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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 명 정도 드나들 크기의 쪽문을 열었다. 옆에는 자동차도 넉넉히 지날 법한 커다란 철문이 있었는데 양쪽으로 열리는 문 중간에 굵은 쇠사슬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널따란 공터가 나왔다. 한눈에 고물상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쌓여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녹슨 고철 덩어리 몇 개가 한구석에 널브러져 있고 폐지가 수북이 쌓인 리어카 한 대가 보였지만 고무 타이어의 바람이 모두 빠진 채였다. 들고나는 게 한동안 없었던 티가 역력했다.
출입문 정면으로 단층짜리 건물 두 개가 나란히 있었다. 더 커다란 쪽 현관문 앞에 슬리퍼와 장화가 놓여 있었고 창문은 뿌옇게 먼지가 낀 채였다. 영감님은 오른쪽의 슬레이트 지붕이 얹어진 작은 건물 쪽으로 걸어갔다. 그 앞에는 널찍한 평상이 놓여 있었다. 내게 여기 앉아 있으라고 말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문짝이 없는 출입구 사이로 냉장고와 싱크대가 보였다.
그가 내어온 밥공기처럼 생긴 사발 두 개와 막걸리 한 병, 과자 봉지를 가운데 두고 마주하고 앉았다. 등에 내리쬐는 오후의 가을 햇살이 따듯했다. 동네 외곽 한적한 곳이라 축제의 시끌벅적함은 없었다. 날아다니는 잠자리 소리만 가끔 들려왔다.
“여기서 혼자 지내시나요? 직원은 따로 없고요?”
“예전에는 있었지. 나 말고 한 명 더. 지금은 무기한 휴업 중이야. 안 그럼 매일 도서관에 나갈 수가 있나.”
그는 사발을 한 번에 비우고 예전 일을 떠올리는 듯 그윽한 눈길로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도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지. 드나드는 사람도 많았고. 돈은 안 돼도 시간은 잘 갔다네.”
“언제부터 쉬신 거예요?”
“일 년 정도 되었나. 그만하고 싶더라고. 땅은 내 소유니, 집처럼 생각하며 살고 있는 거지.”
“신문사에서 일한 적도 있다고 하셨죠. 그런데 왜 고물상을?”
너무 많이 물어보고 있나 싶을 때였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주나 한잔할까”라고 말했다.
영감님이 주방에서 안줏거리를 만드는 동안 나는 빈 고물상을 한 바퀴 돌았다. 흙으로 된 마당 군데군데 잡초가 올라와 있어 한동안 인적이 없었다는 말이 실감 났다. 그가 부르는 소리에 다시 평상으로 가니 이번에는 두부가 올려진 김치찌개가 냄비에서 보글거리며 끓고 있었다. 그가 소주 병의 빨간 뚜껑을 열고 나서는 내 앞에 놓인 잔에 따라주었다. 몇 잔 주고받다 보니 금세 한 병이 비워졌다. 부엌 안에 술이 더 있으니 가져와 달라고 그가 말했다. 싱크대 옆 찬장 아래에 소주 병이 반 정도 채워져 있는 박스가 있었다.
두 병을 가져온 내게 “이제 우리는 술 친구”라며 그가 빙긋 웃었다. 자주 마시지는 않지만 나는 술이 약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기분 좋게 취해 버렸다. 영감님이 자기 사연을 말해주기 전에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예전에 했던 일과 직장을 그만두게 된 일, 그리고 사고를 당한 일을 하나씩 풀어내는 사이 빈 병이 늘어갔다.
자살 미수 이야기에도 그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가끔 미간에 주름이 잡힌 것 외에는 조용하게 술잔을 비우며 내 얘기에 집중했다. 어느새 해가 저물기 시작해 저녁 공기가 썰렁하게 느껴졌다. 늦었으니 이만 정리하자고 그가 말했다. 그리고 내일도 축제 때문에 어수선할 테니 도서관 말고 여기로 바로 오라고 했다. 자기 이야기를 해 줄 차례인 것 같다며.
