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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오른쪽 팔꿈치가 돌로 변했다. 어딘가 딱딱해질 것 같은 예감이 요 며칠 들었는데 자고 일어났더니 역시 그렇게 됐다. 이제 온전한 피부로 남은 곳은 얼굴과 가슴 언저리, 그리고 팔꿈치를 제외한 오른팔뿐이다. 다른 곳은 모조리 돌이 되었다. 공사판에서 볼 수 있는 벽돌과 같은 회색이다. 만지면 꺼끌꺼끌하고 움직일 때는 예전보다 아주 조금 묵직한 기분이 든다. 그나마 움직임이 불편하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영화에 나오는 슈퍼 히어로 중에도 돌로 변하는 캐릭터가 몇 있는 걸로 아는데 그들도 나와 비슷하게 느낄까.

몸이 돌로 변할 것 같을 때가 있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징조는 항상 같다. 마음이 딱딱해지는 경우다. 상처를 입거나, 실망을 하거나, 어떤 사람이나 일 때문에 대책 없이 슬퍼질 때다. 화가 나거나 누군가를 미워할 때는 변하지 않는다. 부정적 감정의 대상이 타인일 때는 아닌 듯하다. 몸이 돌로 변할 때는 마음의 종착지가 나여야 한다. 온전히 내가 끌어안고, 마음이 부서질 것 같은 상태가 되어야 한다. 마음이 무너지는 걸 대신해서 몸이 딱딱하게 변한 후에 안아주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돌로 변한 곳은 왼쪽 종아리였다. 3년 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내가 이혼 이야기를 꺼냈을 때다. 난데없는 통보였다. 아니 내가 조짐을 읽지 못한 거였을 수도. 결혼한 지 10년 째였다. 아이를 가지고자 시험관까지 시도해도 성공하지 못해 포기한 지 오래였지만 그래도 둘 사이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쁘진 않았으나 좋지도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몇 년 전부터 각방 생활을 했기에 원룸 두 개에서 각자 살고 주방과 욕실만 공유하는 사이와 다를 것이 없었다. 가끔 있는 처가와 본가의 모임을 제외하고는 같이 식탁에 앉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건조한 관계지만 그래도 남들도 다 이렇게 사는 거 아닌가 생각했던 건 내 착각이었다. 아내는 “이제 당신과 같은 공간에 있을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며칠이고 이혼 요청을 만류하던 내게 결국 그녀는 “솔직히 당신과 함께 여생을 보낸다는 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라고 했다. 

 

그때가 처음이었다. 찡하는 소리가 분명히 내 귀에 생생하게 들렸다. 마음속 귀퉁이 어딘가에 유리창이 쩍하고 갈라지는 듯한 균열이 느껴졌고, 날카로운 소음이 퍼졌다. 그게 마음이 딱딱해지는 패턴이라는 걸 그 뒤에 같은 경험을 몇 번 반복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미 짐을 챙겨서 나가버린 아내가 식탁 위에 올려놓은 이혼 청구서에 사인하고 의자에서 일어나려 할 때 순간 비틀거렸다. 왼쪽 다리에 이질감이 들었다. 종아리가 회색의 거친 질감으로 변해 있었다. 돌로 변해버린 것이다. 

허리를 굽혀 손바닥으로 그 부분을 쓱 훑어보았다. 거친 질감이 피부에 분명히 새겨지고 있을 때 눈물 한 방울이 가만히 뺨을 타고 내려왔다. 동시에 여전히 금이 간 채 마음에 자리 잡고 있던 커다란 유리창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균열과 깨어짐이 치유된 것이다. 대신해 돌로 변한 내 몸의 일부를 대가로.

 

일상생활이 어렵지는 않았다. 돌로 변했다는 건 내 눈에만 보이고, 나만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그걸 몰라서 마음고생 깨나 했다. 돌로 변한 다리야 긴 바지로 가릴 수 있었지만 왼쪽 손이 딱딱해졌을 때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때는 여름이었다.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고 출근했을 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걸 알고는 놀란 건 오히려 나였다. 손을 보여주며 이상해 보이지 않냐고 동료에게 물었을 때 그는 피식 웃으며 “비싼 핸드크림이라도 발랐냐”라고 했다. 그래봐야 중년 손의 쭈글쭈글함이 어디 가냐면서. 

어쩌면 정신에 문제가 온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몸은 그대로인데, 정신착란으로 인해 내가 돌이 되어간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착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생생한 거친 돌의 질감이 몸 군데군데에 자리 잡고 있었다. 무게까지는 아니었다. 몸을 움직이는 데는 별다른 힘이 들지 않았으니까. 그게 정신병이라는 의심을 더 짙게 만들었다.

 

이혼으로 인한 스트레스성 지각장애. 정신과 의사가 세 차례 진료를 통해 내린 진단이었다. 처방된 약을 한 달 정도 꾸준히 복용하면 차도가 있을 거라고 했다. 비슷한 증상을 보인 경우가 있었냐는 내 질문에 의사는 말했다.

