구나.”
“참, 별것도 아닌데. 좋아해 주시니 좋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그렇네요. 하하.”
갓 만들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계란말이였다. 두툼하게 잘린 노랗고 하얀 몸통 사이로 작은 알갱이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간장하고 후추로 간을 한 삼겹살을 잘게 썰어서 한 번 볶고 계란 풀은 거에 넣어서 만든 겁니다. 맛이 좋아요. 메뉴에 올려서 팔아 보라고 해도 말을 듣질 않으니.”
“만들기 귀찮아요. 손도 많이 가고. 선생님한테만 특별히 해 드리는 겁니다.”
제자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이 녀석이 학교 다닐 때 어찌나 말썽을 피웠는지, 담임이라고 파출소에 불려간 게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지금 이렇게 사람 구실하고 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죠.”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식당 사장님이잖아요. 잘 되셨네요.”
내가 주인을 보며 건넨 말을 선생님이 대신 받았다.
“어차피 대학 갈 성적도 안 됐고, 졸업하고 바로 군대부터 다녀오라고 내가 떠밀다시피 했거든요. 거기서 정신 차리고 나오라고. 아 그랬더니 그 말은 또 잘 듣더군요. 나중에 들었는데 어떻게 하다가 취사병 특기를 받고, 요리하는 게 적성에 맞는 걸 알게 되었다나요.”
“그러게요. 간부 식당에 차출되어서 밥 짓는 특기로 부사관으로 말뚝까지 박았으니까요. 하하.”
하나 드셔보시라는 선생님의 말에 가장 끝의 것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었다. 고기 알갱이가 보드라운 계란에 감긴 채 씹히며 짭짤하고 고소한 향이 입안에 퍼졌다. 절로 소주잔에 손이 갔다.
세 개 째 계란말이를 집어 들 때 입구 쪽에서 철컥하는 소리가 난다 싶더니 주인이 문을 닫고는 가게의 전등을 우리 주변만 빼고 모두 꺼버렸다.
“두 분 하실 이야기가 더 있는 것 같은데, 저도 껴도 될까요? 저녁 장사 때까지 좀 쉬려고 합니다. 아주머니들 출근하려면 한참 남기도 했으니까요. 잠시만 계세요. 먹을 것 더 내어올게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아침 술자리가 갑자기 커졌다. 주인은 선생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는 제육볶음과 자기 술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가 “이쪽으로 오세요”라고 내게 말했고 세 사람이 둥그렇게 모여 앉게 되었다.
“아까 오며 가며 얼핏 들었습니다. 얼마 전에 회사를 그만두셨다고요. 뭐 안 좋은 일에 엮이신 건 아니고요?”
“특별히 그런 건 아닙니다. 나이도 됐고, 쓸모가 없으니 자연스레 밀려난 거라 받아들여야죠.”
“그래도 마음속 불덩어리가 계속 타들어가고 있을 텐데…”
주인이 자신의 말꼬리를 흐리며 선생님의 눈치를 살폈다. 마침 제육볶음으로 상추쌈을 만들어 입에 넣고 있던 선생님의 눈가에 웃음기 어린 주름이 깊게 패었다. 맛있다는 표정으로 입을 우물거린 후 그가 잔을 들어 건배를 제안하며 말했다.
“왜? 여기 이 사람도 나처럼 맨날 아침마다 여기 와서 오만상 찌푸리며 술 마실까 봐 걱정되어서 그러냐?”
제자가 술을 들이켠 후 입술을 잘근대며 말했다.
“그런 건 아니에요. 그래도 선생님 생각난 건 맞습니다. 너무 억울하게 그만두셨잖아요. 그게 요즘 시끄러운 학부모 교사 갑질이랑 뭐가 달라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물음을 내가 던지기도 전에 주인이 선생님의 일을 대신 이야기해 주었다. 그의 모교는 그가 다니던 때에는 남학교였는데 오 년 전부터 남녀공학으로 바뀌었다. 동네 학군이 좋아지면서 다른 동네에서 여학생들의 유입이 많아진 때문이었다. 거친 사내아이들만 대해오던 선생님들은 여학생들이 포함된 교실 분위기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특히 이십 년 가까이 남학생들과 부대끼며 지내온 중년 교사들은 더 어려움을 겪었는데, 눈앞의 선생님도 그중 하나였다.
“부사관 때 휴가 나와서 학교에 들른 적이 있었어요. 얼굴 뵈려고.”
주인의 말에 선생님이 피식 웃었다.
“학교 다닐 때는 툭하면 땡땡이치고 말썽만 피우던 녀석들이, 졸업하면 오히려 모범생 애들보다 더 자주 찾아오더라니까요. 미운 정이 무섭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죠.”
