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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욱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늘 흐릿했다. 몇 장의 사진으로만 남아 있는 얼굴에서 떠올릴 수 있는 건 널찍한 어깨 위에 올라타고 봤던 동물원 기린의 모습, 여름 바닷가의 짠 바람 냄새였으나 정작 그에 대한 것은 별로 없었다. 아버지는 진욱이 초등학교 1학년 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 말로는 교사를 했으면 딱 맞았을 정도로 조용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평범한 회사원이자 세 식구의 가장이었던 그는 어느 날 지방 출장 길에 기차역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졸음운전으로 중앙선을 넘어온 트럭이 정면으로 충돌해왔다. 그와 동승한 후배 사원을 포함한 세 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 후 어머니 혼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진욱을 키웠다. 여상을 졸업한 후 바로 경리로 취업한 회사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했고, 가장의 부재 전까지 그녀의 삶은 여느 소박한 가정주부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변해 버린 환경이 그녀 안에 숨겨져 있던 어떤 본성을 이끌어 냈다. 처음에는 근처 식당에 주방 일을 나가 품삯을 벌었으나 곧 육체노동만으로는 어린 아들을 건사하기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일을 그만두고 반 년 동안 두문불출 공부에 매달렸다. 그리고 첫 응시에서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지금껏 남들 앞에 나서지 않았을 뿐 마음먹고 해보니 차분한 말투로 조근조근 설명하는 그녀의 영업력은 얼마 지나지 않아 높은 실적으로 힘을 드러냈다. 이 년 동안 급여를 받으며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 이름을 내건 부동산 중개 사무소를 열었다. 곧이어 전국에 부동산 열풍이 불어닥쳤다. 개업 1년 후에 두 가족은 아버지의 흔적이 남아 있던 작은 전셋집을 떠나 갓 지은 새 아파트, 두 배나 커진 집을 사서 이사를 갔다.

 

넓어진 집은 더 조용했다. 근처에서 가장 많은 직원을 고용한 부동산이었지만 저녁에 문을 닫을 때까지 어머니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진욱은 늘 혼자였다. 덕분에 진욱이 기억하는 한 경제적 이유로 힘든 적은 없었다. 집을 자주 비우긴 했으나 아들에게 무관심한 어머니는 아니었다. 매물을 찾는 사람이 많은 주말임에도 그녀는 출근 대신 진욱과 시간을 보냈다. 만화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갈 때도 있었고 놀이공원 나들이를 다녀오기도 했다. 생업에 집중할 수 있었던 건 그가 가만히 놔둬도 걱정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공부를 특출하게 잘 하지도, 운동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지도 않았지만 하지 말라는 행동은 안 했고 해야 할 것은 열심히 했다. 생활 기록부에는 매년 성실하고 꾸준하게 노력하는 학생이라는 평이 기재되었다.

 

일 년에 몇 번 안되었지만 어머니가 공을 들여 음식을 준비하는 날이 있었다. 아버지의 제사와 진욱의 생일이었다.  외식으로 한우를 먹거나 한창 유행인 피자 레스토랑 같은 곳에 간 적은 없었다. 그녀는 아침부터 부엌에 머물렀고 집안이 온종일 음식 냄새로 가득 찼다. 진욱은 겨울에 태어났는데 계속 켜 놓은 가스레인지 불 때문인지 그날만큼은 온기로 포근했다. 어머니가 주로 한 음식은 손이 많이 가는 것들이었다. 갈비찜이나 잡채, 도미 조림 같은 좋은 식재료로 긴 시간 동안 정성을 들인 요리를 만들었고 맛 또한 어느 유명 식당 못지않게 좋았다. 어쩌면 어머니는 음식을 잘 하는 게 아닐까. 다만 집중력을 몇 달 동안 차곡차곡 모아 놓고 이 한 번에 모두 쏟아붓는 게 아닐까, 어린 진욱은 생각하곤 했다.

 

어머니는 성격처럼 조용하게 떠났다.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가을이었다. 며칠 전부터 소화가 안되고 속이 더부룩하다고 해서 종합 병원에서 검진을 받은 후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보호자 동행이 필요하다고 해 함께 병원을 찾은 진욱이 아무런 통증도, 증상도 없었는데 정말로 암이 맞느냐고 물었지만 간혹 그런 경우가 있다고 의사는 말했다. 담담한 쪽은 오히려 어머니였다. 이제 나이도 있어 부동산을 오랫동안 같이 일해 온 실장에게 넘기려 했었다면서 마침 잘 되었다는 말뿐이었다. 그녀는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는 조용히 집에서 지내다가 눈을 감았다. 연락할 친척과 지인은 많지 않았고 코로나로 사적 모임이 금지된 때여서 빈소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납골당에 모시고 나서 어머니가 살던 궁전 아파트의 명의가 꽤 오래전에 진욱 앞으로 이전되었고 증여세 등 여러 절차도 끝났음을 알게 되었다. 다른 상속 자산도 어머니가 정리해 놓은 세무서에 전화 몇 통만 하면 마무리 되도록 준비가 되어 있었다. 꽤 큰 금액이었지만 진욱은 그걸로 당장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다만 집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혼자 지내던 원룸을 비우고 바로 어머니의 집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그게 1년 전이었다.

