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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영감님을 따라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마침 웬만한 잡지는 얼추 다 훑어본 참이었다. 정치와 국제면은 복잡한 듯 보여도 결국 매일 같은 내용이었다. 어느 쪽이 욕심을 내서 서로 싸우기 시작했고 누가 이겼다는 거였다. 사회면에는 짧지만 여러 사람의 다양한 이야기가 있었다. 다만 어떤 일이 있었다,는 건조한 소식뿐이었다. 당사자의 이름 석 자도 나오지 않는 짤막한 사고 소식. 그걸 가만히 보면서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쩌다가 이런 일을 겪었을까 상상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곤 했다. 그러다가 이런 문장을 떠올려 봤다.

 

- 5층 건물 옥상에서 투신한 3000, 떨어지던 중 나무에 걸려 극적으로 목숨 건져

 

그랬다. 00씨는 살아있지만 왼쪽 다리에 장애를 입었고 매일 도서관에 와서 특이한 영감님과 점심 먹는 걸 낙으로 삼고 있다.

 

어쩌다 보니 디자인 일을 하게 되었다. 살아오며 뭐가 되겠다, 어떤 걸 이루겠다고 원한 적은 없었다. 가라고 하니 학교에 다녔을 뿐 공부에 몰입하지 않았다. 성적은 중간 이하. 운동이든 무엇 하나도 눈에 띠지 않는 희미한 존재였다. 변변치 않은 수능 성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곳은 수도권에 있는 2년제 컴퓨터 디자인 학과였다. 그래서 거기로 갔다. 강의는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나갔지만 바로 광역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가까이 지냈던 친구 같은 건 없었다. 졸업을 하고 직원이 열 명 남짓한 디자인 회사에 취업했다. 이력서를 냈던 데 중 합격한 곳이 거기 하나였다.

 

직장은 인쇄소와 작은 규모의 디자인 업체들이 한데 모여있는 곳에 있었다. 거기서 10년 남짓 일했다. 일은 적성에 맞는 편이었다. 생각할 필요 없이 손만 움직이다 보면 시간이 가는 것이 좋았다. 높은 디자인 역량이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지하철역 출입구 앞에서 나눠주거나 신문 사이에 들어가는 전단지 원고를 만들어서 근처의 인쇄소에 넘겨주는 게 이쪽 업계에서 주로 하는 일이었다.

 

디자인 의뢰가 들어오면 사장이 이면지에 카피 문구를 쓰고 어떤 배경과 그림을 넣을지 지시를 내렸다. 끝에는 항상 “적당히 우라까이 해서 가져와”라는 말을 덧붙였다. 다른 걸 베껴오라는 뜻이다. 나를 포함한 디자이너 4명은 우리가 전에 만든 것, 다른 업체에서 디자인한 것, 혹은 오래된 일본 디자인 도록에서 우라까이할 것을 찾아서 그대로 베끼기 시작한다. 세 개 정도 시안이 완성되면 사장의 손에서 그중 하나가 버려지고, 의뢰처에 두 개를 보내 마지막 하나가 선택된다. 둘 다 싫다고 하면 사장이 탈락시킨 걸 대신 보낸다. 한창 일이 몰리는 연말이나 명절 전후에는 하루에 세 네 건의 디자인을 쳐내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하루 한 건 정도 만들다 보면 퇴근 시간이 된다.

 

손이 빠르고 말귀를 잘 알아듣는다며 사장은 나를 좋아했다. 디자인에 쓸데없는 군더더기가 없다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생각 없이 그대로 베껴낸 게 다였기 때문에 그 칭찬이 늘 어색했다. 그는 예전에는 어느 큰 광고 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다고 했다. 지금은 환갑을 앞둔 머리가 희끗한 동네 아저씨로 밖에 안 보이지만 가끔 써내는 절묘한 카피를 보면 그 말이 진짜인가 싶을 때도 있었다. 디자인은 항상 베끼지만 문구만큼은 사장이 고심해서 내어놓곤 했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마지막 직업윤리라고 했다.

 

월급은 많지도 부족하지도 않았다. 혼자 산지 오래였고 술 담배를 하지도, 돈 들어가는 취미도 없어 월급은 거의 그대로 통장에 쌓여가고 있었다. 직장에서 전철로 30분 정도 거리에 집이 있다. 지금 도서관을 다니고 있는 이 동네다. 내 집은 아니지만 전세나 월세도 아니다. 부모님 명의의 빌라에서 나는 혼자 살고 있다. 오 년 전에 외국에 살고 있는 누나네 조카를 보러 간다고 하고서는 돌아오시지 않았다. 거기서 두 분이 지낼 집을 하나 장만한 모양이었다.

무색무취인 그림자 같은 나와 달리 누나는 어렸을 때부터 언제나 돋보이는 사람이었다. 국비 장학생으로 유학 간 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개업한 병원이 꽤 잘 된다고 했다. 현지인 남편도 의사였고 덕분에 부모님은 거기서 풍족하고 여유로운 노년을 즐기고 있었다.

 

단조롭지만 그렇다고 건조한 일상도 아니었다. 퇴근 후 집에 오면 밥을 해먹고 드라마를 보거나 게임을 하다가 잤다. 배달 음식이나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우다가 요리를 해 봤는데 이 역시 아무 생각 없이 레시피대로 따라 하면 된다는 점이 좋았다. 그렇다고 복잡한 요리까지 시도하지는 않았다.