겸연쩍게 뒤통수를 긁으며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생각할 때 주인의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몇 년 만에 너무 늙으신 거예요. 머리도 눈에 띄게 희끗희끗 해져 있고, 안 그래도 마르신 분이 살이 더 빠져서 볼이 홀쭉 들어가 있고요. 근데 그때는 그냥 웃으면서 별거 아니라고, 요즘 잠을 잘 못 자서 그렇다고 하셔서 저도 그런 줄로만 알았죠.”
한 여학생과의 일에 얽혀 선생님이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건너 들었다고 했다. 여자아이들 중에도 문제를 일으키는 문제아가 몇몇 있었다. 학생부 담당이지만 윽박지르는 호랑이 선생님보다는 부드럽게 다가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편이었던 그는 여학생들에게도 그렇게 대했다. 자기 딸도 몇 년 지나면 이 나이 또래가 될 거라는 생각에 남자아이들을 대할 때보다 더 애틋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문제는 미성년자 출입이 안되는 술집에 갔다가 번번이 걸리던 한 아이와의 사이에 생겼다. 술집이나 파출소에서 연락을 받고 데려오는 길에 커피숍에 들러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밥을 사주는 모습을 본 학생들 사이에 말이 돌더니 순식간에 추접한 소문으로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설상가상으로 그 여학생의 부모가 자기 딸이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선생님을 지목하며 본격적인 악의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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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로 찾아와 제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며 어떤 작자냐고 하더군요. 선생의 탈을 쓰고 어린 여자애를 욕보이고 있다면서 고소하겠다고, 선생 옷 벗게 만들고 콩밥 먹이겠다고 하는데 헛웃음부터 나왔습니다. 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부모님의 과도한 기대와 억압 때문에 엇나갔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자기들이 옳다고 생각하면 그걸로 끝이었어요. 다른 정황을 들으려 하지도 않더군요. 아이도 주눅이 들어서인지 부모 앞에서 사실을 이야기하지 못했고요.”
거짓된 내용이 인터넷 기사로까지 다뤄졌다. 학생 아버지 인맥을 통해 기자를 섭외했다고 했다. 사실이 아니었으나 자극적으로 윤색된 내용에 비난 댓글이 폭주했다. 교육지원청에서 조사가 나왔고, 그는 어느새 파렴치한 중년 변태 선생으로 낙인찍혀 버렸다. 수업 중에 그를 대하는 아이들의 눈빛이 예전과 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십여 년 만에 처음으로 교단에 서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 녀석이 학교에 찾아왔을 때가 가장 힘들었던 고비였어요. 뭘 먹기만 하면 토하고, 밤에도 잠들지 못해 힘들었죠. 그런데 잠깐 옛 제자를 만났던 그날, 밤에 잠이 잘 오는 거예요. 그제야 받아들이게 된 거죠. 내가 하고 싶었던 교사 역할은 이제 여기까지구나,라는 포기라고 할까. 머릿속에는 그 생각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는데, 마음으로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던 거였구나,라고 깨닫게 되었어요. 만약 여기 주인장을 그때 안 만났더라면 더 위험한 단계로 넘어갔겠구나 싶어요. 돌이켜보면 지금도 아찔합니다.”
며칠 후 선생님은 가족들의 양해를 구한 후 교직을 그만두었다.
“안주들도 좀 드시지. 맛이 없었나요?”
주인이 식은 제육볶음 접시를 데워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한 마음에 아니라고 손을 휘젓는 내게 그는 “농담입니다. 이야기가 가장 맜있는 술자리도 있으니까요”라며 웃었다.
“그렇게 그만두고 몇 달 동안은 지금 그쪽하고 비슷한 상황이었죠. 집에 있기는 답답하고, 출근 시간에 맞춰 나오기는 했지만 마땅히 갈 데도 없고. 하릴없이 여기저기 걷는 걸로 시간을 흘려가며 살았습니다.”
“그럼 여기서 아침마다 식사하시던 걸 제가 봤을 때가…”
“가장 안 좋을 때였죠. 이 친구가 식당 하는 걸 알고 있어서 와 봤는데, 이상하게 여기 음식이 입에 맞더라고요. 학교를 그만두고도 뭘 먹으면 소화가 잘 안되었거든요. 그렇다고 저녁에 오자니 손님도 많은데 혼자 테이블 차지하기도 미안하고. 그래서 아침 한 끼만이라도 제대로 먹자고 여길 찾은 거죠.”
배가 부르면 그제야 졸음이 찾아왔다. 조금 걸으며 소화를 시킨 후 동네 찜질방으로 가 한숨 자고 나오는 것이 선생님의 일과가 되었다.
“찜질방이 아무래도 바닥도 딱딱하고 잠자리가 편치 않으니, 술 한잔 마시면 잠이 잘 올까 싶어 마시기 시작했죠.”
