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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 대통령이 입술을 깨문 채 답할 말을 찾고 있을 때 UN 사무국장 알렉세이가 말을 이었다.

“한반도의 낮은 출산율은 책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회의실 중앙의 홀로그램 화면이 바뀌자 엄지를 위로 세운 주먹 모양의 아이콘이 떠올랐다.

“세계적인 독서 열풍과 달리, 한국만 유독 책을 읽지 않습니다. 대신 국민적 인기의 가상 현실 서비스가 있는데요. 지금 보시는 이것입니다.

주먹 모양의 아이콘 아랫부분에 영어로 ‘JOA’라고 쓰인 로고가 보였다.

“관계 맺기에 특화된 프로그램입니다. 한국어로 ‘좋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가상 현실에서 다른 사람의 일상이 담긴 사진이나 영상을 보고 마음에 들면 엄지를 세운 아이콘을 눌러 호감을 표시합니다. 엄지를 많이 받는 사람은 유명인이 되기도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블록 2에서는 잘 되고 있지만, 다른 지역으로 진출하려다가 실패하고 철수한, 소위 갈라파고스 효과로 끝나버리지 않았나요?

미셸롱 대통령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예상했다는 듯 알렉세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화면을 넘기자 원형 그래프와 막대그래프가 떠올랐다.

“그렇기 때문에 블록 2 인구 90% JOA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과 유독 낮은 출산율에서 연관성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서비스의 부작용입니다.

 

원형 그래프의 가장 넓은 원호는 ‘JOA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다’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을 한 사람들의 비중이었다. 막대그래프는 ‘남들처럼 잘 살지 못할 바에야 포기하는 게 좋다’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매년 늘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JOA는 화려하고 즐겁게 사는 모습으로 가득합니다. 고급 음식점에 가고, 최신 패션으로 차려입은 모델처럼 늘씬하고 아름다운 사람들뿐이죠. 상류층으로 보일수록 더 많은 인기를 얻습니다. 사는 게 괴롭다거나, 누구에게 위로받고 싶다는 말은 금세 묻혀 버리고 맙니다. 좋아하는 책 구절을 올리는 것처럼 고리타분한 내용은 외면받죠.”

하지만 그건 허상일 뿐이다, 이 말이군요.

미셸롱 대통령이 지금까지의 장난스러운 표정을 버리고 진지하게 말했다.

“맞습니다. 현실에서 늘 그렇게 살 수는 없으니까요. JOA에 있는 사람들보다 못 살고 있다는 생각에 좌절하고, 스스로 자신감을 잃어가는 겁니다.

“그런데 JOA가 인구 과잉을 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죠? 블록 2 밖에서 실패한 서비스가 다시 유행할 리 없지 않습니까?

“여기서부터는 내가 설명하겠소.

슌다이 블록 1 대통령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회의실 중앙의 홀로그램이 꺼지고 바닥 문이 열리면서 금속 재질의 커다란 구체가 올라왔다. 그리스어로 된 문양이 촘촘하게 박혀 있는 고대 유물 같았다. 구석에 앉아 있던 서너 명이 걸어 나와 구체 중앙의 수평선 윗부분을 들어 올리자 사람 한 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드러났다. 안쪽 좌우에는 조작 장치와 디지털 화면으로 된 최신 전자기기가 어울리지 않는 모양으로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기억나십니까? 20년 전에 지중해에서 발견된 것입니다만.

“아틀란티스의 고대 문명.

이훈 대통령이 낮게 신음했다. 이어질 이야기가 예상되기에 자신도 모르게 새어 나온 한숨이었다.

“발견 당시는 이게 무엇인지 가늠할 수 없었죠. 로스트 테크놀로지임은 분명했습니다만. 전설로만 전해지던 아틀란티스 대륙을 발견했다는 데 더 큰 관심이 쏟아졌고, 이건 소수 과학자들의 연구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공학자부터 언어학자, 인류학자까지 다양한 학계의 전문가가 달려들어도 용도를 알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죠. 마침내 작년에서야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슌다이 본인 또한 대통령 선출 전까지 인도공과대학의 학자였다. 그는 정치계에 들어온 후에도 꾸준히 연구에 참여해 왔다.

“처음에는 우리도 믿을 수 없었지만,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라고 판단을 내리게 되었소.

“타임머신이란 말입니까? 그게 고대 그리스에서 가능한 기술이라고요?

장내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렇소. 다만 당시로서는 도무지 감당이 안 될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했죠. 그렇기에 만들어 놓고 작동을 못한 게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지금은 가능합니다. 딱 한 번이긴 하지만.

슌다이가 눈짓하자 연구진 중 한 명이 구체 안으로 들어가 중앙 벽면의 네모난 박스를 열었다. 그 안에는 짙푸른 색의 액체가 들어있는 농구공 크기의 투명한 용기가 있었다.

