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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됩니다

영빈이 뉴욕 크로넛을 집으려 할 때 한나가 딱 잘라 말했다.

아니, 나도 한 번은 먹어봐야 되지 않나 싶어서…”

이곳 분석은 끝났는데, 굳이 회사 돈을 낭비할 필요가 있나요?”

한나는 손에 들려있는 법인 카드를 가볍게 흔들었다. 누가 회계팀 강철 여전사 아니랄까 봐. 영빈은 작게 한숨 쉰 후 말했다.

 

됐다. 내 돈으로 살게요. 강 매니저도 먹고 싶은 거 있으면 골라요

한나는 바로 집게를 들고는 영빈이 들고 있는 쟁반에 빵을 담기 시작했다.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확실히 느끼하긴 하군요. 한준 씨의 데이터 분석 결과가 이해됩니다

, 엄청 잘 먹는 사람이 하는 말이라 묘하게 설득력이 없네요

세 개 째의 크로넛을 쉬지 않고 입에 집어넣는 한나를 보며 방금 전까지 먹지 말자고 하던 사람 맞나싶은 생각에 영빈은 감탄하는 중이었다.

 

그나저나, 여기 분위기 달달하니 좋네요. 커플들도 많이 보이고

매장을 한 번 둘러보고 있는 영빈에게 한나가 답했다.

소개팅으로 처음 만난 테이블이 두 개. 이제 한창 좋을 때인 커플이 셋. 그리고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심각하게 친구 고민을 들어주는 여자들이 있네요

 

한나는 티슈로 입을 닦으며, 놀란 채 입을 벌리고 있는 영빈을 흘끔 봤다.

사람들 관찰하는 거, 잘 하거든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보일까요?”

싱긋 웃고 있는 영빈을 못 본체 하며 한나는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말했다.

일하는 동료 사이로는 안 보이겠죠. 테이블에 서류나 노트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 우리도 남녀 관계로?”

, 오래되어 더 이상 설렐 것 없는 무미건조한 사이거나, 아니면 근처 가정법원에 이혼 신청하기 전에 잠깐 들린 사이. 그 정도겠죠

영빈은 뭐라 더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 염혜은 과장님 우리 매장에 왔던 날. 안경 안 썼죠?”

한나의 얼굴이 확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분명 그날 점장하고 마주친 기억은 없었는데.

염 과장님이, 가기 전에 잠깐 보자고 해서 만났어요. 오랜만이라 반갑더라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별거 아니었어요. 가벼운 근황 이야기 정도

 

영빈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한나 쪽을 향해 몸을 숙이며 말했다.

강 대리님, 좋게 변한 것 같다고. 나한테 고맙다고 하던데?”

당황한 표정을 지은 채 애꿎은 빨대만 씹고 있는 한나에게, 영빈이 귓속말을 하는 듯한 손짓으로 속삭였다.

안경 안 쓴 얼굴. 가끔 보여줘요. 그때 남자 직원들 여럿 심쿵 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후후

 

이후 둘 사이에 침묵이 이어졌다. 테이블 위에 놓인 음료 잔도 거의 비었다. 한나가 자리를 정리하려 할 때였다.

어제 인사팀 동기한테 전화가 왔어요

영빈의 얼굴에선 방금 전까지의 장난기가 사라져 있었다.

진급 심사 결재가 났대요. 축하해요. 강한나 과장님

 

한나는 자기도 모르게 안경을 벗었다. 잔뜩 눈을 찌푸린 것은 시야가 흐려진 탓인지, 눈에 뭔가 들어가서인지 알 수 없었다. 영빈이 티슈를 한나에게 건네며 말을 이었다.

알잖아요. 한 매장에 과장 두 명은 두지 않는다는 거. 며칠 뒤면 인사팀에서 전화 올 거예요. 본사에 갈 수 있는 자리들 안내받고, 그중에 선택하면 됩니다

영빈은 아직 정식 발령이 난 건 아니니까, 어디 말하지 말고 우리 둘만 알고 있자는 말을 덧붙였다.

 

티슈를 눈가로 댄 채로 별다른 답이 없는 한나를 두고, 영빈이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있으니까 진짜 가정법원 가는 사이 같잖아요. 얼른 일어 납시다

저기. 점장님

한나가 안경을 다시 쓰는 것도 잊은 채 영빈을 바라봤다.

 

알고 있었다. 영빈은 읽기 쉬운 사람이었으니까. 자기 생각이 있음에도 한나의 의견을 들어주려 애쓰고 있다는 것을. 예전에 볼드모트라 불렸던 자신의 모습이 여전히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는 것을. 회식 자리에서 티 나지 않게 자기를 챙겨줬다는 것을. 그리고, 이번 인사 건에도 틀림없이 이런저런 방법으로 애썼으리라는 것도.

 

인사팀에, 다른 옵션도 제안할 수 있는 거죠?”

다른 옵션? 안될 건 없을 텐데, 어떤 거요?”

영빈의 질문에, 한나가 다시 쓴 안경테의 코 부분을 위로 올리며 답했다.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심드렁한 사이인 과장 두 명이 한 매장에서 일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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