어제 얻어먹기만 한 것 같아서 가는 길에 순대와 만두를 넉넉하게 샀다. 치킨 같은 건 왠지 영감님이 안 좋아할 것 같아 고민하다가 고른 게 분식이었다. 중간에 슈퍼에 들러 막걸리도 세 병 샀다. 양손 가득 비닐봉지를 들고 철문 앞에 도착하니 정오 즈음이었다. 쪽문이 조금 열려 있어서 들어가며 저 왔습니다,라고 소리 내어 말했다. 영감님은 작업용 목장갑을 끼고 리어카 위로 무언가를 싣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타이어에 바람이 빵빵하게 차 있었고 그 위에는 겹겹이 쌓인 신문을 묶은 비닐 다발이 보였다. 그런 뭉치가 열 개는 넘었다.
“지금쯤 올 거 같았네. 좋은 냄새가 나는구먼.”
그는 음식을 보고 마침 시장했는데 잘 됐다면서 이마의 땀을 닦으며 웃었다. 내가 막걸리 병을 꺼냈을 때는 얼굴에 자글자글한 주름 꽃이 피었다.
“저 신문은 다 뭡니까?”
리어카를 가득 채운 다발을 보면서 물었다.
“폐지야. 버려질 걸 뻔히 알면서 찍어낸 신문이지. 묶인 다발을 풀지도 못한 채 고물상으로 직행하는. 어떻게 보면 가여운 것들이야.”
“아깝게 왜 그러죠.”
“장사 때문이지. 요즘 종이 신문 읽는 사람 본 적 있나?”
“아니요. 영감님 빼고는 없네요.”
“발행부수가 신문사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건데. 우리는 독자가 이렇게나 많다,라는 식으로. 한때는 하루 200백만 부를 찍었던 적도 있었지. 지금은 글쎄. 50만 부나 되려나. 부수가 줄어들면 신문에 싣는 광고 단가부터 여러 가지로 곤란해지니 다들 쉬쉬하는 거지. 100만 부는 유지해야 어디 가서 우리 죽지 않았다고 할 수 있거든. 그러니 그만큼 찍어서 발행 부수를 유지하고, 나머지 절반은 아무도 모르게 바로 폐지로 처리하는 게 업계의 오랜 관행이라네.”
신문사에서 일한 적 있다고 하더니 과연 그렇구나 싶었다. 나는 잔을 한 번에 비우고 그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제 영감님 차례입니다.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겠다고 하셨죠. 신문사 이야기도 좋고 뭐든 괜찮으니 해 주세요.”
그는 신문 뭉치를 바라보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앞에 놓인 빈 잔에 막걸리를 채우며 기다렸다.
그럼 신문사 이야기부터 시작해 볼까. 말했다시피 난 기자는 아니었네. 좋은 대학 나온 엘리트가 아니고서는 감히 생각도 못 할 자리이지. 서울대 출신이 아니고서는 편집국장 같은 제일 높은 위치는 꿈도 못 꾼다 하더군. 난 겨우 고등학교만 졸업했으니. 내가 일한 곳은 윤전소였어. 생소하려나? 신문을 찍어내는 인쇄소라고 하면 이해가 쉽겠지.
서울 올림픽이 있던 해였을 거야. 난 운이 좋았어. 그때만 해도 신문사는 참 좋은 직장이었지. 안정적이고 월급도 적은 편이 아니었고. 처음엔 이 동네 조그만 인쇄소에서 일을 시작했네. 점심 먹고 신문을 보고 있는데 사원 모집 공고가 뜬 거야. 윤전소에서 일 할 경력 사원을 모집한다고. 한 번 내보기나 하자고 지원했는데 면접을 보러 오라더군. 그때 처음 양복이란 걸 입어봤지. 사장님한테 다음 달 월급을 가불 받아 구로 공단에 가서 이월 제품을 쌓아놓은 곳에서 샀어. 떨어지면 양복 값만 날린다는 생각이 면접 볼 때도 머리에서 떠나질 않더군.
