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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둘이 살아온 집을 어머니가 아들 명의로 돌렸다. 그러실 필요 없다고 며느리는 만류했지만 줄 수 있는 유일한 혼수이고, 이걸 핑계로 너희들과 평생 함께 살 거라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집이 생긴 건 좋았지만 철물 공장에서 나오는 소음으로 종일 시끄럽고 쇳가루가 날리는 동네였다. 열심히 돈을 모아 학군 좋은 더 넓은 집으로 어머니 모시고 가자는 꿈으로 부부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아껴가며 살았다.

 

가족 이야기를 꺼내는 동안 영감님의 말은 자주, 그리고 오래 끊겼다. 잠시의 적막 속에서 주변의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비행기가 하늘을 가르며 날아갔고 생선을 파는 행상이 손님을 불렀다. 어디선가 아이들이 놀며 노래를 불렀다.

붕어빵 좋아하나?” 한동안 말이 없던 그가 내게 물었다.

추워지면 생각날 때가 있죠. 좋아하는 편입니다.”

겨울이 되면 말이야, 저녁에 출근할 때 아이들이 붕어빵을 사 오라며 졸라대더군. 이른 아침에 집에 와 아직 잠들어 있는 녀석들 코밑에 붕어빵을 가져다 대면 달콤한 팥소 냄새에 부스스 눈을 뜨곤 했지.”

손을 들어 그는 허공에 대고 조심스레 움직였다. 마치 거기 누군가 있다는 듯이. 그리고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도 오냐 알았다며 녀석들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고는 대문 밖으로 나섰네. 눈이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으나 하늘엔 구름 몇 자락 말고는 별이 보일 정도로 맑았지.”

 

눈이라도 펑펑 내렸더라면. 그럼 불이 번지다 말았을까. 하늘을 원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네. 옆집에서 난 불이 옮겨왔다고 하더군. 워낙 오래된 주택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는 동네라 피할 길이 없었던 거지. 전기 합선인가 그랬다고 했어. 이상하게도 그 집 사람들이 밉지는 않더라고. 우리 가족도, 그집 식구들도 모두 자던 중에 세상을 떠났네.

난 그 시간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 그저 평소처럼 인쇄된 신문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고, 어제 세상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사 내용을 머리에 집어넣었지. 쉬는 시간에는 사발면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는 담배를 피우며 동료들과 시답잖은 농담도 주고받았고.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와, 내 아이들을 낳아준 마누라 그리고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새끼들이 그 뜨거운 화마에 휩싸여 있을 때 말이야.

 

집터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어. 불은 거기 있던 걸 깨끗하게 다 앗아갔더군. 마당 뒤쪽에 김장 김치를 넣어 땅 밑에 묻어놓은 장독만 무사했지. 그걸 열어보니 뜨거운 열기에 안에서 익었는지 김치 국물에 거품이 일어나 있었어. 우스운 게 말이야. 시큼한 냄새가 올라오는 데 갑자기 배가 고파지는 거야. 그때 무너져버렸네. 내 오른손에 쥔 종이봉투 안에서 붕어빵이 으깨어져 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지. 태어나서 그렇게 오랫동안 울어 본 적이 없었네. 몸속에 있는 액체로 된 건 다 쏟아져 나오는 듯했지. 눈과 입, 코에서 마치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은 것처럼 끊임없이 물이 흘러내렸네.

 

목에 뭔가 가득 찬 듯 그의 소리가 그렁그렁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찾을 수 없었다. 편안한 얼굴로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 신문에 몰래 종이 조각을 덧붙이는 아이 같은 장난을 하는 독특한 늙은이. 오랫동안 혼자 지내온 듯한 분위기에 가족이 있었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한 번에 그들 모두를 잃었을 거라고는.

“이 고물상에서 이렇게 지내신 건 얼마나.

“글쎄. 한 이십 년 정도 됐나. 가족이 그렇게 된 게 내가 마흔다섯 살 때였고. 그리고 이삼 년은 사람 구실도 못했으니.

“그 큰일을 어떻게 이겨 내셨습니까.

“이겨냈다? 어떻게 이겨낼 수 있나. 그저 평생 품고 사는 거지.

 

회사에서 휴직을 길게 줬네. 제대로 일 할 상태도 아니었지. 장례를 어떻게 치렀는지 아직도 무엇 하나 기억이 나질 않아. 살던 집도, 세간살이라곤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고. 마누라가 생명보험 들어 놓은 게 있어서 돈이 꽤 나왔지만 내게 무슨 의미가 있었겠나. 발길 닿는 대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기 시작했지. 걷다가 지치면 잤고 배가 고프면 먹었네. 날이 포근한 밤엔 길가에서 한뎃잠을 자기도 했고. 간첩인 줄 알고 누가 신고해서 파출소에 끌려간 적도 부지기수야. 그렇게 다시 네 계절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부랑자처럼 살았네.