주인이 다시 데운 제육볶음과 함께 냄비 째로 담긴 우동을 내어왔다.
“그렇게 식사라도 다시 하셔서 다행이었지만, 아침마다 술 드시는 게 걱정되더라고요. 그렇게 삼 주 정도 지났을 때였나요. 선생님이 귀인을 만나셨죠. 하하.”
“맞아. 내겐 귀인들이었지.”
선생님도 슬쩍 웃으며 말했다.
그날도 혼자서 아침 술을 한 잔씩 마시고 있을 때였다. 여섯 명의 남자들이 들어와 선생님 테이블 하나 건너에 자리를 잡았다. 나이는 그보다 조금 많거나 비슷해 보였는데 모자를 오래 쓰고 있었는지 모두 머리가 눌린 모습이었다. 삼겹살을 시키고 왁자지껄하게 술잔을 나누는 게 딱 일 끝내고 회식하는 모양새였다. 주인도 익숙한 듯 그들이 툭툭 건네는 농담을 받아넘겼다. 일행 중 한 명이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에 혼자 앉아 있는 선생님에게 합석을 권했다. 조금 지나 주인이 가게 문을 닫고 합류했고 그날도 오늘처럼 그들만의 술자리가 계속되었다.
“아이고. 조금 더 이 악물고 버티지 그랬어요. 연금도 못 타고.”
“그러다가 사람 골병들어. 그 지옥을 어떻게 이겨내나. 자네도 해봤으면서 그래.”
초면인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안타까움에 혀를 차는 것이 선생님은 고마웠다.
“그런데 회식 자리로 보이는데, 이 시간에 퇴근하는 일을 하시나 보죠?”
“아. 우리 경비일 합니다. 저기 새로 들어온 아파트 단지에.”
선생에게 같이 마시자고 권했던 남자의 말에 이어 체구와 목소리가 가장 큰 사람이 너스레를 떨었다.
“밤새워 일하고 일주일에 한 번 이렇게 회식하는 게 우리 사는 낙이요. 하하.”
“그렇군요. 다들 사이가 좋아 보이십니다.”
“나쁘진 않지. 그래도 우리 나름 서열이 있고 군기가 있어요.”
“그럼, 여기 상무님이 제일 막내이지.”
큰 체구의 남자가 거의 말이 없이 조용히 술잔만 기울이던 사람을 가리키며 웃었다.
“그것도 대기업에서 잘나가시던 상무님이죠.”
“장 부장님은 아닌가?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건설회사 출신이잖아.”
“그럼, 그럼. 우리도 한때 화려했던 시절이 있다고. 하하.”
장 부장의 호탕한 너털웃음에 모두 따라 웃었다.
“솔직히 놀랐죠. 다들 그럴싸한 명함을 가지고 다니던 사람들이었으니. 하긴 경비하시는 분들이 젊을 때부터 그 일을 해왔을 리는 없잖아요? 지금껏 청년 경비를 본 적이 없으니까. 무언가 다른 일을 열심히, 꽤나 잘 해오던 사람들이 나이 들어 택하는, 어찌 보면 네가 낫니, 내가 낫나를 재며 아등바등 살던 사람들이 결국은 다 같은 언저리에서 만난다는 거지요.”
주인이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바로 선생님의 면접 자리로 이어졌죠. 하하.”
“쾌활하던 장 부장의 환송 회식이기도 했던 거예요, 그날이. 고향으로 내려가서 농사짓겠다고 그만둔다 하더군요. 자연스럽게 나보고 한 번 해보지 않겠냐는 말이 나왔어요. 물론 아파트 생활지원센터에서 면접이나 그런 절차는 있지만 선생 출신이니 신원도 확실하겠다, 자기들이 추천하면 어렵지 않을 거라더군요.”
선생님이 점퍼의 옷깃을 열어 그 안의 경비복을 보여주며 웃었다.
“그리고 나도 그들과 함께 이렇게 밤에 일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이제 낮에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요.”
햇살이 거리에 가득했다. 술기운 때문인지 눈이 부시고 살짝 어지러웠다. 주인은 잠시 눈을 붙였다가 저녁 장사를 준비한다고 했고 선생님은 집으로 간다며 마을버스를 타고 떠났다. 나도 그가 했던 대로 찜질방 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나른한 잠 기운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눈을 붙이고 일어나면 머리가 맑아져 있겠지. 정성 들여 씻고 미용실에 들러 머리도 다듬어야겠다. 저녁에 통닭이라도 사서 집에 가면 좋겠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이번에는 아내에게 해야지. 아직 아무것도 끝난 건 없다고. 해가 떠 있을 때 일하고 저녁에 술 마시며 사는 길도 있지만, 모두가 잘 때 일하고 난 후 아침에 술 마시는 삶도 있다고. 뭐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그럴 수 있다고 믿기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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