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두세 번 호진을 찾아오는 회사 후배 K의 레파토리는 항상 똑같다. “내려가서 음료수 하나 사주세요.” 185cm 정도 키에 시원한 이목구비, 한달 전 이례적으로 30대 후반에 팀장이 된 요즘 회사의 ‘라이징 스타’다. 왜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서로 많은 말을 섞지 않아도 호감이 가는 사람. K에게는 호진이 그랬고, K도 호진의 인상이 좋게 남아 있었다. 완구 카테고리를 담당하는 그가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 팀장이 된 것은 이전 팀장 J의 급작스런 퇴사 때문이기도 했다. J와 호진은 경력사원 입사 동기였고, 동갑인 둘은 금새 경력직으로서의 속내를 서로 터놓는 친구 사이가 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K 또한 J를 팀장이 아닌 마음으로 따르는 형님으로 생각했고, 꽤나 잘 지냈던 모양이다. 호진..
“오늘은 연차 쓰시고 오신 건가요?” 4명의 면접자 모두가 그렇다고 답했다. 설사 아니더라도, 재택 근무 중에 잠깐 나왔거나 혹은 외근 나간다 하고 면접을 보러 왔더라도 ‘하루 연차를 썼다’라고 하는 것이 암묵적인 정답임을 호진도 잘 알고 있다. 자신도 예전에 똑같이 말했으니까. 지금의 회사에서 ‘조그만 거짓말’을 하고 면접을 보러 나왔다는 것은, 여기서도 똑같이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어서, 최대한 좋은 인상을 줘야하는 면접에서는 금기되는 말이다. 사람을 좋게 평가할 면을 찾는 것보다, 안좋은 부분을 발견하는 것이 더 쉬운 법이다. 첫 면접자 A는 마치 신입사원 면접에 온 것처럼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앳된 얼굴에 아직 경력도 4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아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호진이 ..
‘어라, 없다. 왜없지? 어제 매장에는 있었는데’ 출근하자 마자 반다이몰에 접속해서 검색한 ‘크시 건담’의 검색 결과가 없다. 품절일 수 있다고 예상은 했지만, 아예 제품 상세 페이지 자체가 없었다. 호진은 적잖이 당황했다. ‘이게 말이 되나, 매장에서는 팔고 온라인에서는 안 파는게’ 호진은 어제 삼성 코엑스 건담베이스에서 봤던, 딱 두개 남은 크시 건담 박스의 묵직한 느낌이 떠올랐다. 그때 샀어야 할 걸 그랬나. 한참 고민하다가 7만원이 넘는 가격 때문에 매대에 내려놓고 매장을 나온 것이 후회됐다. - 9:30에 다들 잠깐 봅시다. 팀장 미팅을 알리는 부문장의 카톡이 여느 때처럼 9시 조금 지나서 떴다. 이미 출근길에 담배 피면서 미팅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갈 것이라 예상하고, 자신은 무슨 말을 할지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