 

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상실감에 휩싸인 채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다시 겨울이 찾아왔다. 그는 남해안 쪽 어딘가 바다를 면한 도시에 머물고 있었다. 허름한 여인숙에서 장기 투숙을 하며 낮에는 종일 부둣가에 앉아 배가 들고 나는 풍경이나 들이쳤다 밀려가는 파도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해가 지면 방으로 돌아와 벽지가 누렇게 바랜 벽을 보며 소주를 병째 들이켰다. 그렇게 매일 자신을 죽여가고 있었다.

 

슈퍼에서 소주를 세 병 사서 나올 때 고소한 냄새가 풍겨왔다. 여인숙으로 가는 골목 초입에 세워진 포장마차에서 나오는 냄새였다. 그는 무엇에 홀린 듯 그쪽으로 걸어갔다.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눈앞이 부옇게 흐려졌다. 리어카 위쪽에 달린 작은 전구에서 나오는 불빛에 지우려 애썼던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는 고생이 많다며 그의 볼을 매만지던 어머니의 거친 손바닥이 담겨 있었다. 잠결에 코를 킁킁거리다가 아직 따듯한 붕어빵이 담겨 있는 종이봉투에 달려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바로 옆에 있는 듯 생생했다.

 

눈물이 흘러내리다 말라버린 자국이 얼굴에 흥건할 때까지 한참을 포장마차 앞에 서 있었다. 푸근한 인상의 주인 할머니가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꾸깃한 옷소매로 얼굴을 훔칠 때 주인이 봉투에 가득 담긴 붕어빵을 앞으로 내밀었다.

“무엇이 그리 서러웠길래. 그렇게 울기만 하다가는 몸 축나요. 이거라도 먹고 기운 차리세요. 기운이 있어야 울고 싶을 때 제대로 울지.

돈을 내기 위해 그가 주머니를 더듬거리자 할머니는 됐다며 손사래를 쳤다.

“곧 죽을 것 같은 그림자를 뒤집어쓴 사람이 돈은 무슨. 대신 살아요. 그래서 오늘처럼 울고 싶은 날 맘껏 울어요. 오래 울기 위해서라도 힘내서 살아 봐요.

 

붕어빵을 남긴 없이 먹은 그날을 마지막으로 방랑은 끝났다. 이발소와 목욕탕에 들렀고 새 옷을 사 입었다. 회사로 돌아와 복직을 했다. 신문사에서는 1년 간 연락이 닿지 않았던 그를 아무 말 없이 다시 받아주었다. 회사 근처 깨끗한 여관에 묵으며 불타버린 집이 있던 빈 땅을 파는 등 몇몇 일들을 처리했다.

부동산 매매 계약 때문에 뽑은 주민등록등본에 식구들 이름이 말소된 걸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맘껏 울고 싶을 때를 위해 아껴둬야 한다. 열심히 사는 게 우선이다. 가족 중 나만 남겨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들을 오래 그리워하고 계속 기억하겠다.

노력했지만 인쇄기 돌아가는 소리는 쉽게 극복하기 어려웠다. 윤전소에서 신문 용지 넘어가는 소리가 가족을 집어삼킨 화마가 타들어가는 걸로 들렸다. 몇 번이나 눈을 질끔 감은 채 가쁜 숨을 들이켜는 모습을 지켜보던 선배가 다른 일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며 괜찮은 자리가 하나 나왔다고 했다. 구독자 수가 떨어지면서 인쇄 후 바로 버리는 신문을 사들이는 고물상들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렇게 이 고물상을 인수했지. 보이는 대부분이 원래 있던 것들이고. 혼자 몸이니 그냥 여기서 일하다가 먹고 자고 했네. 부엌 같은 건 살면서 장만하긴 했지. 이 동네를 뜰까 싶을 때도 있었네만 어쩌면 여기가 좋은 조건으로 나온 것도 눈 감을 때까지 어디 가지 말고 있으라는 하늘의 뜻인가 싶더군.

 

긴 이야기를 하는 동한 그는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맘껏 울기로 한 그날을 아직 기다리고 있는 걸까. 어느덧 해가 뉘엿해지기 시작했다. 으스스한 기운이 몸에 돌았다. 이만 일어나 보겠다고 한 후 갈 채비를 하며 물었다.

“언제까지 일을 쉬실 건가요?

“늙어서 힘들어. 이제 일 안 해도 내 한 몸 건사할 정도는 여유가 있으니. 그리고 확인할 게 하나 있네.

말을 잠시 멈춘 후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툭툭 치며 영감님이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젊은 사람 앞에 두고 늙은이가 너무 말이 많았구먼. 오늘은 이 정도로 하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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