 

단지 내 지상 주차장은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강릉에서 올라오는 고속도로가 한산해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기록적인 강추위에 다들 집에 머무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머니 말로는 주차장 때문에 주민들 간에 다툼이 잦았다고 했다. 겨우 평행 주차를 해 놓고 1층 엘리베이터 앞에 서니 온몸이 축 늘어진 듯 진욱의 어깨에 맨 백팩이 유난히 묵직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길 기다리며 잠시 눈을 감고 있을 때 옆에서 사람 기척이 났다. 현자가 그에게 말없이 목례를 했다. 진욱도 어색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할 때 등 뒤 출입문이 열리면서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형욱이 주호의 것으로 보이는 킥보드를 한 손에 든 채 “여기서 뵙네요”라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엘리베이터가 층마다 멈추며 내려오더니 안을 꽉 채운 사람들이 한데 쏟아져 나왔다. 진욱이 빈 곳으로 들어가려 할 때 삐빅 소리가 나면서 문이 몇 번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했다. 잠시 후 ‘올라갑니다’는 음성 안내가 나오자 모여 있던 넷이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6층을 지나고 있을 때 아까와 같은 삐빅 소리가 세 번 정도 울리더니 갑자기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잠시 후 천장 조명이 꺼져 버리자 순식간에 어둠이 들이닥쳤다. 층별 버튼 근처의 빨간색 비상등만 빛나면서 좁은 공간이 공포스럽게 변했다. 진욱이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에 그의 왼편에서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는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どうしたの? 怖い… 怖い… (무슨 일이야? 무서워, 무서워)

옆집 할머니가 하는 말이었다.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가 싶더니 울먹이기 시작했다.

“母さん, 暗すぎる. 怖い. 母さん, 助けて. (엄마, 너무 어두워. 엄마, 구해 줘)

그녀는 주저앉아 있는 듯 진욱의 무릎 정도에서 울음소리가 계속됐다.

 

김현자, 혹은 現子(아끼꼬). 진욱이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는 건 몇 시간 후의 일이다. 아끼꼬로 불린 기간이 몇 곱절은 더 길었다. 아직 젖먹이였던 현자를 데리고 그녀의 부모는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지 못한 고국을 떠났다. 엄마의 등에 업힌 채 이틀 동안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일본 오사카였다.

띠동갑이었던 부부는 해방 전에 일본에 건너와 있던 엄마 쪽 사촌 언니에게 그동안 모은 돈을 모두 건네는 조건으로 신세를 지면서 새롭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 보고자 했다. 아버지는 해방 전까지 양복 재단사로 일했다. 하지만 먹고사는 것만으로도 벅찬 세상에서 맞춤양복은 사치품이었고 그는 더 이상 직장을 찾을 수 없었다. 할 줄 아는 기술이라고는 옷 만드는 것뿐. 그나마 형편이 낫다는 말을 듣고 그들은 일본행을 택했다.

 

현자라는 이름이 아끼꼬로 바뀐 지 채 2년이 지나기 전에 부부는 꿈의 꽃망울도 채 피우지 못한 채 어린 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아버지가 수습 재단사로 일을 시작해 막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한 때였기에 주변 모두가 안타까워했다. 양복점 단골손님 중에 그의 솜씨를 눈 여겨본 재일교포 자산가가 투자해 줄 테니 자기 가게를 열어보라고 제안을 해왔다. 매장으로 점 찍어둔 곳은 당일로 다녀오기 먼 곳이라 부부는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연탄가스 중독으로 잠든 사이에 죽었다. 그날 밤의 행복한 꿈속에서 둘이 영원히 살고 있지 않을까. 일흔이 넘은 나이가 되어서도 가끔 부모님이 나오는 꿈을 꾸면 그녀는 생각했다.

 

세 남매를 키우며 넉넉지 않은 살림이었으나 이모는 아끼꼬를 내치지 않았다. 사촌 여동생이 남겨 놓은 돈이 아직 남아 있었고, 서로의 사정을 빤히 아는 교포 사회의 시선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어쨌든 어린 아끼꼬는 가족의 막내로 남을 수 있었고 중학생이 된 사촌 언니 오빠들이 그녀를 업어 키웠다. 이모네 집안은 화목했고 그 따스함 안에서 아끼꼬 역시 보호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가족의 일원이라기보다는 작은 반려동물로 다뤄지고 있다는 느낌을 그녀는 지워낼 수 없었고, 자주 엄마를 찾는 잠꼬대를 한다는 걸 같은 방을 쓰는 언니들은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그 집에서 지낸 후 취업과 동시에 아끼꼬는 독립해서 나왔고 그 이후로 평생 혼자 살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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