주말이라고 평일과 다르지 않았다. 친구를 사귀지 않았고 이성에 대한 관심도, 성욕도 거의 없었다. 내 나름의 평온한 일상을 누리는 것으로 만족했다.

 

소박한 평온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건 사장이 회사를 매각하면서부터였다.

“이제 그만 쉬어야겠어. 카피도 마음처럼 잘 안 써지고.

사장은 위로금이라며 손수 직원들의 이름을 쓴 봉투를 나눠주며 말했다. 웃고 있었지만 아쉬운 기색이 그의 얼굴에 가득했다.

이삼 년 전부터 종이 전단 의뢰가 눈에 띄게 줄어 근처 인쇄소와 디자인 업체가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있었다. 최근에는 어떤 돈 많은 회사가 상황이 어려워진 곳들을 사 모으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덩치를 키워 업계를 독차지하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음식 배달 중계 스타트업에서 만든 자회사라는 말도 있었다. 사장도 지난달에 인수 제안을 받고는 계속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그와 함께 처음부터 회사를 일궈온 실장도 이번 기회에 같이 은퇴하겠다고 했다.

 

나를 포함한 직원 일곱 명은 길 건너 새로 지은 5층짜리 건물로 옮겨갔다. 거기에는 일하다가 몇 번 마주친 적 있는 얼굴들이 꽤 있었다. 다들 작은 디자인 업체에서 일하다가 여기로 온,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었다.

베껴서 디자인하는 건 여기서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훔쳐 오는 대상이 달랐다. 남의 것이 아니었다. 배달 앱 회사가 종이 전단 업체들을 한데 모아놓은 이유는 온라인으로 배달 주문을 받는 업주들에게 ‘무료 서비스’로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온라인 홍보가 주력이지만, 원하면 종이 전단도 함께 제작해 주겠다는 끼워팔기 같은 거였다. 때문에 앱에 올려진 음식점의 홍보 배너와 안내 문구를 크기와 구도만 조정해서 A4 종이 크기로 바꾸는 게 내가 할 일이었다. 어렵지 않았고 지금껏 해 왔던 방식과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손이 빨랐다. 하지만 칭찬해 주는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나를 포함해 여러 업체에서 옮겨온 30여 명은 디자인 실장의 관리를 받았다. 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남자로 ‘난 잘나가는 디자이너야’라는 분위기가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옆 머리는 삭발 수준으로 짧게 치고 긴 머리를 당기듯 뒤로 넘겨 꽁지머리를 묶었다. 투명한 재질의 두꺼운 뿔테안경을 끼고 다니면서 하루는 클럽으로 바로 가도 될 옷차림을, 또 다른 날은 영화에서나 보던 이탈리아 마피아를 연상시키는 정장 세트를 몸에 두르고 오기도 했다. 어떤 복장이든 꽤 많은 돈과 오랜 시간을 들여 치장했음이 분명했다.

 

음식점 메뉴에 따라 인력을 나누고 하루치 작업량을 할당시킨 후 최종 점검을 하는 게 실장의 일이었다. 나는 중식 담당이었다. 아침 전체 미팅에서 한 번, 저녁에 완성된 디자인을 제출할 때 또 한 번. 그렇게 하루에 두 번은 그의 얼굴을 마주했다. 대한지 며칠 되지 않아 이 일을 아주 하찮게 생각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뭐, 됐어요. 그걸로 라이브러리에 업로드하세요.

그는 가져간 디자인을 슬쩍 본 후 늘 이렇게 말했다. 가끔은 눈썹 사이에 주름이 잡히기도 했고, 웃음 같기도 한 미묘한 표정을 지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수정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만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의견을 더할 가치가 없기 때문에, 빨리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그런 일 처리 방식을 오히려 좋아했다. 실장보다 나이가 많은 한 고참은 “젊은 친구가 시원시원하니 좋네. 예전 꼰대 사장은 별것도 아닌 걸로 꼬치꼬치 따져가며 귀찮게 했는데”라며 정시 퇴근을 즐겼다. 몇 명은 나한테 쉬엄쉬엄하라고, 그렇게 혼자서 속도를 내버리면 자기가 일 안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냐며 농담처럼 훈수를 두기도 했다.

 

기계가 사람처럼 디자인하는 시대가 왔다고 했다. 어느 날 실장이 인공 지능을 디자인 업무에 도입하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이제는 포토샵만 다룰 줄 알아서는 안되고, 모두가 간단한 코딩과 AI 프로그램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앞으로 두 달 안에 일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꿀 예정이니 각자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하고 자격증까지 따야 하는 게 회사의 방침이라는 공고가 나왔다.

영어로 된 프로그램을 배우는 건 다들 고만고만한 학력에 평생 그림만 만지던 사람들에게 마치 평생 운동을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것만큼이나 벅찬 일이었다.

이건 대놓고 그만두라는 거라면서 제시된 두 달이 지나기 전에 그만두는 사람이 잇달아 나왔다. 회사가 인력을 줄이기 위해 세운 계획이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나는 어떻게 어떻게 해서 겨우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시험에 떨어진 사람들은 실장과 별도 면담을 하는 것 같더니 며칠 지나지 않아 책상이 비워졌다. 그렇게 디자인 인력은 나를 포함해 10명 정도로 절반 넘게 줄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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