어찌 됐건 최종 3명을 뽑는 발표에 내 이름도 있었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고생하시던 어머니가 합격 소식을 듣고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가장 큰 효도를 했던 날이었을 거라네.
영감님 얼굴에 한창 좋을 때를 회상하는 듯한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 마침 사온 막걸리가 다 떨어져가고 있었다. “조금 더 사올까요?”라고 물었을 때 이미 충분히 취했다며 그가 고개를 저었다.
몸은 힘들었네. 내가 일한 곳은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조간신문이었거든. 아침 여섯시면 집에 배달되어야 하니까 새벽에 윤전소가 돌아가야 했지. 자정이 되어서야 내일 자 신문의 최종 편집이 끝났네. 낮에 기자들이 작성한 원고를 모아서 지면에 배치하고, 편집국장이 1면에 올라갈 기사와 제목을 정하면 새벽 한시에 식자 작업까지 끝난 인쇄용 조판이 우리한테 왔고. 그러니 저녁에 출근해서 꼬박 밤을 새우고 새벽에 퇴근하는 게 우리 일이었지.
인쇄되어 나오는 신문에 오류가 없는지 기자가 돌아가면서 나와 같이 보기는 하는데, 꼼꼼하게 점검하는 건 윤전소 사람들의 몫이었지. 그렇게 몇 년 하다 보니까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신문을 읽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유식해지더라고.
좋은 시절이었지. 아직 삼십 대 초반이라 새벽일 하고 동료들과 해장국 한 그릇에 소주 한 병 먹고 집에 와 잠깐 눈 붙인 후 출근해도 몸은 거뜬했어. 남들이 알아주는 직장 다니겠다. 월급 안 끊기고 나오지. 가방끈은 짧아도 신문에서 주워들은 덕에 아는 것 많다고 말 섞다 보면 대우받지. 그러다 보니 여자도 생겼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신혼살림에도 불평 한 번 없던 착한 여자였다고 했다. 열 살 정도 위인 윤전소 동료가 고향 후배의 여동생을 소개해 줬다. 첫 자리에서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몇 번 만나다 보니 속 깊고 다정한 성격에 끌렸다며 영감님은 흐릿하게 웃었다.
“마누라는 내가 처음부터 마음에 드는 눈치였는데, 무엇 때문이었냐고 나중에 물었더니 ‘서울 남자라서 그랬다’고 하더군”이라고 말할 때 그의 눈가에 주름이 깊게 잡혔다.
사귄 지 일 년 조금 지나 둘은 식을 올렸다. 지방에서 올라온 처갓집 식구들은 신문사 명의의 화환을 보고 똑똑한 사람한테 시집간다며 연신 박수를 쳤다고 했다.
두 살 터울로 남매가 태어났다. 어머니와 둘이 살던 집이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로 시끌벅적해졌고 이제야 사람 사는 것 같다며 어머니는 좋아하셨다. 첫째 아들이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아이 엄마도 일을 하기 시작했다. 똑똑한 남자한테 시집왔는데 애들도 보란 듯이 키워야 된다며 미리 대학 등록금을 벌어 놓겠다는 며느리의 결심을 시어머니는 대견하게 생각했다. 고부가 함께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둘 사이는 좋았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부러울 게 없었다. 이 소중한 행복이 계속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여기까지 말한 후 영감님이 일어나 부엌으로 들어갔다. 술을 꺼내 오려나 싶었는데 담배를 입에 물고 나와서 불을 붙였다. 하지만 라이터가 잘 켜지지 않았다. 다시 안으로 들어가 틱틱, 하는 가스레인지 소리가 난 후에 나와서 하늘을 보고 연기를 길게 뿜었다.
“담배 태우시는 거 본 적 없었는데요.”
“가끔, 아주 가끔 한 대씩 피우지.”
그는 한 가치를 다 피울 때까지 구름 몇 개가 한가로이 흘러가는 파란 하늘을 바라볼 뿐이었다. 다 피운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린 후 발로 지그시 밟아 끄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 얼마 멀지 않지. 같이 살던 집이. 불타서 다 사라져 버리긴 했지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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