“흔치는 않습니다. 자신이 아예 다른 존재로 변했다는 경우는 꽤 있지만요. 고래, 사슴, 귀뚜라미 등이죠. 독수리 등 조류가 나올 경우는 위험합니다. 날 수 있다고 착각해서 투신 자살로 이어질 수 있거든요. 하지만 신체 부위가 조금씩 변해간다는 이런 경우는 처음이군요.”

약을 빼먹지 않고 먹은 지 한 달이 지나도 여전히 벽돌 같은 몸은 변하지 않았다. 정신과를 다시 찾지는 않았다. 마음이 편해졌기 때문이다. 고작 이것 때문에 자살까지 할 생각은 나지 않았다.

 

밝아졌다는 말을 가끔 듣기 시작한 것이 돌로 변해가면서 생긴 변화 중 하나였다. 금이 가고 산산이 깨진 마음을 내어주고 받은 딱딱한 몸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이혼을 시작으로 오랜 친구와의 작은 오해와 서운함에서 커진 갈등에서는 오른쪽 허벅지가, 얼마 되지도 않는 아버지 유산 때문에 하나뿐인 동생과 척을 졌을 때는 등판이 돌처럼 굳었다. 마음에 입은 상처에 따라 돌이 되어간 신체 부위는 달랐지만, 종류가 같은 감정의 흔들림이 반복될 때는 몸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더 이상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더 이상 깨어지는 유리는 내 안에 없었다. 대신 넓은 사막이 거기 있었다. 단 한 그루의 나무와 풀도, 낙타와 사람이 지난 듯한 흔적도 없는 완전한 무의 공간이 넓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가끔 바람이 불어오면 모래가 잔잔히 흔들린다. 바람의 흔적이 대지 위에 물결처럼 남지만, 그마저 곧 사라지고 다시 사막 위에는 잔잔한 호수처럼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는다. 괴로움은 바람처럼 잠시 머물다 떠났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럴 때면 딱딱해진 몸에 약간의 통증이 올라왔다. 마치 종아리나 팔꿈치가 마음을 대신해서 아파하는 것처럼. 그 편이 훨씬 덜 고통스러웠다.

 

“인원 충원은 어렵게 됐다. 윤 팀장도 알잖아. 요즘 회사가 손익 때문에 민감하다는 거. 이참에 인건비성 고정비 줄었다고 반기는 분위기야.”

“그래도 김 과장 자리가 워낙 타격이 큰데. 어떻게 안 될까요?”

“나라고 그걸 왜 모르겠어. 할 수 있는 방도는 다 써봤는데 안 된다네. 미안하다.”

임원실 문을 닫고 나오면서 돌이 된 두 다리를 움직이는 게 평소보다 버거웠다. 팀원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기대를 조금은 하고 있었는데.

 

지난달 김 과장이 퇴사 소식을 알려 왔다. 팀원이라기보다는 친동생처럼 여겨온 후배였다. 대리와 신입사원으로 처음 만나 지금껏 호흡을 맞춰온 것만 십 년도 훨씬 넘었다. 누구보다 믿고 일을 맡길 수 있었고, 그만큼의 성과를 보여줬기에 동기들 중에 진급도 가장 먼저 할 수 있도록 뒤에서 챙겨준 녀석이었다. 마음 속으로 내 후임 팀장으로 점 찍어뒀고 둘이 술이라도 한잔할 때는 그런 내색을 감추지 않았다.

“인마, 형이 언제까지 이 자리 있을 것 같아? 아니야. 언제라도 그만할 수 있어. 그때 네가 받아서 하는 거야. 알았지?”

“그런 말씀 마세요. 아니네. 형님 빨리 임원으로 영전 시켜 드리고 내가 팀장 자리 받으면 되겠구나. 하하.”

그랬던 김 과장이 갑자기 그만둔다고 통보하듯 알려왔다. 나하고는 사전에 아무런 이야기도 없이. 이 주 뒤 퇴사 일정을 안내해 온 것도 본인이 아니라 인사팀이었다.

 

김 과장의 퇴사로 입은 마음의 상처 때문에 이번에 돌이 된 것은 아니었다. 회사에서의 관계란 만나고 헤어짐의 반복일 뿐. 서운하긴 했지만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당장 충원이 어려운 상황에서 팀을 어떻게든 잘 꾸려가는 게 당장 시급한 일이었다. 게다가 연말로 접어들면서 가장 바쁜 시기였다. 

한 사람분의 공백보다 팀에 미친 영향은 컸다. 나를 포함한 팀원들 모두의 퇴근 시간이 늦어졌고, 몸이 지쳐가는 만큼 평소보다 날이 서 있는 듯한 위태로운 공기가 떠돌기 시작했다. 김 과장을 대신할 차기 후보자를 두 명 정도 선정했다. 물론 그들에게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자질 검증 겸 빠른 성장을 위해 내 나름의 훈육 방법을 그들에게 적용했다. 흔히 말하는 채찍과 당근의 적절한 조합이다. 그 방법에서 탈이 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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