“지구상의 모든 핵무기를 폐기하기로 합의한 후 수거한 핵탄두에 담긴 우라늄을 모두 모아서 고농축한 양입니다. 인류가 지니고 있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이지요. 이걸 쓴다면 한 사람이 과거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돌아오는 건 어렵지만.

“과거로 돌아가는 건 그렇다 쳐도 언제로 가겠다는 겁니까? 그리고 뭘 하겠다는 거죠?

 

다시 홀로그램 화면이 켜졌고 타임머신 위로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부스스한 곱슬머리와 뺨에 주근깨가 가득한, 앳되어 보이는 백인 청년이었다.

20세기 말에 당시 미국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교에 다니던 마크 저커버그라는 이름의 애송이가 있었습니다. 별로 대단한 인물은 아니었죠. 학생 시절에 창업을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적당한 회사에 들어갔지만 반골 기질이 있었는지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다가 40대 초반에 교통 사고로 죽었습니다. 뉴스에 사망 소식이 올라올 정도의 인물도 아니었죠. 다만, 실패한 그의 사업이 우리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화면이 바뀌자 JOA의 주먹과 거의 같은 모양의 아이콘과 파란색 영어로 된 facebook이라는 로고가 보였다.

“지금의 JOA와 아주 비슷한 서비스를 만들었더군요. 200년이나 전에. 하지만 몇몇 대학생들만 관심을 가졌을 뿐, 소리 소문없이 사라져 버렸죠.

슌다이는 잠시 숨을 고른 후 회의장에 앉아 있는 세계 블록을 대표하는 수장들의 얼굴을 하나씩 훑어봤다.

“한 번 상상해 봅시다. 블록 2JOA 열풍처럼 이 친구의 서비스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과거 사람들이 질투심에 괴로워하면서도 중독자처럼 타인의 삶을 틈날 때마다 들여다보고, 관심을 받기 위해 거짓은 아니지만 화려하게 포장된 일상을 올리는데 혈안이 된다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남에게 보이는 모습만을 전전긍긍한다면, 미래를 낙관하지 않고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아이를 조금은 덜 낳지 않을까?

“하지만 이미 실패해버렸다고 역사에 남아 있지 않습니까.

이훈 대통령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말했고 슌다이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저커버그가 사업을 시작하기 이전으로 사람을 보낼 거요. 그리고 그와 우정을 쌓는 거지. 친구에서 동업자로 변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테니까. 우리는 지금까지의 경제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역사로 알고 있소. 과거로 돌아갈 인물은 이 풋내기의 동업자이자 사업 멘토가 되어 절대 망하지 않게 하는 길로 그를 이끌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사업 방향, 자금 조달, 여론 형성까지 뒤에서 조정하는 역할을 맡을 거요. 이 시간 여행자에게도 나쁜 조건은 아니지. 지금의 삶은 포기해야 하지만, 거기서 새로운 인생을 얻는 거니까. 평생 쓸 수 없을 만큼의 돈을 벌 테고 눈을 감는 순간까지 칭송을 받을 테니, 좋은 조건 아니겠소.

 

타임머신 옆에 서 있던 연구원 중에 한 명이 슌다이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작은 체구의 동양인 청년이었다. 짧게 자른 검은 머리에 안경을 쓰고 있는 모습이 언뜻 보기에 십 대 청소년 정도로 모이는 인상이었다. 그가 과거로 돌아갈 자원자임을 의미하듯 슌다이가 한쪽 손을 잡고는 함께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곧이어 회의장이 떠나갈 듯 박수가 터져 나왔다.

 

“어쩌면 성공할 수도 있겠습니다.

기무라 부통령이 타임머신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이훈 대통령에게 말했다. 이훈도 고개를 끄덕였다. 남들보다 더 잘 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게 지금껏 인류가 진화해 온 동력이고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으로 꽃을 피웠다.

그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는 무대를 2세기 정도 앞서 세상에 선보인다. 분명 작동할 것이다. 하지만 JOA로 인한 부작용을 이미 확인했지 않은가. 과거를 바꿀 그 현상은 어떤 후폭풍을 만들어낼까.

 

이훈 대통령은 외동딸이 떠올랐다. 각자의 직업으로 바빠 부모가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았음에도 사춘기 방황 없이 잘 자라준 딸. 하지만 밝고 진취적이었던 아이가 20대에 들어 늦은 방황을 겪고 있다. 어느 날부터 자기 외모를 비하하기 시작하며 딸은 밖에 나가는 걸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늘 손바닥 위에 올려진 홀로그램 화면에 비치는 화려하고 늘씬한 사람들만 멍하니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한반도에서 같은 증상을 보이는 젊은이들이 심각한 사회 현상이 되고 있다. 과거를 바꾸겠다는 이 작전이 21세기 초반 사람을 모두 그렇게 만들지 않을까. 그 세상은 어떻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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