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감님은 카스텔라와 우유를 조금 목으로 넘긴 후 감기약을 먹고는 다시 잠에 빠졌다. 눈을 감고 있는 그에게 “저녁에 먹을 것 좀 사가지고 다시 올게요”라는 말을 건네고 고물상에서 나왔다. 도서관에 도착했을 때 점심시간이었지만 밥 생각이 없어 그냥 열람실로 들어갔다. 모두 식당으로 갔는지 좌석은 비어 있었고 현아도 없었다. 자리에 앉자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몸이 물에 젖은 수건처럼 무거웠다. 나도 모르게 눈이 스르륵 감기려 할 때 현아가 돌아왔다. “말도 없이 어디 갔었어요? 전화하려 해도 연락처도 모르고.” 걱정과 짜증이 절반씩 섞여있는 그녀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우리 셋 모두 서로의 연락처를 모르는 사이였구나. “혹시 할아버지 보고 온 거예요? 어디 사시는지 알고 있어요? 어떠세요? 많이 편찮으..

축제의 주말이 지난 후 도서관은 평온을 되찾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불청객이 정기 간행물 열람실에 등장했다. 노인들은 내색은 안 했지만 자신들만의 공간에 침범한 낯선 존재를 경계하는 눈치였다. 하긴 내가 처음 여기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고요한 호수 표면에 던져진 돌멩이가 된 듯한 기분에 처음 며칠은 영 불편했었다. 하지만 이 젊은 여자에게서 그런 어색해 하는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학생 정도 됐을까. 대충 묶어 뒤로 내린 긴 검은 머리에 두꺼운 검은 뿔테안경이 화장기 없는 얼굴을 더 하얗게 보이게 했다. 회색 트레이닝 바지에 녹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이후로도 늘 같은 차림이었다. 티셔츠 색상은 가끔 변했는데 바지는 항상 회색이었다. 얼굴은 예쁘장한 편이지만 꾸미고 다니는 데는 영 관심이 없..

어릴 때부터 둘이 살아온 집을 어머니가 아들 명의로 돌렸다. 그러실 필요 없다고 며느리는 만류했지만 줄 수 있는 유일한 혼수이고, 이걸 핑계로 너희들과 평생 함께 살 거라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집이 생긴 건 좋았지만 철물 공장에서 나오는 소음으로 종일 시끄럽고 쇳가루가 날리는 동네였다. 열심히 돈을 모아 학군 좋은 더 넓은 집으로 어머니 모시고 가자는 꿈으로 부부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아껴가며 살았다. 가족 이야기를 꺼내는 동안 영감님의 말은 자주, 그리고 오래 끊겼다. 잠시의 적막 속에서 주변의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비행기가 하늘을 가르며 날아갔고 생선을 파는 행상이 손님을 불렀다. 어디선가 아이들이 놀며 노래를 불렀다. “붕어빵 좋아하나?” 한동안 말이 없던 그가 내게 물었다. “추워..