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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꼬가 독신을 고수한 것은 아니었다. 남자를 만나 사귄 적은 몇 번 있었지만 다만 결혼까지 이어지지 못했을 뿐이다. 명절이 되어 이모네 가족들이 한데 모이면 성인이 되어 분가해 사는 사촌 형제들은 이미 혼기가 훌쩍 지난 아끼꼬를 걱정해 주었고 중매를 주선하기도 했다. 여전히 단란한 그들 식구의 모습이 좋았고 자신이 거기 속해 있음에 감사하기도 했지만 아끼꼬는 단 한 번도 스스로 그런 가족을 만드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엄마가 된다는 건 그녀에게 결코 손에 쥘 수는 없는, 저만치에서 흐릿하게 부유하고 있는 신기루 같은 것이었다.

 

도쿄 올림픽 이후 일본 경제가 호황을 맞으며 사무 보조로 일하고 있는 무역 회사도 나날이 성장해 나갔다. 어느 날 매출 전표를 처리하던 중에 아끼꼬는 개인 앞으로는 너무 큰 금액의 영수증을 발견했다. 전기밥솥이나 가정용 전축을 도매 규모로 매입한 전표였는데, 한국 사람처럼 보이는 이름이 한자로 적혀 있었다. 친하게 지내는 영업 부서 사람에게 물었더니 최근 들어 한국 보따리 상들이 물건을 대량으로 떼어가는 매출이 늘고 있다고 했다. 일본 가전제품이 한국에서 인기를 끌면서 밀수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걸 발견한 아끼꼬는 몇 달 동안 알아보고 고민한 뒤 일생을 건 결심을 했고, 그게 이후의 삶을 바꿔 놓았다.

 

한국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알았던 아끼꼬는 보따리 상들을 직접 상대하는 사업체를 꾸렸다. 퇴직금을 모두 쏟아부은 도박은 통했다. 코끼리표 밥솥에 더해 워크맨이라는 새로 나온 아이템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그녀에게 물건을 받아 가려 사람들이 줄을 설 정도였다.

빚을 내서 투자하면 얼마든지 사업 규모를 키울 수 있었지만 아끼꼬는 자기 한 몸 챙길 정도면 된다는 생각에 큰 욕심을 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은행 잔고는 착실하게 늘어갔고 오사카 도심에 집도 한 채 장만할 수 있었다. 노인이 된 이모에게 그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뜻으로 작은 맨션을 하나 마련해 주기도 했다.

 

사업에 먹구름이 드리워진 건 한일 무역이 전면 개방되면서부터였다. 일본 기업들이 한국에 공식 지사를 설립하면서 밀수 시장은 급속도로 위축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아끼꼬의 운은 아직 다하지 않았고 또 다른 기회가 엿보였다. 한국 경제가 발전하면서 일본을 찾는 관광객 수가 늘어나는 조짐이 있었다. 어느덧 쉰 살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아끼꼬는 두 번째 선택을 하게 된다.

한국어와 일본어가 모두 가능한 투어 프로그램 인솔자를 확보하는 게 우선이었다. 오랫동안 한국 보따리 상을 상대하면서 그녀는 김현자라는 이름으로 재일 교포 사회에서 꽤 넓은 인맥을 보유하고 있었고, 말솜씨가 좋고 사교적인 사람들을 쉽게 추천받을 수 있었다. 나날이 커져가는 여행 시장에서 요구 사항에 대한 응대가 빨랐기에 한국 여행사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인 대상의 한국 패키지 여행 모집까지 대행하면서 자리를 잡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제 김현자로 불리는 때가 더 많아진 그녀는 60대가 되었다. 백발이 된지 오래였지만 염색을 하지 않았고, 마른 체형에 늘 허리를 꼿꼿이 편 자세와 군살 없는 얼굴의 현자는 쉽게 말 걸기 어려운 인상의 할머니로 보였다. 하지만 몇 번 대화를 나눠본 사람은 그녀의 더없이 예의 바른 말투와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는 몸가짐에서 첫인상과 다른 의외의 매력을 발견하곤 했다. 그럼에도 속 깊은 마음까지는 내보이지 않는, 누구도 발을 들이지 못할 그녀만의 고요하고 비밀스러운 영역이 있음을 눈치채는 사람은 없었다.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는 다른 어느 곳보다 여행업계에 큰 타격을 주었다. 1년 정도는 매출이 없는 와중에도 고용을 유지하면서 버텼지만 ‘이제 그만 은퇴해도 될 나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현자는 불현듯 들었다. 생각이 서면 바로 행동하는 것이 그녀가 지금껏 살아왔던 방식이었고, 이만큼 살아올 수 있던 장점이기도 했다. 회사의 여유 자금은 남김없이 직원들의 퇴직금 및 위로금으로 지불했다. 사업을 접은 후 조용히 집에서 지내던 몇 달 동안 남은 인생은 고국에서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갔다.

한국과 관계된 일을 오래 해온 그녀의 유창한 한국말에서 재일 교포임을 눈치채기는 어려울 정도였다. 이모부와 이모는 진즉 세상을 떠났고 고령이 된 사촌 형제들도 이제 연락이 뜸해진 지 오래였다. 고향이 어디인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기왕이면 큰 도시에서 살고 싶었다. 대신 너무 번잡하지 않고 보통 사람들이 평범하게 사는 동네면 좋겠다 싶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다시 비행길이 열린 후에 일로 알고 지내는 한국 사람에게 부탁해 살기 마땅한 후보지를 추천받아 서울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 사이에 일본에 있는 자산은 모두 정리했다. 현자가 거의 6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자리 잡은 곳은 궁전 아파트 1101호였다.

 

칠흑같이 어두운 엘리베이터 안에서 웅크린 채 주저앉은 현자는 여전히 울먹이는 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진욱이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말했다.

“大丈夫でしょう. すぐに移動します. 心配しないでください. (괜찮아요. 곧 움직일 겁니다. 걱정 마세요)

일본어로 말해줘야 할 것 같았다. 대학에서 배웠던 것들이 아직은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는 손을 내밀어 현자의 머리 부근으로 생각되는 부분에 대고 가만히 몇 번 쓰다듬어 주었다. 손바닥으로 전해오는 그녀의 떨림이 조금씩 가라앉고 있음이 느껴졌다.

 

“이게 무슨 말이야?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현자의 두려움과는 정반대로 주호가 천진난만한 말투로 형욱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평소에는 말이 없는 편인데 이상하다 싶었다.

“아마 일본어 같은데. 사실은 아빠도 잘 몰라. 아저씨한테 물어볼까?

아들을 대하는 그의 말투는 마치 유치원 선생님이 하는 것처럼 한껏 높은 톤에 노래하듯 음성이 올라갔다. 말 끝에 사레가 들린 듯 목소리가 갈라지며 기침이 터져 나왔고 그 소리에 진욱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현자가 있는 쪽에서도 푸훗, 하고 웃는 듯한 숨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천장에 불이 들어왔고 엘리베이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층 안내 모니터 근처에 있는 작은 스피커에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괜찮으시냐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11층에 도착했으나 현자는 아직 주저앉은 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방금 전 웃음으로 긴장은 풀렸으나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진욱은 그녀의 양쪽 팔뚝을 잡고 조심스레 부축해서 일으켰다. 이대로 모른 척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형욱에게 경비실에 상황 설명을 해달라고 부탁하고는 비틀거리며 발걸음을 떼고 있는 현자 곁에서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1101호로 걸어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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