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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 전 아침, 카페 토라세 방배점 사무실의 분위기가 사뭇 무거웠다. 유영빈 점장과 강한나 매니저를 비롯한 매장 직원 모두가 모여 있었다.
“오늘 아침 조회는 안 좋은 소식으로 시작해야겠군요”
영빈은 사무실 중앙의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한동안 매출 신장을 기록하던 우리 매장이, 지난달부터 매출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한나는 뿔테안경 오른쪽을 두드리는 것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었고, 몇 명의 직원들은 분위기에 동참하는 듯 침울한 표정을 지으려 애쓰는 중이었다. 민주를 비롯한 몇몇만 천진난만, 혹은 무관심한 얼굴이었다.

“강 매니저님. 이유가 뭘까요?”
영빈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한나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와 테이블 위에 두 손을 올렸다.
“어느 몇 개의 메뉴 때문은 아닙니다. 케이크에 대한 고객 반응도 여전히 좋고요. 핵심은 객수가 줄었다는 데 있습니다”
한나는 영빈이 건넨 종이를 받아 모두에게 보라는 듯 그중 형광펜으로 칠해진 곳을 손가락으로 두세 번 누르면서 말했다.
“고객이 줄었어요. 갑자기 오던 사람들이 안 오는 겁니다. 그 이유는…”

“맞다! 거기 때문이죠? 지난달에 저 앞에 생긴!”
한나가 말을 이으려 할 때 민주가 한쪽 팔을 번쩍 들며 외쳤다. 가장 중요한 대목을 뺏긴 한나는 민주를 힐끗 째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우리는 손님을 뺏기고 있습니다. 같은 상권에 오픈한 경쟁 매장에”

“그래, 도영아. 부탁할게. 뭐 좀 있으면 메일 보내줘”
영빈은 무신경하게 넘어갔던 걸 후회했다. 몇 달 전부터 출퇴근 길에 매장 공사하는 것을 봐왔기에 알고 있었다.
- COMING SOON, 노라 크로넛
뉴욕에서 화제가 된 베이커리의 첫 한국 진출 매장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동네에서 카페나 베이커리가 생겼다가 사라지는 건 흔한 일이었다. 이 정도 파급력이 있을 줄은 몰랐다. 영빈은 급한 마음에 본사 마케팅팀 후배에게 노라 크로넛이 어떤 마케팅 활동을 하는지 조사를 부탁했다.

아직 사무실에 모여 있는 직원들은 전화를 마친 영빈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합시다. 오늘부터 스파이 작전을 시작하는 거예요”

두 명이 조를 짜서 하루 한 번씩 손님인 척하며 노라 크로넛에 간다. 한 시간 정도 머무르며 빵과 음료의 맛을 분석한다. 조 별로 같은 메뉴를 주문하지 않도록 서로 공유한다. 어떤 사람들이 오는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분위기를 면밀하게 관찰한다. 영빈은 어젯밤에 미리 생각해 놓은 계획을 설명했다.

“작전 활동은 여러분의 근무 시간에 포함됩니다. 아울러, 매장 법인카드를 가지고 결제하세요”
영빈은 책상 서랍에서 카드를 꺼낸 후 민주 쪽으로 내밀었다.
“케이크 남매가 첫 번째 작전 조입니다. 만호 씨와 민주 씨. 다녀오도록”

“후아. 떨린다. 셰프, 나 어때요? 스파이처럼 보이진 않죠?”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나오는 노라 크로넛으로 가는 길,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민주는 긴장을 풀려는 듯 깊게 심호흡했다. 만호는 자신의 옷차림이 자꾸 신경 쓰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침에 대충 입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 민주와 단둘이 밖에서 보내는 기회, 마치 첫 데이트 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민주는 “흐흐흐. 모조리 파헤쳐 주마!”라며 방금 전의 긴장은 어디 갔는지 손바닥을 맞대어 비비고 있었다.

빵을 고르는 것도, 음료를 주문하는 것도 민주의 몫이었다. 만호는 그런 모습을 넋 놓고 쳐다만 보고 있었다. 테이블에 민주와 앉고 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만호는 그녀에 대해 알고 싶었다. 어디에 사는지, 누구와 사는지, 쉬는 날에는 무얼 하는지.

알고 있는 것이라곤 지난 회식에서 들은 ‘남자 친구는 없고. 좋아하는 사람은 있다’는 것뿐이었다. 민주에게 묻고 싶은 것들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지금까지 기회가 없었다. 지금부터 시작되는 한 시간의 작전 시간이 벌써부터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셰프. 내 말 듣고 있어요?”
빵을 조금씩 떼어내는 얇은 손가락. 아무 색도 입히지 않은 채 청결하게 다듬어진 손톱. 그리고 입에 넣은 빵을 작게 오물대는 입술. 만호는 그 모습 하나하나를 머릿속에 생생히 담으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민주의 말이 귀에는 들어왔지만, 머리까지 연결되지 않고 있었다.

“아. 미안. 민주 씨. 뭐라고요?”
“감상을 말해 달라고요, 셰프. 비밀 레시피라던가. 우리가 훔쳐 올 것들”
만호는 그제서야 가장 인기 있다는 시그니처 메뉴인 뉴욕 크로넛을 들어 한 입 물었다. 어떠냐는 표정으로 민주가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빵의 맛 때문인지, 민주의 표정과 눈망울에 취해서 그런 것인지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달콤함이 온몸에 퍼지는 듯했다.

“맛…. 있는데요”
“그래서, 좋아요?” 민주가 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네. 정말로 좋아해요”

만호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민주 쪽으로 숙이면서 그녀의 눈을 마주한 채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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